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 분쟁 '키맨' 신동국 회장은 왜 장차남 손을 들어줬나

선대 회장의 유지를 받들 적임자 판단
"북경한미 경험 기반으로 순익 1조 기업 만들겠다"
임종윤·종훈 사장 의지에 지지
"가족 같은 회사 만들어달라" 당부하기도
  • 등록 2024-03-23 오후 1:12:14

    수정 2024-03-23 오후 2:25:59

[이데일리 마켓in 권소현 기자] 한미약품(128940) 경영권 분쟁의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임종윤·종훈 한미약품 사장의 편에 서면서 일단 장차남이 승기를 잡았다. 신 회장은 지난 2월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간 통합 계획을 발표한 이후 어떤 입장 표명도 하지 않았지만 한미약품그룹의 성장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어느쪽 편에 서는 것이 맞는지 오랜 고심 끝에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지난 21일 임종윤·종훈 한미약품 사장이 서울 여의도 전경련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미약품그룹 성장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23일 신동국 한양정밀화학 회장은 입장문을 통해 “임종윤·종훈 형제가 새로운 이사회를 구성해 회사를 빠르게 안정시키는 동시에 기업의 장기적인 발전 및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한 후속 방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해 나가기를 바란다”며 장차남의 주주제안에 표를 던지겠다는 방침을 명확히 했다.

신 회장은 한미약품그룹의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008930) 지분 12.15%를 보유하고 있는 주요 주주다. 한미약품 오너 일가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지분을 갖고 있다.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과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실장 측 지분 35%(재단 보유분 포함), 이에 맞서는 임종윤·종훈 사장 측 지분 28.4%로 신 회장이 캐스팅 보트를 쥔 상황이었다.

그간 중립이었던 신 회장이 장차남에게 힘을 실어주기로 한 것은 가족간 분쟁에 대한 안타까움과 한미약품그룹 성장에 대한 장차남의 의지를 높이 산 데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신 회장은 “선대 임성기 회장의 뜻에 동감하여 주주로서 참여한 이래 오랜 세월 회사의 발전과 기업가치 제고의 과정을 곁에서 봐 왔고 선대 회장님 작고 후에도 후대 가족들이 합심해 회사를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으로 기대해 왔다”며 “그러나 상속세와 주식담보대출 등 대주주들이 개인적인 사유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는 동안 회사 경영에 대한 투자활동이 지체되고 기업과 주주가치는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 경영진이 주도적으로 경영해 온 기간에 회사의 연구개발이 지연되고, 핵심 인력들이 회사를 떠났으며, 그 결과 주가 하락을 경험했다”고 덧붙였다.

모녀가 주도하는 한미약품과 OCI간 통합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신 회장은 “한미약품그룹과 비즈니스 연관성이 낮은 OCI그룹 간 통합은 회사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서라기 보다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과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실장의 개인적인 이슈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장차남은 물론이고 주요 주주인 신 회장도 배제됐다는 사실에 따른 서운함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 회장은 “일부 대주주들이 다른 대주주들 혹은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주요 주주들에게 회사 주요 경영과 관련한 일체의 사안을 알리지 않고, 개인적인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사의 지배구조 및 경영권에 심대한 영향을 주는 거래를 행한 수준에 이르렀으니 매우 큰 우려와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신 회장은 선대 임성기 회장의 고향 후배로 한미약품의 설립과 성장과정을 지켜봐 온 만큼 창업주의 뜻을 가장 기본에 뒀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모녀측이 가현문화재단과 임성기재단이 보유하고 있는 한미사이언스 주식을 활용하는 것에 반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 회장은 “선대 회장님의 뜻에 따라 설립된 재단들이 일부 대주주들에 의해 개인 회사처럼 의사결정에 활용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행위”라고 강조했다.

임종윤·종훈 사장이 신 회장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로 이들이 선대 회장과 함께 오랜 기간 한미약품 경영에 참여하면서 경영능력을 입증했다는 점이 꼽힌다. 임종윤 사장은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북경한미 시절 성과를 언급하며 미래 경영계획을 밝혔다. 임 사장은 시장규모 225조인 중국 의약품 시장에서 이익률 25%, 시장 1~2위를 차지하고 있는 의약품 4개를 만들었고 2004년 연매출 100억원대였던 북경한미를 현재 연매출 4000억원 수준으로 키워낸 주역이다. 이같은 경험을 기반으로 1조원의 투자를 유치해 한미약품을 순이익 1조원, 시가총액 50조원 규모의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임 사장은 신 회장을 여러번 찾아가 선대 회장의 경영모토와 유지를 가장 잘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점을 어필했고 신 회장도 동의를 이끌어냈다.

임 사장이 정서적 공감대를 공략한 것도 주효했다. 지난 1월 임종윤 사장은 신 회장을 처음 설득하러 가서 시인과 촌장의 노래 ‘풍경’을 언급했다. “세상 풍경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라는 가사를 언급하자 신 회장도 그 노래를 잘 안다며 화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21일 기자간담회에 앞서 신 회장과 소통한 임종윤·종훈 사장은 간담회 시작 전 ‘풍경’을 틀면서 신 회장의 동의를 어느정도 얻었다는 점을 암시한 바 있다.

신 회장은 임 사장에게 한미약품그룹을 가족 같은 회사로 잘 가꾸어 나가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가족 같은 회사’는 임종윤 사장이 2004년 북경한미약품 총경리시절부터 기업경영의 ‘모토’로 삼았었고, 창업자 임성기 회장이 가장 좋아한 문구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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