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외눈박이 괴물을 닮았다 [물에 관한 알쓸신잡]

태풍의 위력과 에너지 순환 기능
  • 등록 2022-09-10 오전 11:30:00

    수정 2022-09-10 오전 11:30:00

[최종수 환경칼럼니스트(박사/기술사)] 역대 최고의 태풍이라고 예보했던 태풍 ‘힌남노’가 경남 남해안을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태풍의 위력은 다행히 당초 예상보다 약했지만 태풍이 휩쓸고 간 지역에는 인명피해를 비롯해 상당히 깊은 상처가 남았습니다.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를 향해 북상 중인 지난 5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항 방파제 뒤로 파도가 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매년 이맘때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연례 행사처럼 태풍 위험에 노출됩니다. 특히 대만 앞바다에서 부메랑처럼 휘는 태풍 이동경로 때문에 우리나라와 일본을 관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커다란 눈과 나선형 몸통, 그리고 부메랑 모양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면 태풍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 또는 사이클롭스(cyclops)를 연상시킵니다. 키클롭스는 닥치는 대로 사람을 잡아먹는 잔인한 외눈박이 괴물입니다. 태풍과 같은 원리로 인도양에서 발생하는 사이클론(cyclone)의 어원이 여기에서 유래했습니다.

키클롭스와 사이클론, 그리고 태풍은 어원 때문인지 서로 많이 닮았습니다. 눈 하나를 가진 생김새뿐만 아니라 지나간 자리마다 닥치는 대로 잡아먹고 파괴하는 잔인한 성격까지 말입니다.

태풍은 왜 장마와 달리 생긴 것도 무섭고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일정한 경로를 따라 이동하는 걸까요? 근본적인 이유는 간단합니다. 날씨가 따뜻하면 물이 증발해 구름이 만들어지고 구름은 바람을 따라 이동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지구 자전이 만들어 주는 다소 복잡한 공기 움직임이 더해져 나선형 생김새와 부메랑 형태의 이동경로가 만들어집니다.

우리나라에 접근하는 태풍은 대부분 필리핀 앞바다에서 만들어집니다. 태풍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바닷물 온도가 26℃ 이상으로 따뜻해야 하는데 이 지역이 딱 맞는 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바다에서 증발한 수증기는 공기 중으로 올라가면서 온도가 낮아져 물방울로 변합니다. 수증기가 물로 바뀔 때는 응축열이라는 열을 방출합니다. 물이 수증기가 될 때 흡수했던 증발열을 다시 내어놓는 셈이지요. 응축열로 따뜻해진 공기는 가벼워져 상승 속도가 빨라집니다. 따뜻한 바닷물 위의 공기가 위로 상승하기 때문에 태풍 가운데는 저기압이 됩니다.

우리가 재난 방송에서 들었던 헥토파스칼의 단위로 바꿔보면 930~970hPa(헥토파스칼)의 저기압이면 태풍으로 분류됩니다. 1기압이 1013hPa이니까 표준 대기압에 비해 5~6% 정도 기압이 낮은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압이 낮으면 주변에 있는 공기가 몰려듭니다. 마치 수압이 낮은 곳으로 물이 흘러드는 것처럼 말이죠. 바다에서 수증기를 많이 공급받을수록 공기가 상승하는 힘이 강해지고 중심 기압은 낮아지기 때문에 바람도 세지고 태풍 위력도 커집니다. 반대로 바닷물 온도가 낮은 곳이나 육지를 만나면 수증기를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에 태풍의 세기는 급격하게 약해집니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태풍 주변에 있던 공기가 태풍 중심부로 이동하면서 바람을 만드는데 이 바람 방향은 우리의 예상과 달리 직선으로 불지 않고 지구 자전의 영향을 받아 나선형 모양을 갖습니다. 공기를 포함해 지구상에 있는 모든 물체는 움직일 때 자전의 영향을 받습니다.

이 힘을 전향력이라고 하는데 자세한 설명은 과학 선생님 몫으로 남겨 두고 여기서는 자전의 영향으로 지구 북반구에서 움직이는 물체는 당초 진행 방향보다 약간 오른쪽으로 휘게 된다는 설명만 다루겠습니다.

태풍 중심부를 향해 부는 바람은 자전의 영향으로 풍향이 오른쪽으로 조금씩 휘면서 태풍의 전체적인 바람의 방향은 반시계 방향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태풍이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면서 이동하는 이유입니다.

태풍의 위력이 커져 회전속도가 빨라지면 원심력에 의해 태풍의 중심에는 구름이 없는 빈 공간이 생기는데 이곳이 바로 태풍의 눈입니다. 태풍의 중심에 있지만 구름이 없기 때문에 잠깐이나마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지요.

태풍과 사이클론이라는 단어가 난폭한 외눈박이 괴물 이름에서 유래했을 정도로 태풍은 인간에게 잔인하고도 포악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지구 입장에서 보면 태풍은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태풍은 저위도에서 생겨 고위도로 이동하면서 사라지는데 이 과정을 통해 태풍은 중요한 몇 가지를 실어 나릅니다.

바로 에너지와 물입니다. 열대지방을 비롯해 저위도에 축적된 에너지를 고위도로 운반함으로써 지구 전체의 에너지 순환을 가능하게 합니다. 바다에 있는 많은 물을 육지로 옮겨주는 역할도 하지요.

지구 차원에서 보면 태풍은 에너지와 물질을 지구에 골고루 운반하기 위한 대규모 수송 작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태풍을 괴물로 볼 수 없는 이유이지요.

하지만 최근의 태풍 발생현황을 보면 태풍이 점점 괴물이 되어 가는 듯한 불안감을 떨칠 수 없습니다. 횟수는 점점 더 잦아지고 강도는 점점 더 세어지기 때문입니다. 기후변화로 바닷물이 점점 따뜻해지기 때문인데 더 큰 걱정은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점입니다.

최종수 환경칼럼니스트(박사/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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