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병·대장염으로 오해 많아
흡연자·가족력 있으면 CT 검사를
"선생님, 요즘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 되는데 위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가요?"
"배가 자주 아프고 만성변비로 고생하고 있는데 대장암은 아닐까요?"
췌장암은 다른 암 세포보다 증식 속도가 빠르고 복부 내 다른 장기와 근접해 있어 전이도 잘 되는 최악의 암이다. 전이가 되면 대부분 수술이 어렵고,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도 잘 안 된다.
"췌장암은 희망이 없다"고 많은 사람이 말하는 이유다. 실제로 2002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암 진단 후 1년 내 사망률이 1위다. 췌장암도 암 크기가 2㎝ 이하이고 전이가 되기 전 조기암 상태로 발견해서 외과 수술을 받으면 희망을 가져볼 만하지만 문제는 조기암 상태로 발견될 확률이 일본에서도 3% 미만일 정도로 극히 낮다는 것. 위나 대장처럼 내시경으로 들여다 볼 수도 없고, 복부 초음파 검사로도 놓치기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췌장암에 대해선 더 예민하게 '감시체계'를 가동시켜야 한다.
■이럴 때 췌장암을 의심하라
췌장암 초기, 암이 진행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속이 더부룩하고 불편하다' '소화가 안 된다' '명치가 아프다' '변비가 심해졌다' 등의 증상을 호소한다. 신경성 위염이나 과민성 대장염과 증상이 비슷해 많은 병원에서는 위나 대장 이상을 의심하고 내시경 검사를 권한다.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김명환 교수는 "췌장암은 50세 이후 발생률이 급격히 증가하는데, 이 연령대의 많은 사람이 위염을 앓고 있어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위 내시경을 했는데 큰 문제가 없고 신경성 위장병 치료를 했는데도 증상이 계속되면 췌장암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갑작스런 당뇨병도 췌장암의 신호일 수 있다. 췌장 기능이 떨어지면 인슐린 분비가 제대로 안돼 췌장암 환자의 약 50~80%에게서 혈당조절에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가족력이 없는데 중년(45세) 이후 갑자기 당뇨병이 나타났거나 당뇨병이 더 심해졌다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췌장의 염증도 원인이 될 수 있다.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이규택 교수는 "췌장염의 주 원인은 술인데, 중년 이후 뚜렷한 원인 없이 췌장염이 생겼을 때도 췌장암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췌장암과 췌장염은 함께 동반되는 경우가 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운이 좋으면 피부와 눈 흰자위가 노랗게 되는 황달이 빨리 나타나 조기에 암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췌장암은 보통 3분의 2 이상이 췌장 머리 부분에서 발생하는데, 이 때 암 종양이 담관을 막아 담즙 분비가 되지 않으면 황달이 생긴다.
또 45세 이후 6개월 내 10㎏ 이상 체중이 줄었거나 윗배에 통증이 있고 식사 후나 누워있을 때 증상이 더 심하면 췌장암을 의심해 볼 수 있다.
■흡연·서구식 식습관이 원인
물론 소화불량이나 당뇨병을 앓고 있는 모든 사람이 췌장암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췌장암 발병 고위험그룹에 속해 있는 사람은 소화불량이나 갑자기 생긴 당뇨병 등의 증상을 예사롭게 넘기지 말고 꼼꼼히 체크해 봐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암협회(ACS)에 따르면 전체 췌장암 환자의 20~30%가 흡연 때문이고 흡연자는 비흡연자에 비해 췌장암 발병률이 2~3배 높다.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송시영 교수는 "지금까지 알려진 췌장암의 가장 큰 원인은 흡연이다. 담배를 피우면서 당뇨병이나 만성 소화불량 등을 경험하고 있다면 췌장을 잘 볼 수 있는 CT(전산화단층촬영)등으로 검사를 해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식사 습관도 문제다. 국립암센터 암예방검진센터 박경우 박사는 "췌장암 발병 원인의 약 20%가 고열량, 고지방 식이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보고된 바 있다"며 "서구에서 흔한 췌장암이 한국이나 일본에서 최근 급격히 증가한 것도 식습관 변화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고위험그룹, 2~3년에 한번 CT 찍어라
췌장은 신체 가운데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작은 장기여서 일반적인 복부 초음파 검사로는 조기발견이 쉽지 않다.
특히 복부 비만이거나 장에 가스가 많은 경우 췌장을 정밀하게 보기 어렵고, 시술자의 경험과 초음파 기기의 해상도에 따라서도 검사결과가 차이가 날 수 있다. 따라서 췌장암의 조기발견을 위해서는 CT 검사가 필요한데, 방사선 조사량이 일반 X선 검사보다 100배나 많고 가격도 비싼 CT 검사를 모든 사람에게 권장할 수도 없다는 것이 문제다.
서울대병원 외과 김선회 교수는 "췌장암 고위험그룹에 속하는 사람은 복부초음파 등 다른 검사와 번갈아 가며 CT를 2~3년에 한 번씩 찍어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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