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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 1994년 봄에 ‘TV청년내각’이라는 프로그램을 연출한 적이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 젊은이들이 모여 ‘희망의 나라’(가상국가)를 만들고 ‘청년국회’ 의원들과 토론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시청자반응은 엇갈렸습니다. “신선한 것 같은데 유치하다.” “예능인지 교양인지 모르겠다.”
초기의욕은 대단했습니다. 시청률(지지율) 20퍼센트를 넘지 못할 경우 내각의 전면교체까지 공약했습니다. 어디서 이런 자신감이 나왔을까요? 이전에 연출했던 프로그램들이 나름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자아도취는 자승자박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방송 4주 만에 전면개각을 단행했습니다.
청년내각의 국정기조는 대한민국헌법 제10조에서 따왔습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백범 김구 선생이 쓴 ‘내가 바라는 우리나라’에도 행복한 나라의 모습이 나옵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입니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을 ‘더다이즘’으로 번역합니다. ‘더’ 잘사는 것도 좋지만 ‘다’ 잘 사는 것은 더 좋다는 뜻입니다. ‘더’ 새롭게, ‘다’ 행복하게 살려면 백범처럼 문화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문화의 목표는 결국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대화를 통해 변화를 찾고 평화를 구하는 게 문화의 여정입니다. 노예가 되고 기계가 된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숨 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문화의 힘입니다. 어떤 점에서 문화(culture)는 농사(agriculture)와 닮았습니다. 수확의 희망을 품은 농부들은 그 땅에 맞는 작물이 무엇인지를 가늠해야 합니다. 그들은 지배자가 아니라 재배자입니다. 슬기로운 농부는 때를 놓치지 않습니다. 제때 심고(모내기) 제 때 뽑습니다.(김매기)
대통령과 PD는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경쟁해야 하고 인정받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왜 경쟁하고 왜 인정받고자 하느냐 입니다. 자신만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국민(시청자)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입니다. 혼자서 다 할 수 없으므로 전문가를 모아야 합니다. 전문가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어야 하고 그 사람이 진짜 인재인지를 검증해야 합니다. 그렇게 뽑힌(편집) 창의적 인재들이 아름다운 목표를 향해 즐겁게 협의하도록 판을 깔아주는(편성) 게 PD의 역할입니다. 그런 면에서 집현전이라는 역대급 프로덕션을 기획한 세종대왕은 최고의 PD였습니다. 청년내각 시즌2의 모델은 아마도 그가 성취한 희망의 나라, 곧 문화민주주의가 될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