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늘·민들레 소쿠리 가득… "잎 두 장 남겨두는 건 예의

봄철 나물 여행
  • 등록 2010-05-13 오후 12:00:00

    수정 2010-05-13 오후 12:00:00

[조선일보 제공] 요즘 산나물은 무방비 상태다. 이제 막 세상으로 나온 여린 잎은 아직 제 기능을 모른 채 그저 온갖 영양분을 몸에 안고 여름을 기다리고 있다. 여름이 되면 잎과 꽃이 온전히 자라 씨를 보호하기 위해 독을 품을 것이다. 그러하니 산나물은 봄나물과 동의어다. 그러나 막상 산에 올라 봄나물을 캐자니 난감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국내에서 자생하는 식물만 약 9000여종. 이중 식용 480여종을 포함, 약용식물은 900여종에 불과하다. 지천으로 깔린 것이 나물이나 이중엔 이미 어릴 때부터 강한 생명력으로 독을 품은 것이 있으니, 이를 구분키가 어렵다. 일반인의 눈으로 봤을 때 털머위는 머위와, 삿갓나물은 우산나물과, 동의나물은 곰취와, 은방울꽃은 산마늘과 비슷하되 독성이 있다.

다행히 최근 산나물을 재배하는 농원이 늘어나고 있다. 한 번도 산나물을 캐본 적이 없다면, 먼저 이 농원들을 찾는 것이 방법.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남양주시 산야초 농원을 채소 소믈리에 안은금주씨와 함께 찾았다.

▲ 경기 남양주시 산야초 농원에서 채소 소믈리에 안은금주씨와 농원 대표 이의영씨가 참취를 따고 있다. / 조선영상미디어

◆곰취·참취―봄나물 대표선수

산야초 농원은 남양주 철마산 자락에 있다. 이의영씨가 2002년 이곳에 1만5000여평을 일궈 산나물로 농원을 조성했다. 심은 나물 종류만 220여종.

그런 그가 "봄나물의 대표 선수"라 뽑은 나물이 바로 취나물이다. 취는 하나의 종이 아니라 국화과의 여러 종을 아우르는 총칭이다. 그 중 즐겨 먹는 것이 참취와 곰취. 해서 산야초 농원에서 참취 밭의 면적은 3500평에 달한다.

취나물 중 으뜸이라 해 '참취'라 불리는 이 나물의 잎은 뾰족한 자루 모양이며 가장자리는 톱니처럼 생겼다. 그러나 참취를 묘사하는 건 무용하니, 비슷하게 생긴 초본(草本)이 많기 때문.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은 나물 앞에서도 참이다.

참취란 확신이 생겼다면 이제 나물을 딸 차례. 여기에도 요령이 있다. 봄나물은 본래 여린 잎을 먹는 것이다. 그러하니 역시 참취를 채취할 때도 여린 부분을 따야 한다. 보통 가운데로 우뚝 솟은 줄기 부분이 제일 여리다. 모든 부분이 여리게 보일 때도 두 장은 꼭 남겨두는 것이 예의다. 그래야 참취가 계속 자랄 수 있다. 물론 뿌리째 뽑아 버리는 건 결례 중의 결례.

곰취는 참취와 비슷하되 잎이 보다 넓적해 곰 발바닥을 닮았다. 겨울잠에서 깬 곰이 가장 먼저 먹는 풀이라 해 '곰취'라 불린다는 말도 있다. 역시 비슷하게 생긴 식물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주의해야 할 것이 동의나물이다. 곰취는 잎이 부드럽고 미약한 털을 가진 데 비해 동의나물은 습지에서 자라고 잎의 앞·뒷면으로 윤채가 난다.

곰취와 참취 모두 따서 바로 먹을 수 있다. 정월 대보름 아침에 참취로 오곡밥을 싸먹으면 복이 온다는 말이 전해지고 곰취 역시 다른 취나물보다 쓴맛이 강해 열을 더 잘 내려 고기와 궁합이 잘 맞는다고 알려졌다. 이씨는 "곰취의 경우 향이 강하다고 느껴진다면 장아찌로 해먹어도 좋다"고 했다.

▲ (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민들레, 곰취, 산마늘. / 조선영상미디어

◆산마늘―목숨 이어준 나물

이씨가 줄기를 똑 끊어 넘겼다. 그 자리에서 바로 한 입 베어 물자 알싸한 마늘 향이 혀끝에서 감돌았다. 줄기와 잎이 각기 다른 질감으로 씹히되 그 향은 똑같았다. 잎과 줄기뿐인가. 이씨가 뿌리까지 캐서 톡톡 흙을 털어내곤 뿌리 중간을 똑 끊어 껍질을 벗겨내 건넸다. 역시 강렬한 마늘 향이다.

산마늘은 최근 대형 마트에서 팔릴 정도로 주목받는 산나물 중 하나다. 잎과 줄기·뿌리 등 전초(全草)에 잔뜩 마늘 향을 품고 있어서 밭에 가까이만 다가서도 그 향에 침이 고인다.

산마늘이 자생하는 곳으로 가장 유명한 데는 울릉도다. 이 섬에서 산마늘은 곤궁한 겨울의 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봄에 돋아나는 산마늘로 밥을 짓고 죽을 끓였으며 반찬도 만들었다. 하여 울릉도 사람들은 산마늘을 '목숨(命)을 이어준다'는 뜻으로 '명이(맹이)'라 불렀다. 이씨는 "울릉도 말고도 치악산에서 나는 산마늘이 유명한데, 울릉도산은 잎이 넓고 맛이 순하고 치악산 산마늘은 잎이 길고 향이 진하다"고 했다.

국가표준식품성분표에 따르면 산마늘은 레몬에 못지않은 비타민 C를 비롯, 비타민 A와 B를 함유하고 있다. 생마늘향으로 고기의 느끼한 맛을 잠재워 고기와 잘 어울리며 오래 자라 억세지면 장아찌로도 먹는다.

역시 산마늘도 독성 있는 '짝'이 있다. 은방울꽃이 비슷하되 산마늘의 잎이 좀더 넓고 부드럽다.

◆민들레―잡초의 대명사

본래 민들레는 잡초의 대명사다. 이씨는 민들레의 끈질긴 생명력을 설명하기 위해 세 곳을 들었다. 길가와 논두렁·밭두렁·과수원. 길가에서 민들레는 자동차의 독한 매연 속에 자라고 두렁과 과수원에서 민들레는 쑥과 함께 제초제를 이겨내고 자란다.

이런 데서 피어나는 민들레는 그 강한 생에의 의지로 어여쁘되 섣불리 먹어서는 안 된다. 안은금주씨는 "민들레를 먹으려면 매연 없고 제초제 없는 산에서 자란 민들레를 캐야 한다"고 했다.

강한 생명력과 달리 민들레는 독을 품지 않는다. 산나물이되 사계절 내내 먹을 수 있다. 꽃과 잎, 뿌리 모두 각기 다른 개성을 뽐내며 식용으로 쓰인다. 잎은 쌈채나 나물이나 튀각으로, 꽃은 화전이나 꽃차로, 뿌리는 민들레 커피의 재료로 쓰이며 전초는 장아찌와 김치의 재료가 된다.

취나물과 산마늘·민들레 이외에도 이씨의 설명은 끝없이 이어졌다. 두릅과 독활이 있고, 오가피순과 더덕순이 있으며 머위와 질경이도 있다. 그러나 너무 욕심부리지 말 것. 다 외우려 들다간 어느새 앞서 들었던 것도 까먹어버릴 위험이 있다. 조금씩, 천천히 알아가는 게 봄나물을 배우는 도리다. 산야초농원 (031)594-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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