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시인' 나태주 "시인은 우울한 세상 위로하는 감정의 서비스맨"

대표시 '풀꽃'…가장 사랑받은 '광화문 글판'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순위 역주행
"시가 세상에서 성장하는 건 독자의 몫
나에게 시는 약이고 물이고 공기였다"
  • 등록 2019-01-08 오전 7:58:01

    수정 2019-01-08 오전 8:09:02

나태주 시인은 “시는 내 속에 깊이 잠든 영혼의 언어”라며 “시인이 시를 낳았다면 세상 사람들이 시를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사진=이윤정 기자).


[공주=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광화문 글판을 장식한 주옥같은 글귀 중 ‘풀꽃’ 시는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시인의 이름은 몰라도 시 구절을 읽으면 ‘아 그 시!’ 하고 떠올릴 만큼 유명하다. 40여년의 세월을 시와 함께 해 온 나태주(74) 시인이 ‘풀꽃시인’으로 불리는 이유다.

지난달 31일 직접 운영하고 있는 충남 공주시 봉황로 ‘공주풀꽃문학관’에서 시인을 만났다. 그의 대표시와 시집 등을 전시해 놓은 이 공간에선 1년에 한번 백일장, 시낭송대회 등을 진행한다. 매년 1만5000명 가량이 방문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

한파가 몰려 온 추운 날씨에도 시인의 시를 읽으며 문학관을 둘러보는 관광객들이 눈에 띄었다. 따뜻한 보이차를 건네며 그는 “시인은 아프고 우울한 세상을 위로해주는 감정의 서비스맨”이라며 “세상 사람들의 심복(心腹·마음 놓고 부리거나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돼야한다”고 강조했다.

△드라마 인기타고 순위 역주행

최근 tvN 드라마 ‘남자친구’에 시인의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지혜·2015)가 나오면서 베스트셀러 순위 역주행을 시작했다. 주인공 박보검이 가장 좋아하는 시집으로 등장한 이후 매주 순위가 급상승 중이다. 나 시인은 “드라마가 방영된 후 나중에 찾아봤다”며 “그 동안에도 잘 팔려서 15만부 정도 나갔었는데 드라마 방영 이후에 10만부 정도가 더 나갔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낸 시집만 40여권에 달할 정도로 다작을 해왔다. 올초에는 41권째 시집을 내려고 준비 중이다. “짧은 시만 묶어 낸것도 있고 사랑, 아내, 꽃에 대한 시 등 갈래별로 묶어서 냈다. 그 중 하나가 ‘꽃을 보듯 너를 본다’인데 대중의 취향과 잘 맞았던 것 같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면 세상에 내보내듯이 시인도 시를 세상품으로 보내야한다. 시를 쓰는 건 시인이지만 세상에 나와 성장하는 건 독자의 몫이다.”

가장 유명한 ‘풀꽃’은 사실 3편 중 1편이다.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풀꽃2),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풀꽃3)가 시리즈인데 상대적으로 2편과 3편이 잘 알려지지 않아 아쉽다고 했다.

“40여년간 교사를 하고 8년 정도 교장직을 지냈다. 오랜세월 교단에 서다보니 어느순간 아이들이 사랑스럽지 않은 순간이 오더라. 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볼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풀꽃’ 시를 썼다. ‘풀꽃1’이 보는 단계라면 ‘풀꽃2’는 인식의 단계, ‘풀꽃3’은 응원·격려의 단계다. 3개의 시가 다르면서도 서로 같다.”

△‘영감-울컥-슥’ 거쳐 명시 탄생

흔히 시인의 ‘감성’을 남다른 것으로 치부한다. 짧은 문구 안에 울림을 주는 강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감성은 아무때나 분출되는게 아니다. 가슴 밑에서부터 ‘영감’이 ‘울컥’하고 올라오면 바로 ‘슥’ 써야 한다. 시의 형태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짧아야 하고 내용은 삶과 맞닿아 있어야 한다.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보는 세상의 모든 것이 나에게 영감을 준다.”

시인의 시는 간결하면서도 곱씹어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 ‘묘비명’ ‘꽃그늘’ ‘좋다’ ‘가로등’ 등의 시들은 지금도 온라인 상에서 활발하게 회자되고 있다.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라고 시작하는 ‘시(제목이 ‘시‘다)’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나의 인생관이 담겨있다. 많은 사랑을 받는 시는 독자들이 답을 내준 경우다. 짧은 글 안에 일상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고 하더라.”

10여년 전 쓸개가 터져 죽을 고비를 넘겼다. 수년간 이어진 투병생활 속에서도 펜을 놓지 않았다. “시는 나에게 선택사항이 아닌 삶을 지탱해준 생활필수품이었다. 복강사이로 쓸개물이 들어가면서 장기를 녹였다. 아직도 밥을 많이 먹으면 배에 통증이 온다. 나에겐 시가 약이고 물이고 공기였다. 앞으로도 시로 세상에 대한 봉사를 하며 살아가려한다.”

나태주 시인이 충남 공주시 봉황로 ‘공주풀꽃문학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이윤정 기자).
나태주 시인이 충남 공주시 봉황로 ‘공주풀꽃문학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이윤정 기자).
나태주 시인이 충남 공주시 봉황로 ‘공주풀꽃문학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이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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