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으로 보는 증시]"내 목숨을 AMD에" 진격의 리사 수

2014년 풍전등화 AMD의 CEO로 선임
CPU 개발 매진해 업계 1위 인텔 기술력으로 압도
2달러 수준이던 주가, 4년만에 30달러로 15배
  • 등록 2019-06-22 오후 1:10:00

    수정 2019-06-22 오후 1:10:00

리사 수(Lusa Su) AMD 사장 겸 CEO
[이데일리 김무연 기자] “사실에 가까운 비주얼과 이미지 품질 및 게이밍 경험을 쉽게 창작, 캡처하고 공유할 수 있는 환경까지 지원하며 모든 가격대에서 모든 게이머에게 탁월한 성능과 기능을 제공할 것입니다”

AMD 최고경영자(CEO) 리사 수(Lisa Su) 박사는 지난 10일(현지시각) 미국 LA에서 열린 전자엔터테인먼트박람회(E3)에서 ‘넥스트 호라이즌 게이밍(Next Horizon Gaming)’ 라이브 스트리밍 행사에서 자사의 차세대 PC 게이밍 플랫폼(RX 5700 시리즈 그래픽 카드 및 3세대 AMD 라이젠(Ryzen) PC 프로세서)을 공개하며 이같이 밝혔다.

이미 CPU 시장에서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으며 인텔을 위협한 역사를 쓴 리사 수 박사의 발표는 곧 주가에 영향을 미쳤다. 10일 AMD의 주가는 종가 기준 33.23달러를 돌파하며 전거래일 종가인 32.41달러보다 2.5% 상승했다. 올해 초 18달러 수준이던 주가를 감안하면 불과 6개월 여만에 2배 이상 급등한 셈이다. 상대적으로 게임 부문에 약세를 보이는 AMD지만 시장은 주가로서 리사 수 박사에게 신뢰를 보냈다.

위기의 AMD, ‘불도저 쇼크’와 모바일로의 트렌드 변화 직격

1969년 설립된 반도체 업체 AMD는 인텔과의 정식 계약을 통해 인텔 CPU의 호환제품을 생산하는 2차 공급업체로서 출발해 1972년 나스닥 시장에 상장됐다. 그러나 인텔과 상표권 분쟁에서 승리한 뒤 사실상 독자노선을 걷기 시작했고, 2006년 6월 그래픽카드 생산업체 ATI를 인수합병하면서 본격적으로 GPU(Graphic Processing Unit·그래픽카드의 핵심 부품)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국내 게이머들에게도 친숙한 그래픽 카드 ‘라데온 시리즈’가 바로 ATI가 보유한 그래픽 카드 브랜드다.

현재 ADM는 지포스를 생산하는 엔비디아(NVDIA)와 GPU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글로벌 게임용 GPU 시장 점유율에서는 엔비디아가 10년 넘게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고 전체 GPU 시장에서도 지난해 80% 수준의 점유율을 확보하며 우위에 있지만 엔비디아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이 AMD라는 점에서 양사의 라이벌 관계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한 인텔이 절대 강자로 군림한 CPU 시장에서도 점차 점유율을 늘리는 추세다.

다만 AMD가 ‘영광의 역사’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인텔이 2000년대 중반 출시한 CPU ‘코어2’ 시리즈에 완전히 밀렸던 AMD는 새로운 모듈 방식의 아키텍쳐인 ‘불도저 마이크로아키텍처’를 개발했고 이를 바탕으로 2011년 하반기에 ‘잠베지’를 시장에 내놨다. 문제는 잠베지 시리즈의 성능이 AMD가 내좋은 전 세대 CPU보다 못했다는 것. 결국 AMD는 2012년 4 분기 매출은 11억6 000만 달러로 전년동기 대비 32% 감소했으며 순손실 규모 또한 4억 7300만 달러에 달했다.

‘불도저 쇼크’ 이후에도 경쟁사 대비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제품 라인업을 선보이지 못한데다 모바일 시장의 급성장 및 이에 따른 PC 출하량 감소로 어려움을 이어갔다. 특히 모바일 시장의 성장세를 읽지 못하고 ATI의 모바일 그래픽 사업부를 퀄컴에 팔아버린 점도 뼈아팠다.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던 AMD는 결국 2015년 1억 달러에 달하는 기존 재고를 청산하기 위해 새로운 제품 출시를 중단하는 사태까지 직면하게 된다.

급기야 당해 말에는 글로벌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회사에 ‘투자부적격’ 등급을 매기는 일까지 발생했다. 2011년 초 9달러 수준이던 주가는 2015년 말 2달러까지 떨어졌고 회사의 미래에 불안감을 느낀 인재들은 경쟁사로 짐을 싸기 시작하며 ‘풍전등화’의 상황에 놓였다. 그러나 리사 수의 진가는 이때부터 발휘되기 시작했다.

‘진격의 리사 수’ GPU 모아 라이젠 한 방

1969년 대만 타이난에서 출생한 리사 수 박사는 2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 대만계 미국인이다. 1986년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 입학해 전기공학을 전공한 그는 같은 대학에서 웨이퍼 제작 관련 분야로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학계에 남기보다는 현업에 뛰어드는 것을 선택, 1994년 반도체 업체 TI(Texas Instruments)에 입사했다.

이듬해 IBM 반도체 R&D부서의 이사로 자리를 옮겼던 그는 2007년 프리스케일로 이직해 회사의 기업공개(IPO)를 성공시키며 공학적 전문성 뿐 아니라 기업 전략에도 뛰어난 면모를 드러냈다. 그는 2012년 AMD에 부사장 겸 총책임자로 영입됐고 이후 2014년 AMD의 사장 및 CEO로 취임하면서 위기에 빠진 회사를 살릴 구원투수로 등판하게 된다.

리사 수 박사는 사장 취임 직후 7%에 달하는 인력 감축에 들어가며 회사의 안정화를 꾀했다. 한편 Rx 200 시리즈 그래픽 카드의 가격을 낮추는 승부수를 띄웠다. 당시 비트코인 채굴붐이 잦아들며 채굴에 필요했던 고가의 그래픽카드 수요가 줄었지만 리사 수의 저가 전략에 힘입어 Rx 200 시리즈는 지속적으로 판매됐다. 또한 GPU 시장의 외연을 플레이스테이션 등 콘솔 시장으로까지 확장해 수익원을 늘리는 전략을 짰다.

GPU 판매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실탄을 확보한 리사 수 박사는 비주력 사업에서 철수하고 CPU 개발에 매진, 2017년 ‘ZEN 마이크로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 라이젠(RYZEN) 시리즈를 내놓았다. 출시 전만해도 ‘불도저’ 등으로 AMD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상황이었지만 가격과 성능면에서 기존 자사 제품은 물론 인텔조차 압도했고, 시장의 파란을 일으키며 압도적 시장 지배자인 인텔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바닥을 치던 주가 또한 2017년 말 10달러 선까지 회복됐다.

결국 리사 수가 이끄는 AMD는 지난 5월 27일 대만 IT 박람회인 ‘컴퓨텍스 타이베이 2019’에서 라이젠 3세대인 ‘zen 2’를 발표해 시장을 경악시켰다. 인텔이 아직도 14nm에서 멈춰있는 상황인데 무려 7nm 공정을 사용해 성능과 가격 모두 업계 1위를 앞지른 것이다. 5월 24일 26.44달러던 주가가 다음 거래일인 28일(27일은 메모리얼 데이라 장이 열리지 않음) 29.03달러까지 상승했다.

게이밍 그래픽 부문도 ‘리사 수’ 매직 통할까

리사 수 박사의 집권 이후 AMD는 CPU 부문에서 큰 성공을 거뒀지만 사업의 다른 축인 그래픽 카드 부문에서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여주진 못하고 있다. 여전히 게이머들은 AMD의 게이밍용 라데온 RX 그래픽카드보다는 엔비디아의 제품을 선호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E3에서 발표한 RX 5700 시리즈 그래픽 카드들도 가격과 성능이 미묘하다는 반응이 강하다. 전문가 또한 CPU와는 다르게 GPU에서의 반등엔 의문을 표했다. 문준호 삼성증권 연구원은 “AMD의 GPU 신제품이 이전 세대 제품 대비 성능이 향상된 점은 사실이나 CPU에 비해 ‘가격 대 성능비’에 대한 매력이 부족하고 엔비디아의 RTX 2080에 상응하는 하이 엔드급 GPU 또한 부재하다”면서 GPU의 경쟁력을 예단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AMD는 삼성전자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최신 그래픽 설계자산인 RDNA(라데온 DNA)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모바일 기기와 응용 제품에 활용할 수 있는 맞춤형 그래픽 설계자산을 제공하기로 합의하며 GPU 분야를 강화하고 있다. 또한 라자 쿠드리(Raja Koduri)가 떠난 라데온 테크놀로지 그룹(AMD의 GPU 사업부문)을 새롭게 책임지게 될 데이비드 왕(David Wang)이 게이밍 분야 공략에 나선 점을 볼 때 향후 게이밍 그래픽 시장에서도 AMD의 반격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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