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일고시원 건물주는 왜 스프링클러 설치를 반대했을까?

3년전 고시원주 스프링클러 지원사업 신청해 선정돼
스프링클러 설치 반대한 건물주 탓 화재 무방비 노출
건물주 용도변경, 매매 등 불이익 우려해 반대한 듯
서울시 7년간 222개 고시원 지원.."문턱 낮추고 예산 늘릴 것"
  • 등록 2018-11-20 오전 8:00:00

    수정 2018-11-20 오전 9:34:19

지난 9일 오전 화재가 발생한 서울 종로구 관수동의 국일고시원서 경찰 및 소방 관계자들이 현장 감식을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손의연 기자] 사망자 7명, 부상자 11명의 인명피해를 낸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사고. 스프링클러만 있었어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고시원 운영업자는 서울시가 지원하는 스프링클러 설치 지원사업을 신청했지만 건물주가 반대해 무산됐다. 건물주는 고시원주가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대신 5년간 대실료 동결해야하는 지원 조건을 수용했음에도 불구, 임대사업에 차질을 빚을까 하는 노파심에 이를 거부했다.

스프링클러 설치 반대한 건물주 탓 화재 무방비 노출

화재가 난 국일고시원 운영업자는 지난 2015년 서울시에서 시행하고 있는 노후고시원 간이스프링클러 설치사업에 지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5년 총 90개 고시원이 간이스프링클러 설치 지원사업에 지원했다. 당시 국일고시원도 스프링클러 설치 사업에 지원했다. 서울시는 국일고시원을 포함해 43개 고시원을 지원 대상으로 선정했으나 이중 국일고시원을 포함한 4개 고시원이 스프링클러 설치를 포기했다.

시 관계자는 “건물주가 고시원을 직접 운영하는 경우보다는 장소를 빌려 고시원을 운영하는 업주들이 신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신청을 철회한 고시원의 구체적인 사업포기 사유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간이스프링클러 설치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고시원 운영자와 5년간 대실료 동결을 요구한다. 거주자 주거안정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국일고시원 사업자는 이를 수용했지만 건물주가 거부했다.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려면 건물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서울시는 고시원 건물주가 대실료를 5년간 동결하는 조건으로 스프링클러를 설치할 경우 건물의 용도 변경, 업종 전환, 매매 등이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를 거부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간이스프링클러는 고시원 각 실 천정에 설치된다. 때문에 해당 고시원에 다른 업종이 들어왔을 때 간이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는 게 반드시 좋은 일만은 아니다.

시 관계자는 “사실 임대료 5년 동결 조건이 있어도 건물주가 건물을 판다거나 고시원 업종을 변경한다고 했을 때 시가 그걸 막는 방법은 없다”라며 “고시원 건물주가 임대료 5년 동결 조건에 대해 향후 건물 운영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2012~2018 노후고시원 간이스프링클러 신청, 선정 현황’ (표=서울시)
서울시 “설치규정 완화하고 지원예산 확충”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된 건 2009년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개정되면서다. 문제는 소급적용을 하지 않아 그 이전부터 운영해온 고시원은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가 없는 것이다. 약 1300여 곳의 고시원이 이에 해당한다. 이서울시는 지난 2012년부터 노후고시원 안전시설 설치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시는 2012년부터 지금까지 총 222개 고시원, 8979개 실에 35억여원을 투입해 스프링클러를 설치했다. 고시원 당 설치비용은 평균 2000만원이다. 지원사업 초기인 2012년에는 1억원이 책정됐지만 사업 지원을 요청하는 고시원들이 많아져 2013년에는 7억 8000만원, 이후에는 평균 5억원 정도의 예산을 유지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 올해는 5억 5000여 만원 예산을 투입해 30개 고시원에 스프링클러를 지원했다.

그러나 아직도 1100개소에 달하는 고시원이 화재 위험으로부터 그대로 노출돼 있다. 하지만 모든 노후고시원이 지원 대상은 아니다. 지원사업 대상은 2009년 7월 이전부터 운영돼 소방안전시설 설치현황이 현행기준과 맞지 않는 고시원이다. 입주자 중 50% 이상이 취약계층이어야 한다는 조건도 있다. 고시원 자체적으로 입주민을 조사해 취약계층인지 확인하고, 구청의 확인까지 받아야 한다.

그러나 국일고시원은 이같은 까다로운 기준을 충족해 지원 대상에 선정됐음에도 불구, 건물주의 반대로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못했다.

시 관계자는 “임대료 동결은 스프링클러를 설치했다고 거주비를 더 비싸게 받는 경우를 제재하기 위한 목적이지만 고시원 운영자나 건물주가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생각한다”라며 “국일고시원 같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임대료 동결 조건을 완화할 예정이며 향후 예산 확대 등 종합적으로 대책을 강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류상일 동의대 소방방재행정학과 교수는 “화재와 재난에 취약한 건 최신 건물보단 오래된 건물이다. 따라서 노후 건물에 스프링클러같은 안전시설이 반드시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라며 “행정기관의 지원사업이라 임대료 동결 등을 반대급부로 요구했지만 화재나 재난 방지를 위한 경우 소급적용 등 안전을 최우선하는 규정과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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