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이들은 22개월 동안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너며 20여 개 국을 누볐다. 목적은 메이지 정부를 알리고 앞선 문물과 제도를 흡수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영국에는 무려 4개월이나 머물렀다. 사절단은 귀국하자마자 일본을 개혁했다. 외교, 군사, 교육, 정치 분야에서 혁명에 가까운 변화를 주도했다. 철도를 놓고, 대학을 설립하고, 조선소, 철강회사, 자동차 회사를 세웠다. 또 항공기와 함정, 대포 등 무기를 만들었다.
사절단이 귀국한(1873년) 뒤, 불과 20년만이다. 급기야 태평양 전쟁(1945년)에서는 조선을 비롯해 동남아시아를 집어 삼키고 미국을 상대로 맞장을 떴다. 역사상 이토록 짧은 기간에 국력을 키운 나라가 몇이나 될지 놀랍다. 이런 흐름은 일본 근대화, 현대화로 이어졌다. 1917년 설립한 이화학연구소는 대표적이다. 100여년 넘게 일본 기초과학을 다진 산실이다. 이런 토대 위에서 노벨 과학상 수상자만 23명 배출됐다. 일본 산업의 뿌리는 이처럼 깊다.
서로 잘하는 분야에 특화하는 게 남는 장사다. 비교우위 경제 이론이다. 그러니 감정적으로만 일본을 대할 일은 아니다. 지난해 이후 일본과 외교 관계는 아직 회복되지 않고 있다. 장기화될 경우 양국 모두 내상을 피하기 어렵다. 이제는 치킨 게임을 중단하고 무엇이 국익을 위하는 일인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마침, 변화 계기를 맞았다. 아베 내각이 막을 내리고 스가 요시히데가 새 총리로 선출된 것이다.
외교에서 감정적 대응은 금물이다. 그러나 일본을 대하면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나라를 빼앗기고 지배를 받은 탓이다. 일부 정치인들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민족감정을 자극해온 것도 갈등을 만들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한국과 일본은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에 있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땅 덩어리 위치를 바꾸지 않는 한 애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본과 관계 개선은 문재인 정부에 중요한 현안이다. 감정적으로 화해하라는 게 아니다. 국익을 위해 전략적으로 대응하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자녀들에게 “용서하되 잊지는 말라”고 한다. 우리가 일본을 제대로 이기는 길도 이런 것이다. 잊지 않되, 넘어설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것이다. 이와쿠라 사절단에 맞먹는 안목과 역량이다. 목소리 높이고 핏대 올리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참고로 사절단으로 다녀왔던 쓰다 우메코라는 여성은 훗날 쓰다주쿠 대학을 설립해 인재를 길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