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세종수목원은 지난 10월 17일 세종시의 협조를 구해 엽사를 고용, 고라니 12마리를 사살했다. 밤마다 고라니들이 수목원으로 몰려와 수목원이 정성스레 식재한 국화와 튤립, 사철나무, 측백나무, 나팔꽃 등을 뜯어 먹는가 하면, 풀숲에 숨어 있던 고라니가 인기척에 놀라 사람을 향해 돌진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고라니 사살은 신도시 조성 과정서 우리 사회가 ‘야생동물보호’와 ‘피해방지와 구제’ 중 어느 가치를 우선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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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원 측은 개장 전후로 고라니 피해가 극심해 △기피제 및 빛·소리퇴치기 △전기목책 △크레졸 살포 등 자체적 노력을 기울였으나 여의치 않아 구제에 이르게 됐다며 피해액만 최소 1억 2000여만원 이상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수목원 측은 고라니 사살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는 알면서도 막지 못한 인재에 가깝다. 2016년 3월 당국은 고라니 이동 경로 단절과 훼손 가능성을 파악하고 이주계획까지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이데일리가 입수한 ‘중앙공원 조성사업 환경영향평가서’에 따르면, 고라니 서식지 주변 도로·택지·상가 개발사업으로 이동성 강한 고라니의 고립이 우려되므로 최대한 자연유도를 하되 자력이동이 불가피할 시 전월산 등으로 포획·이주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올해 10월 제64차 행정중심복합도시 개발계획서에는 고립된 고라니를 위해 단계적 개발 중인 S-1 생활권 부지에 연결녹지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수목원 측은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수목원 미활용부지 2ha에 2m 높이 펜스를 설치하고, 고라니가 먹을 수 있는 식물을 심는 등 ‘고라니숲’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수목원 방문객이 고라니를 관찰할 수 있는 관측대 조성까지 고려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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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세종수목원은 도시균형발전을 목표로 건설 추진 중인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과정서 들어섰다. 도시의 안정적 정주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범국가적 프로젝트에 수반되는 야생동물 보호책임을 수목원에만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렇다면 세종시 일대에 광범위하게 추진되는 행정중심복합도시의 야생동물 공존구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이데일리가 입수한 ‘세종특별자치시 야생생물 보호 세부계획’에 따르면, 세종시는 2021~2025년까지 세종시 전역을 대상으로 신도시 건설에 따라 야기되는 생태계 파괴 등 부작용 방지를 위해 세종시 여건에 맞는 보전 관리대책을 시행한다.
그러나 세종시는 농작물 피해를 유발해 국내서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된 고라니에 대한 서식지 보존 및 적응 지원책이 없이 ‘포획·구제 대책’만 계획했다. 특히 고라니는 신도시 개발 직후 발생한 로드킬에서 가장 많이 죽었다. ‘세종시 신도시 건설에 따른 로드킬 통계’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발생한 3077건의 로드킬 중 과반 이상 피해가 고라니(62%)였다.
즉, 살던 터전에 신도시가 지어져 다른 야생동물과 같은 처지에 있지만, 유해야생동물이라는 이유로 생명에 대한 고려 없이 고라니만 구제의 대상이 된 셈이다.
세종시와 신도시 조성을 주관하는 행복청이 야생생물 보호에 유기적 협력을 하기 어려운 사업구조도 문제다. 서식지가 파괴·단절된 고라니 보호 대책으로 연결녹지 조성이 확정됐지만, 행복청 주관 사업이기 때문에 지자체인 세종시가 의견을 피력하기 어렵다.
세종시 관계자는 “신도시 조성부지에 지정된 야생보호구역은 한 곳 있지만, 해당 구역을 피해 사업이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외에는 업무 교류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창재 세종 환경연합 사무처장은 “고라니가 서식했던 금강, 논습지, 장남들과 하류 갈대밭에 (신도시가 들어설) 기반공사를 하느라 다 밀어버려 개체수가 많이 줄었다”며 “고라니에 의한 농작물 피해가 있지만, 과장된 측면도 있어 기승전 구제활동으로 이어진다. 고라니 역시 삵이나 검독수리가 사냥하는 등 천적개념도 생태계에 생기고 있는 추세”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