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수도권 집값 상승은 편중 개발이 불러온 결과다. 그런데도 근본 원인은 놔둔 채 엉뚱한 처방만 되풀이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킨다는 명분이지만 공감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마 8.4 부동산 대책도 과거 전철을 답습할 우려가 높다. 정책 목표는 달성하지 못한 채 투기꾼과 개발업자들 배만 불리는 결과다. 이미 부동산개발 관련 주식들이 일제히 급등함으로써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13만2,000호 공급을 위해 여러 당근을 내놓았다. 용적률은 500%까지, 아파트 층고도 50층까지 허용하는 내용이다. 과도한 용적률은 주거환경에 독이다. 나아가 고층 아파트는 재난에 취약하다. 지상 50층 화재를 진압하는 장비가 충분한지 의문이다. 이 과정에서 사실상 그린벨트인 태릉 골프장까지 동원됐다. 강남 집값을 잡겠다며 멀쩡한 녹지를 훼손하는 일이다. 해당 지역 주민들도 반기는지 묻고 싶다.
이호철이 ‘서울은 만원이다’는 소설을 쓴 해가 1966년이다. 이후 54년이 흘렀다. 그동안 서울은 비대해진 반면 지방은 아사직전 몰골로 변했다. 지난해 전국 228개 기초단체 가운데 소멸 위험지역은 93곳, 올해는 105곳으로 절반에 육박하고 있다. 전체 33.5%는 인구 5만 명 미만으로 가뭇한 촛불이다. 수도권은 고도비만에 따른 당뇨를 걱정할 때 지방은 생존을 고민해야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전체 일자리 54%가 수도권에 몰려있다. 상장 기업 2,355개사 중 71.6%(1,686개)는 수도권에 본사를 두고 있다. 100대 기업 본사 91%는 서울이다. 지역내총생산도 비수도권을 앞질렀다. 지난해 수도권 지역내총생산은 984조원(52%)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뿐 아니다. 전국 대학(191개)의 37%(71개), 공공도서관과 박물관 등 문화기반시설(2,825개)의 36%(1,040개)가 수도권에 퍼져있다. 소위 상위권 대학은 80%에 달한다.
지난주 경북도와 전남도는 ‘지방소멸위기지역 지원 특별법’ 제정에 공조하기로 했다. 이게 지방에만 맡겨놓을 일인가. 단언컨대 수도권 고도비만과 지방 영양실조를 해소하지 않는 한 대한민국 앞날은 없다. 서울시립대 정석 교수는 “주택은 부족하지 않다. 문제는 편중이다. 어디는 모자라고 어디는 넘치는 결핍과 잉여가 엇갈리고 있다. 새로 지을 게 아니라 빈 곳을 고치고 채워야 한다”며 대안을 제시했다.
‘서울은 만원이다’는 소설이 효용을 잃은 지 오래다. 이제는 ‘지방은 소멸한다’는 주제로 새로운 소설이 쓰여야 할 때다. 지방과 공존, 즉 국가균형발전을 더 늦춰서는 안 된다. 우리 중에 지방 촌놈 아닌 사람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