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태국의 반정부 시위는 하루 이틀이 아니다. 군사정권에 맞서 ‘10·14봉기’가 있었던 1973년에는 46명이, 탁신 전 총리를 둘러싸고 마찰이 있었던 2010년에는 90명이 사망하는 극한 대립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존 시위와 다르다. 태국 왕실이 ‘금융권력’을 사유화하면서, 입헌군주제의 마지노선을 넘었다는 이유 때문이다.
시위의 시발점은 2018년 6월이다. 이날 태국왕실자산국(CPB)은 1937년 설립돼 80년간 관리하던 왕실 자산을 마하 와치랄롱꼰 신임 국왕에게 양도했다고 밝혔다. CPB는 왕실의 모든 재산이 마하 국왕에게 귀속되며 국왕의 뜻에 따라 관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산은 400억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CPB는 2014년 기준 태국 내 토지 6560핵타르(65.6㎢)와 4만 개 이상의 건물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태국 최대 은행 시암상업은행의 지분 21%를 보유하고 있고 시암시멘트그룹의 대주주(지분율 30%)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현지언론은 국왕을 비난해선 안된다는 헌법 탓에 별다른 보도를 하지 않고 지나갔다.
그런데 여기에 불을 붙인 것은 2년이 지난 지금,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다. 코로나19가 글로벌 사회를 휩쓸자 관광으로 먹고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니던 태국의 경제가 파탄났다.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8%로 떨어졌고 올해 4월까지 신규실업자가 400만명을 돌파했다.
이 가운데 마하 국왕이 3월부터 독일 휴양지에서 지내고 있다는 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태국 국민들은 코로나19로 허덕이고 있는데 공적자산이었던 왕실 자금이 마하 국왕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위해 쓰여야 하느냐며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실제 마하 국왕이 사용한 왕실 자산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인 것이 대부분이다. 본인이 비행기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왕실자산으로 항공기나 헬리콥터를 38대나 구매했는데 유지비와 연료비만 1년 20억바트(750억원)에 달한다. 다이아몬드 역시 580캐럿 이상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7일에도 태국 정부는 사람들의 결집을 막기 위해 철도 운행을 중단했지만 방콕, 파타야, 핫야이 전국 각지에서 시위가 열렸고 집회에 나오지 않은 시민들은 2018년 이후 CPB 대신 국왕이 주요주주가 된 시암상업은행에서 예금인출 시위로 힘을 보탰다.
이제까지 태국의 반정부 시위가 유야무야 끝이 났듯, 이번 역시 그럴 것이란 관측도 있다. 태국에서는 국왕이나 왕비, 왕세자 등을 비방하면 최고 15년 징역을 살아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해외에서도 마지노선까지 넘어버린 태국 왕실이 국민들의 뜻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반정부 시위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영국 BBC는 “태국에서 왕실에 대한 비판은 중형을 받는 범죄지만 시위대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있다”면서 “지금 태국은 혁명적 순간”이라고 전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 역시 유엔에 태국정부의 시위대 탄압 중단을 요청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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