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일본 총선에서 무제한 양적완화를 공약으로 내건 자민당이 압승하면서 와타나베 부인이 다시 활동을 시작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장기간 제로금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엔화 약세가 불 보듯 뻔한 만큼 일본 투자자들이 해외 투자에 다시 눈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글로벌 자금시장을 흔들었던 엔 캐리 트레이드가 다시 살아날 것이란 기대감이 높다.
아베 신조 차기 일본 총리는 지난 17일 당선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본중앙은행(BOJ) 정책입안자들은 디플레이션, 엔화 강세 등과 싸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통화정책을 완화하고 연간 인플레이션 목표 2%를 달성해야 한다”고 압력을 가했다.
일본 정부가 대규모 양적 완화 정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에 따라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가 급락하고 있다. 일본 총선 이후 달러-엔은 84엔대로 올라서 엔화 가치는 지난해 4월 이후 최저로 떨어졌다. 이처럼 엔화 가치가 저렴해지면 금리가 제로(0) 수준인 엔화를 빌려 상대적으로 이자율이 높은 타국시장에 투자하는 엔 캐리 자금이 주식시장에 들어올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미 엔화 약세가 추세적인 기조로 접어들었다고 판단되는 만큼 엔 캐리 거래가 활성화될 여지는 크다고 밝혔다. 실제로 시카고 상품거래소 달러-엔 선물의 엔화 순매도포지션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규모로 확대되고 있다. 시장이 그만큼 엔화 약세를 강하게 전망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내년 미국의 경기 회복이 예상보다 빨라지면서 시장금리가 상승할 경우, 엔화 가치 하락폭이 현재의 전망치보다 상당히 커질수 있다. 일본의 풍부한 유동성과 초저금리를 배경으로 엔-캐리 거래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엔 캐리 거래로 얼마만큼의 수익률을 거둘 수 있는지 보여주는 엔 캐리 거래 지수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정경팔 외환선물 팀장은 “엔화는 약세로, 원화는 강세로 갈 여지가 큰 만큼 엔 캐리 트레이드 부활 가능성이 있다”며 “일차적인 엔-원 환율 지지선이 1266원인데, 이미 시장에서는 내년 1200원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환차익과 수익률을 동시에 노리는 엔 캐리 자금이 한국으로 들어올 가능성 역시 크다. 엔화는 높은 국가부채와 실물경기 부진으로 안전자산으로서의 인식이 줄어들고 있지만, 원화는 경상수지 흑자와 국가신용등급 상승으로 대체 안전자산으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엔화 약세 기조는 정착되는 반면 원화 강세는 더욱 강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다만 단기간에 엔 캐리 거래가 급증할 가능성은 낮다는 설명이다. 아베 정부가 엔화의 추세적인 약세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과 미국 재정절벽에 대한 불안감 역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엔 캐리 거래가 활발해지기 위해서는 글로벌 투자심리가 위험자산 선호 쪽으로 고개를 틀어야 하는 만큼 실제 투자자들이 실물 경제의 회복을 자신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유익선 우리투자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내년 3분기에 들어서야 글로벌 경기 회복이 가시적으로 보일 것이라고 예상되는 만큼, 엔-캐리 거래가 실질적으로 활성화되는 시점은 내년 2분기 정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