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넋을 낚아챈 건 무대 위를 뛰어다니는 말(馬)들이었다. 절대다수인 여성 관객은 1막이 끝나고 인터미션(중간 휴식) 때 온통 말 이야기뿐이었다. 그들이 숭배하는 것은 근육질의 말 같았다. 그렇다면 연극이 변한 것인가, 관객이 달라진 것인가.
주인공 알런 스트랑(류덕환)은 사랑하던 말들의 눈을 발굽파개로 찔러 법정에 선다. 알런의 정신 감정을 맡은 다이사트 박사(조재현)는 그가 뭔가 숭배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연극은 사건을 재구성하는 셈인데, 초반부에 다이사트는 이렇게 말한다. "저 소년은 오직 너제트라는 말만 포옹합니다. … 저 놈의 말 대가리를 제가 뒤집어쓴 것 같습니다. 저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1막에서 관객은 최면에 빠진 알런이 벌판에서 너제트를 타는 장면을 본다. 마구간은 그에게 하나의 신전(神殿)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신화와 야성(野性)을 꿈꾸는 다이사트는 알런에게 점점 질투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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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에서 "과연 나는 누구를 숭배해 본 적이 있는가?"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자신의 상처와 맞닥뜨린다.
이 질문은 사실 관객에게 날아가야 한다. 하지만 여덟 마리의 말이 시각적으로 장악하는 무대에서 알런과 다이사트의 통증은 좀처럼 객석으로 전염되지 않았다. 알런이 알몸으로 질(박서연)과 정사를 벌이려다 말들의 기척을 느끼는 장면은 아름다웠지만, 알런이 말들의 눈을 찌르고 "(고귀해지는 대신) 이제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고 선언하는 대목은 에너지가 아쉬웠다.
류덕환의 연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다만 마구간에서 진료실로 시·공간이 바뀔 때마다 대사와 표현이 거칠었다. 연출까지 맡은 조재현은 더 큰 굴곡, 환희와 절망의 대비에 더 집중해야 한다.
▶1월 31일까지 서울 대학로 이다1관. 1544-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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