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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APEC 정상회의는 고도의 긴장감 속에서 진행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자간 무역협정을 지지하기 위해 모인 아시아·태평양 국가 지도자들 앞에서 “다자간 무역협정은 불공정하다”고 포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은 미 정부가 수십년 동안 가지고 있던 다자간 무역협정에 대한 주도권을 포기했고, 미국과 아·태지역 파트너들과의 분열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북핵 문제에선 협력을 요구하면서 통상문제에선 보호무역주의를 주장하며 독자 행보를 걸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모순된 요구를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APEC 회원국 정상들은 이날 “규범에 기반을 둔 자유롭고 개방되며 공정하고 투명하며 포용적인 다자 무역체제를 지지하는 APEC의 핵심적 역할을 강조한다”는 내용의 ‘다낭 선언문’을 채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탈퇴를 선언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나머지 11개국 통상장관들도 “핵심 요소들에 합의했다”면서 미국 없이 다자 무역협정을 지속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또는 경제 민족주의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를 주도한 것은 중국이었고 한국과 러시아, 일본 등도 동참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폐쇄 속 발전은 아무런 성과가 없고 개방된 발전이 옳은 선택이라는 것을 역사가 가르쳐줬다. 세계화는 되돌릴 수 없는 역사적 흐름”이라며 미국을 겨냥해 일침을 놨다. WSJ은 시 주석이 APEC 정상회의에서 새로운 국제사회 리더로 자리매김했다고 전했다.
한편 외신들과 전문가들은 향후 세계 통상질서 재편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주도권 다툼을 벌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이번 회의에서 미국은 2004년부터 중국 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창설에 제동을 걸어 구체적 추진 계획 마련을 무산시키기도 했다. 일본 게이오대학의 후쿠나리 키무라 교수는 “다자간 무역협정에 반대하는 미국의 통상외교 방식이 세계 무역 자유화 등 새로운 경제질서 형성을 지연시키고 세계화에 대한 회의론을 확산시킬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