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하급심 재판부가 “대법원이 체포현장에서 임의제출 형식에 의한 압수수색을 허용함으로써, 사후영장제도는 앞으로도 형해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대법원의 관례에 의문을 제기한 데 대한 답변이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기소된 박모(36)씨의 상고심에서 일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6일 밝혔다.
박씨는 2018년 5월 11일 경기도 고양시 소재 한 지하철역에서 자신의 휴대전화로 피해자의 치마 속을 4회에 걸쳐 몰래 촬영한 혐의를 받는다.
박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해 휴대전화를 임의제출 받은 경찰은 해당 휴대전화를 조사한 결과 같은해 3월 7일부터 체포 당일까지 같은 방식으로 7회에 걸쳐 몰래카메라를 촬용한 사실을 추가로 파악하고 혐의에 더했다.
1심 재판부는 이에 박씨에게 징역 1년 2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보호관찰 및 40시간의 성폭력치료강의 수강,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과 장애인복지시설에 각 5년 간 취업제한 등을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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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형이 적다며 항소를 제기했는데, 항소심을 맡은 의정부지법 형사1부(재판장 오원찬)는 기존 관례와는 사뭇 다른 판결을 내놨다. 항소심 재판부는 현행범 제포 당시 4회 촬영한 혐의에 대해서는 인정하며 1심과 같은 형을 선고하면서도, 휴대전화를 근거로 추가된 7회 촬영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한 것.
경찰이 박씨의 휴대전화를 임의 제출 받은 이후 사후 영장을 청구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휴대전화 자체가 증거로 인정될 수 없을 뿐더러, 휴대전화에서 추출된 촬영 사진 역시 유죄의 증거로 활용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그간 현행범으로 체포된 피의자의 물건을 임의제출 형식으로 압수수색할 수 있다고 한 대법원 판시에 문제를 제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대법원 판시에 따라 긴급 압수수색 절차 및 압수물에 대한 사후영장 절차는 거의 없는 것이 통례”라며 “수사기관은 현행범에게 절대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갖기 때문에 임의제출을 거절하는 피의자를 예상하기 어려워, 체포된 피의자가 소지하던 긴급 압수물에 대한 사후 영장제도는 앞으로도 형해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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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증거 능력 인정…임의성도 더 심리했어야” 파기환송
하지만 대법원은 이같은 원심(항소심)의 일부 무죄 선고를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현행범 체포 과정에서 사전 또는 사후 영장없이 충분이 압수가 가능하며, 임의성과 관련해서도 원심이 충분히 심리를 하지 않은 채 그 여부를 판단한 잘못이 있다고 설명했다.
우선 대법원은 “현행범 체포현장이나 범죄 현장에서 소지자 등이 임의로 제출하는 물건을 형사소송법 제218조에 의해 영장 없이 압수하는 것이 허용되고, 이 경우 검사나 사법경찰관은 별도로 사후에 영장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임의성과 관련 “원심은 휴대전화 제출의 임의성 여부에 대해 심리하지 않은 채 변론을 종결한 후 선고에서 직권으로 임의성을 부정하는 판단을 했다”며 “원심은 추가적인 증거조사를 하거나 임의성에 대해 증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검사에게 증명을 촉구하는 등 더 심리해 본 후 판단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현행범 체포현장에서의 임의제출물 압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휴대전화 제출의 임의성에 관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원심판결 중 무죄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한다”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