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기훈 기자] 그리스 사태가 첩첩산중이다. 재정난 타개를 위한 긴축 강화는 경기 침체라는 장애물을 맞아 딜레마에 빠졌고, 당장 절실한 구제금융은 지원 주체들의 불협화음으로 불발 위기에 놓였다. 마치 한 번 들어가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블랙홀에 빠진 형국이다.
◇ 작년 성장률 -7.0%..5년 연속 경기침체
14일(현지시간) 그리스 통계청은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마이너스(-) 7.0%, 작년 전체 성장률이 -6.8%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체 성장률의 경우 그리스 정부가 예상한 -5.5%에 크게 못 미쳤다.
2007년 이후 그리스의 성장률은 -16%로, 4년 새 경제규모가 확대되기는커녕 오히려 쪼그라들고 있으며 경기 침체는 5년째 계속되고 있다. 성장 부진의 원인은 뭐니뭐니해도 정부의 살림살이 줄이기에 있다. 유럽 전체 경기가 침체된 와중에 세금을 대폭 늘리고 임금을 크게 줄이는 등 긴축에 나서면서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 재정난 타개 위한 긴축 불가피..경기 악화 `악순환`
재정난 해소를 위해 긴축에 열을 올리고 있는 그리스에 경기 부진은 심각한 딜레마다. 2차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선 유럽연합(EU)과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 등 이른바 트로이카가 구제금융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긴축안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 하지만 긴축안을 이행하자니 트로이카가 기존에 요구한 재정적자 감축목표가 걸린다.
지난해 10월 트로이카는 그리스에 1300억유로의 2차 구제금융을 제공하고 민간채권단이 1000억유로 규모의 채무를 국채 교환을 통해 탕감해주는 조건으로 그리스에 국영기업 민영화와 긴축 강화에 나설 것을 권고했다. 이를 통해 그리스가 현재 GDP 대비 160%에 달하는 부채를 2020년엔 120%로 줄일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트로이카 내에선 그리스가 재정적자 감축목표 달성에 실패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현 상황을 반영해 재계산한 결과 8년 후에도 GDP 대비 재정적자가 136%로 줄어드는데 그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이런 와중에 발표된 성장률 지표는 그리스의 상황을 더 암울하게 한다.
계속된 긴축에 지친 그리스 국민은 더 조일 허리조차 없다며 정부의 긴축 강화 조치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근래 잦아진 대형 폭력시위는 정부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분노를 짐작케 한다. 이 같은 부정적 여론은 울며 겨자 먹기로 긴축을 해야 하는 그리스 정부 운신의 폭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
◇ 유로존 내 불협화음..유로존 재무장관회의, 전화회의로 격하
그리스엔 생명줄과도 같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도 우왕좌왕하긴 마찬가지다. 유로존 일각에선 그리스의 상황을 감안해 구제금융과 채무 탕감 규모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이에 대한 반발 여론 역시 만만찮다. 이에 2차 구제금융 지원 역시 도루묵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15일로 예정됐던 유로존 재무장관회의가 갑자기 컨퍼런스콜로 대체된 것은 이처럼 유로존 내 엇갈린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는 "15일 유로존 재무장관회의가 전화회의로 대체된 것은 회의에 참석하는 장관들 사이에서도 최종 합의에 이를 만큼 충분한 컨센서스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