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PN 분사, 없던 일로…행동주의 로브는 디즈니에 뭘 요구할까

디즈니 주식 10억달러 산 뒤 "ESPN 분사" 요구한 로브
한 달 채 안돼 "디즈니 내 수직네트워크로 유지 바람직"
"100여곳 EPSN 인수 문의, 이렇게 좋은 회사를 팔다니"
디즈니 반발과 월가 부정적 시각에 분사 요구 접은 듯
훌루 지분 조기 인수후 통합, 이사회 교체 등 압박...
  • 등록 2022-09-12 오전 11:17:32

    수정 2022-09-12 오전 11:20:30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미국 미디어 공룡인 디즈니(DIS) 주식을 10억달러(원화 약 1조3100억원) 어치나 사들이면서 스포츠 네트워크인 ESPN 분사를 요구했던 월가 대표 행동주의 투자자인 대니얼 로브가 돌연 자신의 분사 요구를 뒤집는 듯한 발언을 내놓았다.

대니얼 로브 서드포인트 CEO


한 달도 채 안돼 ESPN 분사에 대해 뒤바뀐 입장을 내놓은 로브가 앞으로 디즈니의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해 어떤 요구를 할 것인지 더 주목되고 있다.

로브 서드포인트 최고경영자(CEO)는 11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트윗을 통해 ESPN을 (분사하지 않고) 디즈니라는 대기업 내에서 별도의 수직적 네트워크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우리는 ESPN이 별도의 독립 사업체로서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더 잘 이해하고 있지만, 디즈니 내부에서 또 다른 수직적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디즈니가 전 세계에 더 많은 시청자들에게 도달해 더 많은 광고와 가입자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도 믿는다”고 말했다.

이에 제임스 피타로 디즈니 이사회 의장을 거론하며 “우리는 피타로 의장이 월트디즈니의 일부로서 상당한 시너지를 창출하면서 성장과 혁신 계획을 실행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로브 CEO는 지난달 15일 서드포인트가 디즈니 주식을 10억달러 어치 신규로 취득했다고 공시한 뒤 밥 채펙 디즈니 CEO 서한을 보내 “디즈니에 상당한 잉여현금흐름(FCF)을 제공하고 있는 ESPN 사업을 떼 낼 만한 강한 이유가 있다”며 디즈니에서 ESPN을 분사하라고 요구했다.

당시 로브 CEO는 “ESPN이 디즈니의 일부로 남아있는 한 스포츠 베팅과 같은 사업을 추구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과거 2015년에 이커머스업체인 이베이가 지급결제부문인 페이팔을 분사한 뒤로도 계약을 맺어 시너지를 내고 있는 것을 보면 ESPN도 이런 방식이 가능할 것”이라고 제안한 바 있다.

이에 디즈니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내비쳤었다. 디즈니는 “어떤 투자자의 의견도 환영한다”면서도 “디즈니는 그동안 사업 전반에서 지속적 성장을 보여왔고, 세계적 수준의 스토리텔링과 독창적이면서도 가치있는 콘텐츠 제작과 유통 생태계를 바탕으로 강력한 재무 성과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또 “독립적이고 경험 많은 현 이사진도 탁월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며 그의 요구에 선을 긋는 듯한 발언도 했다.



특히 지난주 말 채펙 CEO는 D23 엑스포에 참석한 자리에서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은 채 “우리는 ESPN에 관한 거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서 “ESPN이 팔릴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온 뒤로 100곳 이상의 인수 문의가 있었는데, 그 만큼 ESPN이라는 회사가 정말 대단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며 또 한 번 로브 CEO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음을 시사했다.

이처럼 디즈니 측 입장이 완강한데다 월가에서도 ESPN 분사에 부정적 의견이 나온 탓에 로브 CEO로서도 이를 철회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디즈니는 페이TV 사업자들에게 ESPN을 케이블 패키지에 포함시키도록 요구하면서 ESPN과 ESPN2 채널을 묶어 ESPN+라는 자체 스트리밍으로도 매달 9.99달러를 받고 있다. 특히 ESPN+는 디즈니+ 중에서도 가장 강한 성장성을 보이는 부문으로, 지난 2분기에만 구독자가 무려 53%나 늘어나 디즈니+ 전체 구독자수 서프라이즈를 주도했었다. 이런 인기를 등에 업고 ESPN+는 소비지출 둔화 우려가 큰 와중에서도 지난달 월정액을 6.99달러에서 단 번에 역대 최대인 43%나 인상하기도 했다. 또 케이블 방송에서도 디즈니 실적을 주도하는 이른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2분기에 ESPN 호조 덕에 디즈니는 케이블 네트워크분야에서도 72억달러 매출과 25억달러 순이익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는 스트리밍부문에서의 손실을 상쇄시켰다.

이렇다 보니 투자회사인 라이트셰드파트너스의 리처드 그린필드 창업주는 “디즈니는 ESPN이 창출하는 잉여현금흐름을 통해 스트리밍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가속화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특히 ESPN은 디즈니가 보유한 ABC 방송과 인력이나 콘텐츠 라이선스를 공유하고 있는 만큼 분사가 훨씬 더 어려울 수 있다”고 점쳤다.

이렇다 보니 ESPN 분사 요구를 철회할 경우 로브 CEO가 앞으로 다른 어떤 요구를 할 것인지 주목된다.

로브 CEO는 지난달 ESPN 분사 외에도 스트리밍 서비스인 훌루 지분 전량을 취득해 디즈니+와 통합하라고도 했다. 디즈니는 현재 훌루 지분 67%를 가지고 있고, 나머지 33% 지분을 가진 컴캐스트로부터 2024년까지 추가로 지분을 사들이기로 했는데, 이 시점을 앞당기라는 얘기다. 또 구체적 인물을 적시하지 않았지만 이사회 부분 교체와 비용 절감을 회사 측에 요구하기도 했다.

한편 디즈니 주가는 로브 CEO가 지분 인수를 발표한 이후 6.5% 정도 상승하면서 시장금리 급등 이후부터의 주가 낙폭을 대부분 만회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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