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연극 ‘파우스트 엔딩’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를 원작으로 한다. 하지만 원작과 달리 신(神)은 우스꽝스럽게 그려지고, 파우스트의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괴테의 파우스트를 축약하거나 재현한 작품이 아니라, 극작자 겸 연출가 조광화가 ‘파우스트’를 읽고 해석한 바를 토대로 재창작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 연극 ‘파우스트 엔딩’에서 파우스트 역의 김성녀(오른쪽)와 메피스토 역의 박완규가 공연하고 있다(사진=국립극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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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파멸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파우스트 엔딩’은 조광화의 전작인 ‘미친 키스’, ‘철안붓다’와 궤를 같이 한다. 인류 번영을 위해 축적해온 지식과 기술이 오히려 인간을 위협하고 세상을 파괴한다고 말한다. 극중 파우스트의 연구실은 이런 인간 문명의 축소판으로 비춰진다. 법, 의학, 예술, 종교 등 각 분야에서 더 강력한 힘을 갖기 위해 다투는 학생들의 공간이자, 파우스트가 유토피아를 꿈꾸며 인간 개조를 시도하는 장소인 연구실은 ‘더 잘 살기 위한’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세상을 파멸시키는지 보여준다.
조광화는 1, 2부로 구성된 방대한 원작을 110분 분량으로 압축하며 인물과 사건을 단순화했다. 여기에 뮤지컬처럼 노래와 안무를 삽입하고, 기괴한 모습의 퍼펫(인형)을 등장시키는 등 직관적으로 내용을 전달해 원작의 지루함을 덜어내려 애썼다. 여성 파우스트를 등장시킨 연출도 신선한 대목이다. 늙은 남성 파우스트와 어린 여성 그레첸의 사랑을 버리고, 여성 연대로 표현해 동시대 관객들과의 교감을 시도한 것으로 읽힌다.
무엇보다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라고 외치며 메피스토와 계약을 맺은 파우스트가 스스로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괴테가 원작에서 구원받는 파우스트의 모습을 통해 인간은 방황하더라도 노력이라는 과정을 거쳐 결국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면, 조광화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으로 지옥에 가는 파우스트를 통해 인간의 욕망으로 세상이 종말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마당놀이 여왕’ 김성녀가 평생을 학문에 전념했지만 인간 이해에 한계를 느끼고 허무함만 남은 학자 파우스트 역을, 박완규가 인간을 유혹해 영혼을 담보로 거래하는 악마 메피스토 역을 각각 맡아 열연한다. 특히 악마로 분한 박완규의 연기가 압권이다. 강현우, 고애리, 권은혜, 김보나, 김세환, 이원준 등 15명의 배우가 출연한다. 오는 3월 28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한다. 관람료는 2만~5만원.
| 연극 ‘파우스트 엔딩’에 등장하는 신들은 툭 하면 “오 마이 갓”을 외치는 등 우스꽝스럽게 그려진다(사진=국립극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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