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영민 기자] 지난해 직장인 5명 중 1명은 회사에서 사용주나 그의 친인척에게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들을 보호할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사용주가 괴롭힘을 스스로 조사하도록 규정해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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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지난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분기별 괴롭힘 실태조사에서 괴롭힘 행위자가 사용자나 그의 친인척이었다는 응답은 1분기 25.9%, 2분기 27.3%, 3분기 22.5%로 모두 20%를 넘겼다. 올해 1~2월 직장갑질119에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상담의 19.4%는(190건 중 37건) 사용자가 가해자인 사례였다.
1년 넘게 이어진 대표의 괴롭힘을 노동청에 신고한 A씨는 최근 회사가 선임한 노무사에게 사건 조사를 맡긴다는 소식을 들었다. 노무사는 객관적으로 조사하겠다고 그를 안심시켰지만, 이후 사측과 긴밀히 소통한 문자를 A씨에게 잘못 보냈다. 이 사실을 안 A씨는 “가해자가 법인의 대표인 상황에서 회사의 돈을 받고 수임된 노무사에게 객관적인 조사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은 상식이 아니겠느냐”며 하소연했다.
직장갑질119는 개정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단체 측은 “2021년 만들어진 ‘직장 내 괴롭힘 신고사건 처리지침’엔 괴롭힘 행위자가 사업주·사업 경영 담당자이거나 그의 배우자·4촌 이내의 혈족·인척인 경우 사업장 자체조사 없이 직접 조사한다는 내용만 있었다”며 “2022년 괴롭힘 행위자가 사용자인 경우 ‘근로감독관이 직접 조사와 자체조사 지도·지시를 병행’하는 것으로 개정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업주 괴롭힘의 경우 사업장 내 자체조사로는 조사와 조치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며 “사용자 괴롭힘 사건에서 사용자가 조사 주체가 되면 CCTV 등 증거를 인멸하거나 왜곡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또 “근로감독관이 직접 조사를 병행하라는 설명이 지침에 있지만, 근로감독관이 직접 조사를 진행할 사건과 사업장 내 자체조사를 지도할 사건에 대해 별다른 기준을 명시해 두지 않아서 현장의 혼란과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직장갑질119는 사용자가 괴롭힘 가해자인 경우 근로감독관의 직접 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신고사건 처리지침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유경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2019년 7월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제정된 이후 사용자의 괴롭힘에 대한 사내 신고·조사의 한계와 문제점이 속출하면서 2021년 10월 법을 개정해 사용자의 괴롭힘 관련 과태료가 신설됐다”며 “괴롭힘 행위 주체 중 유일하게 과태료 부과 대상인 사용자에 대해 노동청이 사용자에게 조사를 맡기는 것은 법을 개정한 취지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김 노무사는 “(이 내용이) 근로감독관의 직접 조사를 해태하게 만드는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다”며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