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엔터테인먼트로 정치적 각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이번 주 개봉한 두 편의 영화가 이 이율배반적 여정에 도전한다.
다이아몬드에 묻은 아프리카 피의 역사를 고발하는 ‘블러드 다이아몬드’와 전쟁의 참혹과 인간 본성을 되묻는 ‘묵공’이 그것.
상업적 성공과 도덕적 성취를 동시에 노리는 이들의 시도는 과연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낚아챌 수 있을까.
블러드 다이아몬드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가 품을 수 있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치적 선의(善意)의 최대치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주연의 액션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영화의 무게중심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혹은 알지 못하던 진실에 있다. 과거의 상아와 고무, 금이 차례대로 그랬듯이 현재는 다이아몬드의 순서. 순결이나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투명한 다이아몬드가 사실은 아프리카 분쟁지역 20만여명의 피를 먹고 채취·수출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노골적으로 고발한다.
시사고발 다큐멘터리 같은 소재를 영화는 개인의 비극 서사로 풀어낸다. 눈앞에서 강간당한 어머니와 그 충격으로 목 매단 아버지를 어린 시절 눈앞에서 본 다이아몬드 밀매상 대니 아처(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고기를 잡다 반군에게 납치돼 원석채취 강제노동에 내몰린 솔로몬(자이몬 하운스). 여기에 이 모든 비극을 서방에 알리겠다는 야심으로 뛰어든 여성 저널리스트 메디 보웬(제니퍼 코넬리). ‘라스트 사무라이’를 만들었던 에드워드 즈윅 감독은 이들의 기연(奇緣)과 아프리카의 구조적 비극을 절묘하게 섞어 짜며 슬픈 열대의 드라마를 완성한다.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 속 아프리카의 현실은 충격적이다. 십대 초반 소년에게까지 마약을 먹여 인간 흉기를 만들고, 투표를 원천봉쇄하겠다는 이유로 민간인의 손목을 잘라 버리는 나라. 불법 다이아몬드를 팔아 무기를 사는 정부군과 반군. 이런 사실을 짐짓 괄호 속에 넣어두고 비싼 값으로 원석을 몰래 사들여 판매하는 굴지의 서방 보석회사들.
물론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할리우드 상업영화의 본분을 잊지 않는다. 반군과 정부군의 시가전이나 다이아몬드 광산 습격 장면을 그리는 즈윅의 연출은 액션 영화의 관습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으며, 대니 아처와 메디 보웬의 로맨스는 은근슬쩍 끼워 넣은 멜로드라마임이 분명해 보인다.
1억 달러 제작비의 이 영화가 미국에서 지난달 먼저 개봉했을 때 평가는 극과 극으로 엇갈렸다. 뉴욕타임스는 “위선을 가장한 할리우드 상업주의”라고까지 비아냥거렸지만 그건 지나친 냉소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