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이 바람났다 그 여자와 친구됐다

블랙 아이스
  • 등록 2009-04-21 오전 11:50:00

    수정 2009-04-21 오전 11:50:00

[조선일보 제공]
"너무 많이 알면 다친다"는 말은 주로 농담에 섞여 쓰이지만, 사실 금언(金言)에 가깝다. 누구나 자신과 관련해 벌어지는 모든 일을 알고 싶어한다. 그러나 때로는 윤곽에 접근했을 때 물러서는 것이 현명하다. 23일 개봉하는 핀란드 영화 '블랙 아이스'는 남편의 젊은 연인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그녀의 친구가 된 여자가 겪는 불행한 이야기다.

대학교수 레오(마르티 수오살로)와 산부인과 의사 사라(우티 마엔파)는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는 부부다. 사라는 자신의 마흔 번째 생일에 우연히 남편에게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가 남편의 제자 툴리(리아 카타야)임을 알게 된 사라는 툴리가 사범으로 일하는 태권도장에 찾아갔다가 그녀에게 태권도를 배우게 된다. 다른 이름으로 남편의 연인에게 접근한 그녀에게 툴리는 자신이 사귀는 유부남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한다. 

▲ 블랙 아이스의 한장면./케이앤엔터테인먼트 제공

이 영화는 바람난 남편을 둔 여자와, 그 여자의 남편을 사랑하는 여자의 버디 무비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물론 사라는 툴리를 할퀴고 물어뜯어 산산조각 내고 싶어한다. 그러나 영화제목(black ice·도로에 낀 살얼음)처럼 투명하고 얇은 가면을 쓰고 다정한 모습으로 연적(戀敵)에게 접근한다.

툴리는 사라 앞에서 사라의 남편을 "너무 사랑하니까 힘들다"고 말한다. 툴리는 남편의 또 다른 여자관계도 알고 있다. 사라는 남편의 연인보다도 남편에 대해 모르는 자신을 발견하며 좌절에 흡사한 분노에 떤다. 별거를 선언하고 집을 나온 사라는 남편의 연인과 시간을 함께 보내며 남편과 그녀가 통화하는 것을 지켜본다. 두 여자 사이엔 기묘한 우정(같은 것)이 싹튼다.

그럴수록 아내는 남편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증오하게 되고, 자신의 삶과 사랑에 대한 회의도 짙어진다. 영화 중반 위기의 부부가 나누는 노골적 정사는 화해의 몸짓이 아니다. 껍데기와 육욕(肉慾)밖에 남지 않아 너덜거리는 남녀관계의 상징일 뿐이다. 핀란드의 페트리 코트비카 감독은 평범한 삼각관계에서 스릴 넘치는 치정 드라마를 끌어냈다. 태권도가 주요 모티브로 등장하면서 태극기와 함께 등장하는 '차렷!', '쉬어!' 같은 구호가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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