수개월째 미 증시 바닥론이 제기돼 왔으나 시장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속락하고 있으며 이제 시장붕괴의 위기감마저 감도는 상황에 이르렀다. 최근 들어 미 증시의 낙폭이 급격히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우지수는 2주 동안 약 14.5% 떨어져 9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고 나스닥지수는 8.9% 내렸다. 시가총액으로는 1조4000억달러가 2주일만에 공중으로 사라졌다.
예견된 블랙 먼데이는 세계 증시에도 냉기류를 몰고 왔다. 22일 런던증시의 FTSE100지수가 4.95% 하락하면서 5년래 최저치로 하락했고 파리의 CAC40지수와 프랑크푸르트 DAX지수도 하락률이 5%를 넘었다. 이에 앞서 아시아 시장에서도 한국이 4.47% 떨어진 것을 비롯 대만 2.29%, 홍콩 2.08% 하락했고 싱가포르도 1.54% 내렸다. 일본증시의 닛케이지수만이 약보합을 기록해 상대적으로 타격이 적었으나 이는 연기금의 주식매수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으로 풀이되고 있다.
◇빛이 보이지 않는다
22일 나스닥지수는 1300선 아래로 떨어져 지난 96년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을 경고했을 당시 보다 더 아래로 내려섰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지수는 2000년 3월의 정점보다 46% 하락했다. 이는 중동 석유위기에서 기인한 73년~74년 약세장에서의 하락폭 48%에 버금가는 것이다. 이제 "비이성적 비관"을 접을 시점이 된 것일까.
그러나 UBS워버그의 주식거래 책임자인 윌리엄 쉬나이더에 따르면 "시장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그는 "이번 주에 500포인트 정도는 쉽게 깎여나갈 수 있다"면서 "하루에 500포인트가 빠지는 폭락세가 연출되는 게 아니라 50포인트, 100포인트씩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시장 심리가 그 만큼 취약하다는 것이다.
UBS와 갤럽 공동조사에 따르면 7월 들어 미국 투자자들의 낙관론은 지난 96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주식시장의 전망에 대해 낙관하는 투자자는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뿐 아니라 경제 전망을 밝게 본다는 응답도 절반을 밑돌았다.
주식시장으로부터의 자금 유출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트림탭스닷컴은 지난 16일까지 2주동안 주식형펀드에서 230억달러 이상의 자금이 빠져나갔다고 집계했다. 9.11테러가 발발한 지난 해 9월 한달동안의 주식형펀드 순유출액 270억달러에 버금가는 돈이 최근 2주만에 주식시장을 떠난 셈이다.
본격적인 실적 시즌을 맞은 미 기업들의 분기수익이 예상보다 호조를 보이고 있으나 증시를 뒤덮고 있는 먹구름을 걷어 내기엔 역부족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기업수익 역시 증시 압박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브라이언머레이의 주식거래 부문 수석 부사장인 제임스 파크는 "2분기 기업 수익이 예상치를 상회했다 하더라도 향후 수익전망은 장밋빛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월가의 위기감 고조를 의식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도 이날 투자심리 안정에 나섰지만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부시 대통령은 22일 기자회견에서 "나는 주식브로커도 종목 추천자도 아니지만 경제성장의 펀더멘탈이 진정한 것이라는 점을 믿고 있다"고 강조하고 의회가 분식회계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고 역설했으나 주가 급락세를 멈추지 못했다.
◇경제 더블딥 우려도 고조
주식시장의 하락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한 동안 잠잠했던 미 경제의 이중바닥(더블딥)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메릴린치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브루스 스타인버그는 "주식시장의 위기가 경제 전반으로 전이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식시장의 침체로 기업들의 수익 개선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현금 보유 필요가 높아졌고 이는 자본지출을 억제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22일 온라인판에서 "미 주식시장이 계속 하락할 경우 경제가 언제까지 증시침체에 내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 잡지는 주가하락으로 자산가치가 감소한 소비자들이 지출을 줄이는 "역의 자산효과"가 부동산 호황으로 방어되고 있기는 하지만 미 증시 하락이 지속될 경우엔 그 영향이 표면화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등시점" 의견도
미 증시가 이대로 계속 떨어지느냐 아니면 반등세로 돌아서느냐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미 증시의 반등 가능성을 강조하는 견해는 "이제 떨어질 만큼 떨어졌다"는 인식을 근저에 깔고 있다. 미 투자전문지 배런스는 22일자 최신호에서 "주식이 상승할 시점"이란 표지기사에서 미 주식의 가치가 버블 이전 단계로까지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골드만삭스의 애비 코언도 미 증시가 반등 시점을 맞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월가의 대표적인 강세론자인 코언은 19일 미 증시 폭락 이후 "현재 주가수준은 지나치게 싸다"며 "주가는 추가하락하지 않고 상승반전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리먼브라더스의 전략가인 제프리 애플게이트는 22일 S&P지수와 다우지수의 연말 목표치를 하향조정했다. S&P지수는 1200에서 1075로, 다우지수는 1만1500에서 1만750으로 낮췄다. 애플게이트는 S&P500지수 편입기업들의 올 주당수익 전망치 역시 1달러 낮춰 50. 50달러로 하향했다. 그는 주식 80%, 채권 10%, 현금 10%의 자산배분 비중은 그대로 유지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증권의 토마스 맥매너스 역시 S&P지수 12개월 목표치를 1150에서 1000으로 낮추고 다우지수는 1만400에서 9400으로 내렸다. 나스닥지수의 목표치도 2250에서 1650으로 하향 조정했다. 맥매너스는 "미 국채 수익률이 크게 떨어진 가운데서도 주식시장의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이날 고객들에 보낸 리서치 보고서에서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