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들도 ‘감히’ 지리산을 꿈꾸게 된 것은 1987년 이후다. 성삼재를 넘어 남원으로 가는 길이 포장됐다. 종주는 쉬워졌고, 산행이 아니라 트레킹이 된 것이다. 성삼재까지 차 타고 가서 노고단 대피소를 거쳐 노고단 삼거리까지 1시간 밖에 안 걸린다.
오전 8시30분 노고단 삼거리를 출발했다. 임걸령(오전 9시30분) 샘은 물맛이 좋았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가뭄으로 물이 끊겼던 샘이다. 지리산 남부사무소 임성민씨(27)와 샘물을 나눠 마시며 왜 힘든 산꾼이 됐는지 물었다.
“대학 때까지만 해도 지리산이 어딘지 몰랐어요. 제대 후 종주를 해봤는데, 산이 너무 아름답더라고요.”
산에는 이렇게 강철 같은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는 자석 같은 마력이 있다.
지리산은 광대하다. 산이 좁아서 오르막내리막이 몰려 있는 여느 산과 다르다. 산행길은 평탄했다. 큰 가풀막도, 내리막도 없다. 가장 주의해야 할 구간은 삼도봉에서 화개재로 내려오는 끝없는 계단길. 인터넷에선 551개라고 나오는 곳도 있고, 553개 또는 562개로 나온 곳도 있다. 내리막길이라 그나마 다행이다. 토끼봉을 지나 연하천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45분. 예상시간보다 15분 늦었다. 점심은 라면에 밥. 산에서 먹는 라면만큼 맛있는 밥도 없다.
오후 2시40분 벽소령 출발. 능선은 가파르지 않았는데도 버거웠다. 오래된 건전지마냥 충전을 시켜도 금세 방전되듯 체력이 소진됐다. 배낭끈은 어깨를 파고 들었고,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졌다. 30분마다 한 번씩 주저앉았다. 앉을 때마다 가방에서 초코파이를 꺼내 동료에게 권했다. 초코파이 하나만 빼도 가벼워질 것 같았다.
“산악인들도 서로 자기 배낭의 부식을 빼려고 해요. 종주 산행시 배낭 무게만 25~30㎏ 되는데 힘들거든요.”
임씨가 웃었다. 벽소령 도착은 오후 5시. 예상시간보다 1시간 늦어졌다.
2일 벽소령 ~ 장터목
새벽녘 산장문을 여니 습기 많은 안개가 산을 삼켰다. 이 구간 안내를 맡은 임길동씨(29)는 “언제 트일지 알 수 없다. 하루종일 안개에 싸여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오전 8시 벽소령 출발. 그리 힘들지는 않았지만 사진 한 장 찍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앞섰다. 2시간의 산행 끝에 덕평봉에 다다르니 갑자기 산이 트이기 시작하더니 지리산 능선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안개비는 금세 상고대로 변했다. 나무에 서리꽃이 열렸다. 장관이었다. 사진기자는 40분 동안이나 셔터를 눌러댔다. 산은 이렇게 순간순간 변한다. 사람의 상상 밖에 있다.
세석산장 길은 지리산 종주 중 가장 험한 코스다. 로프를 붙잡고 올라서는 곳도 많다. 그늘진 숲길은 눈이 많아서 무릎까지 파묻혔다. 능선으로 올라서면 면도날 같은 바람이 얼굴을 할퀴고 갔다. 산의 가슴 속에 숨을 땐 눈과, 산의 어깨를 타고 올라설 때는 바람과 맞서야 했다. 오후 1시 세석산장 도착. 산꾼들은 세석산장을 ‘호텔’이라고 불렀다. 넓었고, 시야가 탁 트였다. 물도 풍부했다(지리산은 가을 가뭄으로 샘이 졸아들었다).
과거 산장은 개인이 운영했다. 당시엔 산장지기가 왕이었다. 조금이라도 떠들면 등산객들을 쫓아냈다. 세석도 ‘악명’이 높았다. 90년대 초반까지 4번 종주를 했는데 함께 간 후배가 텐트 구역에서 벗어났다며 산장지기에게 따귀를 맞은 적도 있다. 혹시나 해서 그 산장지기에 대해 물었더니 공원관리공단 직원도 행방을 잘 모른다고 했다. 산장은 직영체제로 바뀌었고, 당시 이야기는 이제 전설처럼 전해져온다.
오후 장터목길 역시 바람이 거셌다. 함양 마천에서 불어오는 이 바람을 두고 임씨는 “마천(함양) 똥바람”이라고 했다. 촛대봉에선 거센 바람 속에서 천왕봉과 제석봉이 또렷하게 보였다. 오후 4시30분 장터목 도착. 제석봉에서 일몰을 봤다. 서쪽 노고단 하늘은 붉었고, 동쪽 천왕봉 하늘엔 둥근 달이 떴다. 장관이었다.
팁: 배고프면 못걷는다. 아침은 꼭 먹자. 초콜릿 하나도 오르막길에선 먹지 말자. 내리막길에서 먹어라. 체온 유지가 중요하다. 쉴 때는 귀찮더라도 다운파커를 꺼내 입자.
3일 장터목 ~ 중산리
새벽 4시. 일출 산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식사준비를 하느라 들락거리는 통에 잠이 깼다. 다행히 바람도 잦았고, 멀리 남해의 불빛이 보일 정도로 새벽의 대기는 맑았다. 기온은 영하 7도. 이 정도면 따뜻한 편이다.
산행 내내 동쪽은 붉은 기운을 띠었다. ‘一’자로 그어진 붉은 선. 그 위는 파랗고, 땅은 까맣다.
천왕봉 도착 6시50분. 어둠 속에서 산들이 드러났다. 산 뒤에 산이 있고, 그 뒤에 또 산이 있다. 산과 산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산이 있을 것이다.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산들이 끝나는 지점엔 바다가 보였다. 산들의 가랑이에서 흘러나온 2개의 물줄기는 섬진강과 남강(진주)이라고 했다. 아침 동살에 강은 금빛으로 번쩍였다. 임길동씨는 “자신도 숱하게 지리산을 올랐지만 이런 일출은 딱 두번 밖에 못봤다”고 했다. 천왕봉 일출은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로터리 산장으로 내려오는 길은 가팔랐다. 오전 11시 중산리에 도착했다.
지리산 종주는 말못할 감동이 있다. 그것은 톡 쏘는 사이다 같은 경박한 느낌이 아니다. 산은 울리는 묵직한 종소리 같은 감동이다.
팁: 하산이 더 어렵다. 무릎 조심이 상책. 천천히 걷자. 얼음판 구간, 바위구간이 섞여 있어 아이젠을 신었다 벗었다하는 게 번거로울 수 있으나 안전이 최우선이란 말을 명심하자.
지리산 2박 3일 종주
보통사람들도 한 번쯤 지리산 종주를 해보고 싶어한다. 지리산 종주는 ‘로망’이다. 왜 그럴까? 지리산은 어머니 산이다. 가랑이마다 산들이 태어나서 남과 북, 동서로 휘달려 국토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을 만들어냈다. 그냥 하나의 봉우리가 아니라 전남과 전북, 경남 등에 걸쳐 있는 산국(山國)이기도 하다. 하여 종주길은 산행이 아니라 1500m 안팎의 고봉을 징검돌처럼 밟고 가는 순례의식에 가깝다. 2박3일로 지리산 종주를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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