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밸리의 창조적 협업

  • 등록 2011-10-23 오후 6:31:47

    수정 2011-10-23 오후 6:31:47

[이데일리 이정필 칼럼니스트] 아이폰4S의 신기술 Siri가 주목을 받고 있다. 베타 버전이지만 스마트폰과 사용자가 대화하는 세상이 성큼 현실로 다가왔다. 스티브 잡스가 남긴 마지막 선물이다. 경쟁사들이 신기술을 따라잡으려면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한다.

하지만 Siri와 같은 창조적인 소프트웨어의 출현은 우리에게 ‘왜 실리콘 밸리인가’라는 보다 큰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성공적인 군산학 협업의 교과서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단초는 국방부가 제공했다. 스탠포드 리서치 인터내셔널(SRI)은 실리콘 밸리의 대표적인 비영리 연구소이며 벤처 육성의 대부로 유명하다. 2000년 미 국방부는 ‘음성명령에 의한 자가 습득 인공지능’ (PAL) 개발을 SRI에 의뢰하면서 1억5000만달러의 예산을 배정했다.

프로젝트의 핵심은 컴퓨터 스스로 생각하고 배우는 똑똑한 대화형 인터페이스로 영화에나 등장하는 꿈의 기술이었다.

프로젝트 리더로 선임된 SRI는 카네기 멜론, 스탠포드, 인디애나 등 20여개 대학에 과제물을 분담시켜 개발을 진행했다. 2006년 PAL의 구체적인 기능이 가시화하자 신기술이 휴대용 모바일 기기를 위한 것이란 사실이 자명해졌다.

때마침 2건의 지원사격이 나왔다. 2007년 아이폰의 출현으로 고성능 3G 스마트폰 시대가 열렸다. 또 SRI가 기업분할(스핀오프)시킨 Nuance란 벤처회사는 최신형 음성 검색엔진을 개발했다.

SRI는 Nuance 기술을 접목시켜 개인비서 역할이 가능한 대화형 인공지능을 완성했고 이를 검색엔진보다 발전된 ‘자가습득 실행엔진’(Do Engine)으로 소개해 주목을 받았다.

미국에 ‘베이-돌 법’(Bayh-Dole Act)이 있다. 정부 발주 프로젝트도 대학, 비영리 연구소, 소기업 등이 진행할 경우 지적재산권을 원천개발자의 소유로 인정해준다. 베이-돌 법이 오늘날 실리콘 밸리의 벤처 뿌리를 영글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8년 SRI는 자가습득 실행엔진을 자본으로 2400만달러의 벤처 투자를 유치해 Siri를 스핀오프시켰다. Siri는 SRI를 통해 나온 200여 벤처 중 하나다.

Siri는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다루는 민감한 기술이다. 따라서 보안이 뛰어난 아이폰 플랫폼을 선택해 2010년 마침내 앱스토어 앱으로 첫선을 보였다. 당시 Siri는 대화형이 아니라 음성인식 후 글자로 반응하는 모양새 때문에 자가습득 실행엔진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Siri의 가능성을 꿰뚫어 본 스티브 잡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인수계획을 세우고 3개월만에 2억달러 합병딜을 성사시켰다. 이후 18개월의 산고끝에 더욱 세련되고 사용자 편리성을 강조한 Siri가 iOS 5의 간판기능으로 재탄생했다.

Siri는 클라우드 서비스 기반으로 사용자와 시스템, 그리고 인터넷 검색 정보를 모두 꿰차는 혁명적인 인공지능이다. 경쟁사들의 음성인식 기술은 키워드 기반이지만 Siri는 습득한 지능을 바탕으로 음성 정보를 이해하고 추론하면서 대화한다. 사용자가 말을 하면 전후사정을 파악해서 대답하는 기술이다.

현재의 Siri는 빙산의 일각이다. 애플의 클라우드 서비스가 안정화되면 연동 앱은 더 늘어날 것이며 SDK(개발툴)가 아이폰 개발자들에게 제공되는 순간 50만개가 넘어가는 앱과 이를 응용한 새로운 대화형 앱들이 어떻게 모바일 지형을 바꿀지 상상만해도 놀랍다.

이것은 애플 혼자만의 기술이 아니었다. 정부의 과감한 투자, 연구집단의 팀플레이, 그리고 혁신적인 사업 마인드가 적시에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협력했기에 가능했다.

군산학 협업에서 파생된 신기술이 실리콘 밸리의 벤처 문화와 만날때 얼마나 큰 그림이 그려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왜 실리콘 밸리인가를 다시 생각케해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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