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칼럼]이유 없이 멍들고 코피 ... 급성골수성백혈병 위험 신호

김경하 순천향대 서울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
  • 등록 2020-11-24 오전 6:41:11

    수정 2020-11-24 오전 6:41:11

[김경하 순천향대 서울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중학교 다닐 무렵 케니지라는 미국의 색소폰 연주자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 대표곡이 영화 OST 로 쓰였던 ‘dying young (사랑을 위하여)’이다. 영화도 감명적으로 봤다. 줄리아 로버츠가 백혈병 환자의 간병인으로 나왔던 그 영화는 아직까지도 내 뇌리에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당시는 그 영화처럼 백혈병을 소재로 한 영화, 드라마가 꽤 있었다.

김경하 순천향대 서울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
20여년이 지난 지금 혈액종양내과 의사가 됐다. ‘사랑을 위하여’의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며 검색을 해 보니 영화 주인공의 병명은 그냥 ‘백혈병’이라고 나온다. 어디에도 급성백혈병인지 만성백혈병인지, 급성이라면 급성골수성백혈병인지 급성림프구성백혈병인지 나와 있지 않다. 표적치료제가 개발돼 생존율이 놀랍게 좋아진 현재도 만성골수성백혈병과 급성백혈병의 치료를 혼돈하는 경우는 많다. 사실 이들은 꽤나 다른 병이고 진단명을 명확히 구분해야 하며, 치료방법도 확연히 다른 병이다.

급성백혈병은 조혈모세포가 악성 세포로 변하고, 골수에서 증식, 말초 혈액으로 퍼져 나가 간· 비장· 림프선 등 전신을 침범하는 병이다. 백혈병 세포의 종류에 따라 급성골수성백혈병과 급성림프구성백혈병으로 나뉜다. 이 중 급성골수성백혈병이 가장 흔한 형태의 백혈병이다. 주로 성인에게 발병하며, 평균 진단 연령이 60대 후반으로 나이가 많을수록 발병률이 증가한다.

진단을 받으면 환자 본인은 건강을 해치는 잘못을 한 것은 아닌 지, 가족들은 환자를 잘 돌보지 못해서 이런 몹쓸 병에 걸리게 된 것은 아닌 지, 죄책감을 갖는 모습을 흔히 보게 된다. 그러나 급성골수성백혈병은 환자나 보호자의 잘못으로 생기는 병이 아니다.

방사선조사, 화학약품 등에 대한 직업성 노출과 항암제 등 치료약제로 알려진 것이 있지만, 극히 일부분이고, 대부분은 원인이 불분명하다. 또한 병이 생겨서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매우 짧아서 ‘몇 개월 전에 건강검진 했을 때 아무 이상이 없다 했는데 갑자기 급성골수성백혈병이라니’ 라고 이야기 하는 상황을 종종 보게 된다.

급성골수성백혈병 증상은 대부분 말초혈액의 빈혈, 백혈구 수 증가 또는 감소와 혈소판 수의 감소로 인해 나타나게 된다. 초기 증상은 빈혈로 인한 피로, 쇠약감, 안면창백이 있다. 혈소판 감소로 멍이 들고, 코피가 나거나, 잇몸에 출혈이 있을 수 있다. 또한 면역기능의 저하와 감염으로 발열 등의 증상이 나타나며 식욕부진과 체중감소가 나타난다.

병이 진행되면서 백혈병세포의 침윤으로 잇몸비대증, 간종대, 비장종대, 림프절 종대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월경 이상이나 뇌출혈도 생길 수 있다. 이런 증상들은 급성골수성백혈병에만 국한된 증상이 아니라 다양한 질환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비특이적’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래서 처음부터 백혈병을 의심하기는 어렵다. 증상들이 심해져 혈액검사를 해 보면 이상소견이 나타나 추가검사를 하게 되고, 최종적으로는 골수검사를 통해서 진단한다.

치료의 궁극적인 목표는 백혈병세포가 완전히 제거된 관해 상태와 이를 유지하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항암치료를 시행하고, 관해에 도달한 이후에는 공고요법으로 항암치료를 3-4회 더 시행하거나 조혈모세포이식을 하게 된다. 최근에는 급성골수성백혈병의 치료도 이런 고전적인 표준치료에서 한 단계씩 진화하고 있다.

70세 이상 고령환자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집중항암치료나 조혈모세포이식을 시행하기가 어려운 경우는 저강도 치료제를 사용한다. 신약들이 개발되어 널리 쓰이고 있고, 표적 치료제를 이용한 좋은 연구 결과들이 많이 나오면서 적용 범위도 확대되고 있다. 언젠가 급성골수성백혈병도 환자마다 맞춤옷을 입듯이 덜 힘들고, 효과 좋은 약들로 치료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며, 환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줄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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