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경의 바이오 돋보기]포스트 코로나 시대…제약·바이오산업, ‘구조개혁’ 한창

3월 외래 환자 감소폭 46.68% ‘뚝’
원외 처방 23%↓…2.9兆 감소 전망
오프라인 진료 꺼리자 ‘언택트’로…
저렴한 심장이상진단기·혈압앱 첫선
  • 등록 2020-05-16 오전 10:30:00

    수정 2020-05-16 오전 10:30:00

[이데일리 박일경 기자] 1990년대 후반 스위스의 다국적 제약사 노바티스(Norvartis)가 병충해에 내성을 가진 옥수수를 개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연합(EU) 안전성 검사를 통과하면서 판매가 허용된다. 이 시기를 즈음해 우리나라에도 ‘유전자 변형 농산물’(GMO)이 수입되면서 유전자 재조합에 대한 유해성 논란이 불거졌다. 이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GMO 유전체 분석을 위해 ‘중합효소 연쇄반응’(Polymerase Chain Reaction·PCR)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2000년 11월 한국보건산업진흥원과 GMO 분석 공동 연구를 수행한 코젠바이오텍에 이전된다. 코젠바이오텍은 그 이듬해인 2001년 2월 식중독 세균 PCR 키트를 처음 선보이며 국내 최초로 ‘실시간 중합효소 연쇄반응(Real-Time PCR)’ 기술 상용화에 성공한다.

GMO 유전체 분석에서 출발한 RT-PCR 분자진단 기술은 20년가량 흐른 지금 첫 번째 긴급사용승인 회사인 코젠바이오텍을 비롯해 국내 업체 24곳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진단키트를 독자 생산해 전 세계 117개국에 수출하는 결실을 맺었다. 그동안 한국이 국제표준화를 추진해 온 ‘미생물 병원체 검출을 위한 유전자 증폭 검사기법’은 연내 국제표준 확정이 유력하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지난 2월 18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협회 회관에서 2020년도 제1차 이사회를 열고 있다. (사진=한국제약바이오협회)


코로나19 진단키트 발전사는 제약·바이오산업에서 가장 성공적인 민·관 협력 사례로 꼽힌다. 바짝 다가선 ‘포스트 코로나’ 시대 제약·바이오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앞으로도 이런 케이스가 계속 나와야 한다는 게 산업계 중론이다. 업계는 `구조 개혁`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일상 될 ‘거리두기’…생활패턴 변화 대비해야

16일 대한병원협회에 따르면 지난 3월 상급종합병원 및 종합병원·일반병원을 내원한 환자는 전년 동기보다 최대 46.68% 급감한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입원 환자도 크게 줄어 34.15% 감소했다. 올해 1분기 원내 환자 감소율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월 3.68%, 2월 3.49%에서 3월 26.44%로 대폭 확대됐다. 헬스 케어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IQVIA)의 약사 패널 설문조사 결과, 올 한해 원외 처방은 약 23% 축소할 것으로 분석된다. 금액으로 따지면 2조9000억원에 달한다는 추정이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코로나19 확산에 병원 내 전염을 걱정한 환자 발길이 끊어진 때문이지만, 이번 사태가 진정된 뒤에도 ‘언택트(비대면) 수요’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이미 제약사는 영업 방법을 바꾸고 있다. 기존 대면 방식이 온라인을 활용한 ‘언택트 마케팅(Untact Marketing)’으로 옮겨가고 있다.

한미약품(128940)은 HMP라는 의료정보 포털을 구축, 마케팅 채널로 적극 사용 중이다. HMP는 △의약품·논문 정보 △주요 질환 최신 지견 △온·오프라인 통합 심포지엄 △맞춤형 화상 디테일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글로벌 제약사 또한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한국화이자업존은 올 초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링크(LINK) 포털’을 리뉴얼했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보건의료 전문가 전용 포털인 ‘GSKpro(프로)’를 운영 중이다. 휴젤(145020)은 미용·성형 분야 학술포럼을 사상 첫 비대면 ‘웨비나(Webinar·Web+Seminar)’ 형식으로 개최했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그러나 산업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을 감안할 때 코로나19로 규제 혁신 요청이 높은 영역은 `원격 의료`다. 국회에 수차례 관련 법안이 발의됐으나 번번이 통과하지 못했다.

구태언 대한특허변호사회장은 “20년 넘게 의사·시민단체 반대로 의료법 개정안 통과는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실정”이라며 “대한의사협회는 의료전달시스템 붕괴 우려를, 시민단체는 의료민영화의 단초가 될 것이란 이유로 모두 거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 회장은 “저렴한 비용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는 일이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 아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스티커형 심전도 장치 ‘메모 패치(MEMO Patch)’. (사진=휴이노)


시작된 혁신 바람…벤처 의지 꺾는 의료법 ‘장벽’

오프라인 진료를 꺼리는 환자 요구가 커지며 ‘원격 의료’ 기술 등이 재조명되고 있다. 작년 2월 정보통신기술(ICT) 1호 규제 샌드박스 기업으로 선정된 휴이노는 현재 고려대 안암병원과 함께 국내 최초로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를 차고 심장 이상을 진단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달 중에는 패치형 제품에 대해서도 임상시험용 식약처 인증을 받아 임상에 착수할 계획이다.

이 사업은 의료법상 금지된 ‘원격 의료’ 논란을 피하고자 측정한 데이터를 클라우드 서버를 통해 의료진과 공유한 후 의사로부터 원격 내원 안내를 받아 병원에 방문해 확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로 설계됐다. 유한양행(000100)은 전환상환우선주를 인수하는 형태로 총 50억원을 투자해 휴이노의 2대 주주 권리를 확보했다.

최근엔 삼성전자(005930)가 개발한 혈압 측정 앱이 식약처로부터 의료기기(SaMD) 허가를 받았다. 세계 최초라고 하지만 이 역시 혈압 앱을 병원 진료까지 연결시키는데 한계가 존재한다. 식약처 관계자는 “모니터링한 혈압 측정값을 기반으로 원거리 의사가 고혈압 진단에 이용하면 의료법상 불법 행위”라고 인정했다.

삼성전자가 올해 3분기 첫선보일 혈압 앱 이용 화면이 갤럭시 워치 액티브2에 구현된 모습. (사진=삼성전자)


결국 국내 의료 관계법령에 가로막혀 해외로 나가기도 한다. 인성정보(033230)는 원격 진료장비 ‘하이케어’에 관한 미(美) FDA 승인을 획득하고 수출 중이다. 하이케어는 당뇨·고혈압 등 만성질환을 예방하도록 혈압·혈당·체지방 등 개인 건강상태를 측정, 주치의와 1대 1 화상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의료기기다.

국가 바이오헬스산업 혁신전략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송시영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벤처기업들의 성장을 저해하는 여건을 과감히 개선해 글로벌 도약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팬데믹(Pandemic·세계적인 전염병 대유행)이 종료되고 6개월 정도 경과한 이후 코로나19를 계기로 되돌아본 우리 제약·바이오산업 한계와 경쟁력을 논의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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