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섬은 1980∼1990년대 전국 최고 수준의 바지락과 김 생산지로 유명세를 떨쳤다. 당시 곰섬은 바람만 한번 불면 ‘곰’의 모음 ‘ㅗ’에서 ‘ㅣ’ 획이 날아가 ‘금섬’으로 바뀐다며 이웃 마을의 시기와 부러움을 한몸에 샀다.
그러나 부자마을 곰섬은 개발 바람이 불면서 쇠락하기 시작했다. 이 일대에 천수만 A·B지구 간척 사업이 진행됐고, 그 결과 물의 흐름이 바뀌면서 양식 중이던 김에 질병이 발생했다.
또 주변에서 잇따른 포구와 다리 건설로 바지락 양식장은 모래밭으로 변했고, 곰섬 주민들의 주 수입원이었던 김 양식과 바지락 채취는 최악의 상황에 처했다.
이후 2000년대 후반까지 어려움을 겪던 곰섬에 다시 부활의 날개가 펼쳐졌다.
충남도 수산관리소의 교육과 지원을 받아 주민들이 자율관리어업공동체를 꾸리면서 곰섬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2009년 주민 5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자율관리어업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가꾸고 함께 나누는’ 사업을 진행했고, 이듬해 12월에는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영어조합법인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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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초 설치 및 종묘 방류 사업과 더불어 어장 정화 작업도 실시했다.
곰섬 공동체는 여기에 더해 조합원끼리 바지락은 3.5㎝ 이상, 해삼은 20㎝ 이상만 채취키로 하고, 1인당 바지락 생산량도 30㎏으로 제한했다.또 패류어장 4곳은 1년 주기로 어장 휴식년제를 도입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곰섬 공동체의 수익은 상승곡선을 타기 시작했다. 해삼의 경우 2012년 1억 7000여만원에서 지난해 3억 9000여만원으로, 바지락은 1억 8000만원에서 지난해 1억 9000만원으로 각각 수입이 늘었다.
곰섬 공동체는 앞으로 바지락 해감장을 만들고, 바지락 판매 스마트폰 어플 개발, 전국 직거래 판매망 구축, 해삼전용 인공어초 집중 시설로 자연산란장 조성과 더불어 중국관광객을 위한 야생 해삼 견학코스 개발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강찬순 곰섬 자율관리어업공동체 위원장은 “1990년대 개발과 함께 곰섬이 쇄락의 길을 걸다가 2009년부터 마을공동체 구성을 계기로 마을을 살리고 같이 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면서 “그간 불협화음으로 갈등을 겪었던 주민들을 결속시키고, 한마음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했던 것이 주효했다”고 전했다.
강 위원장은 “주민들에게 진실된 마음으로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를 구성하면서부터 해삼 양식 등이 성공했다. 또 소득이 오르면서 육지에 있던 젊은 사람들도 다시 섬으로 들어오면서 섬에 활력이 넘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충남도 수산관리소 관계자는 “곰섬 공동체는 초기 경험 부족 등으로 갈등과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공동체 의식을 높이고 수익을 창출하며 전국 최고로 우뚝 설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지원을 통해 곰섬이 더욱 발전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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