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 서가]①주철환 “가장 좋은 책은 '산책'…다른 생각 선물 받죠”

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
내 인생의 책은 ‘논어’
상상의 여백서 아이디어 나와
‘딴생각’이 창작의 원천
고전, 聖賢의 생각 들려주는 창
많이 읽기보다 곱씹어 고민
내뱉은 얘기는 실천하려 애써
  • 등록 2017-09-27 오전 6:50:31

    수정 2017-09-27 오전 9:13:03

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가 책 ‘논어’를 다시 꺼내들었다. 주철환 대표는 ‘논어’나 파스칼의 ‘명상록’처럼 시간의 검증을 이겨낸 책을 주로 찾아 읽는다. 최근 서울시민청 지하1층 서울책방에서 기자와 만난 그는 “고전은 성인들이 한 번 더 필터링해 마음에 새길만한 말들을 선물해 준다”고 말했다(사진=노진환 기자).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학창시절 담임이 반 학생들한테 가장 많이 했던 이야기가 뭐였는지 아세요? ‘주목’, ‘조용’, ‘딴 생각하지마’ 딱 세 문장으로 정리돼요.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이야말로 번뜩이는 창작의 원천인데 차단해버린 꼴이죠.”

주철환(62) 서울문화재단 대표는 “내 아이디어 역시 상상의 여백에서 나온다. 그런데 요즘 학교들도 경쟁만 부추기는 것 같아 씁쓸하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곱씹고 비로소 실천할 때 영감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생각을 일상에서 구현하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하는 것은 꾸역꾸역 밥은 먹는데 결국 화장실에 못가는 격과 다르지 않다”고 비유했다.

주 대표는 ‘원조’ 스타 PD(프로듀서) 출신 문화예술전문가다. MBC ‘퀴즈 아카데미’와 ‘우정의무대’,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비롯해 다수의 히트작을 연출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대학과 방송사 등에서 꾸준한 활동을 해왔다. 공공기관 근무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9월 1일부로 취임 1년을 맞은 주 대표는 ‘논어’를 인생의 책으로 꼽은 이유도 다르지 않다고 했다. 그는 “왜 지금 논어냐고 묻는다면 맨 첫 문장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인간의 삶을 관통한다. 인생에서 이 세 마디 말만 지침으로 삼아도 큰 실수는 안을 것”이라며 줄줄 읊어댔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悅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아니하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가 그것이다.

△논어는 성인들의 대화…‘언행일치 지행합일’

“초등학교 때는 공자 왈, 맹자 왈이다 구태의연하고 고리타분한 줄만 알았는데 스승인 공자와 제자의 대화이거나 성인들이 한 번 더 필터링해 마음에 새겨진 말들을 묶은 서적이잖아요. 이들의 생각을 고스란히 선물 받는 셈이죠. 하하.”

그는 귀담아들으면 좋을 조언들이 수두룩하다고 했다. 다만 조건부를 달았다. 눈으로만 많이 읽기보다 먼저 생각하고 이를 제대로 알고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 대표는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을까란 질문부터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한다. 또 이 책에서 나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은 뒤 읽어보는 편”이라고 했다. 이어 “젊은 느낌으로 살려고 한다. 노인이 된다는 것은 허리가 구부러지는 게 아니다. 멈추는 것”이라면서 “여전히 내 마음의 호기심을 꺼내고, 관찰하고 탐색해야 한다. 뱉은 얘기는 언행일치(言行一致)가 이뤄져야 하고, 배운 것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이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루에 1시간 이상 산책…길거리는 개인 서재”

다독보다 책을 어떻게 읽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게 주 대표의 생각이다. 영적 비만을 과시하는 뽐내기 식 독서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에 매일 빼놓지 않고 하는 일이 ‘산책’이라고 했다.

“가장 좋은 책은 ‘산책’(散策)이에요. 매일 대략 1시간 정도 걸으려 하는 편인데 좋은 문장을 생각하면서 걸어요. 일종의 걷는 명상법입니다.”

그는 “책을 읽은 뒤 내가 알고 있는 생각과 연결시키려는 편이다. 일상에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한다”고도 말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아침에 출근하면 가장 처음 만난 직원에게 어제 책에서 읽은 글귀를 빗대어 인사를 나눈다거나 즐겁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옷이 예뻐요’ 한 마디를 건네는 거죠. 잘 보여야겠다는 정치적 계산 같은 전혀 없어요.”

수많은 책 중에 그는 어떤 책을 선택해 읽을까.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읽지는 않는단다. 제목이 좋은 책을 선택하는 편이다. 주 대표는 “파스칼의 명상록, 김수영전집처럼 검증된 작가의 책을 찾아 읽거나 추천한다”며 “고전을 읽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100년 이상 남겨진 고서다. 시간이 검증 해준 책을 주로 들여다본다. 장르는 가리지 않는다”고 했다.

다작도 했다. 무려 15권이다. 그는 “쉬운 일은 보람이 없다. 글을 쓰면 미지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내 생각을 공유하는 일인데 얼마나 보람 있는가. 어려움 따위는 아무 일도 아니다”고 웃었다.

△문화재단 수장으로서 “매개자 역할 잘 해내야죠”

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가 이야기하고 있다(사진=노진환 기자).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이명박정부의 문화·방송계 지원 배제 목록인 블랙리스트와 관련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주 대표는 “안타깝다. 새벽이 오기 전에 짙은 어둠이 깔리듯 새로운 시대를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나아갔으면 좋겠다”며 “이때 의로운 연대가 필요하다. 피해자인 문화예술인은 물론 방송인끼리 사이가 갈라지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문화재단 수장으로서 목표도 전했다. “서울문화재단은 문화행정을 하는 곳인데, 행정은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죠. 그게 결국 PD가 하는 일이잖아요. 문화예술계 숨겨진 예술인을 시민과 만날 수 있도록 연결고리가 되어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철환 대표는…

원조 ‘스타PD’인 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는 1955년 경남 마산에서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서울에 있는 고모 손에서 자랐다. 어릴 적 작은 골방에서 엎드려 책을 보는 게 하나의 즐거움이었다고 했다. 1978년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동북고교, 이화여대 및 아주대에서 학생을 가르쳤고 MBC·OBS·JTBC 등 방송국을 거치며 ‘퀴즈아카데미’ ‘우정의 무대’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등 수많은 인기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이제는 TV가 아닌 ‘문화도시 서울’을 만들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

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가 웃고 있다(사진=노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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