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메시지가 흥행도 잡을까(VOD)

블러드 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 둘러싼 아프리카의 핏빛 진실 고발
“위선을 가장한 할리우드 상업주의” 냉소도
묵공… 中전국시대가 무대 승자조차 웃을 수 없는 전쟁의 처참함 그려
  • 등록 2007-01-12 오후 12:24:00

    수정 2007-01-12 오후 12:24:00

[조선일보 제공] 엔터테인먼트로 정치적 각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이번 주 개봉한 두 편의 영화가 이 이율배반적 여정에 도전한다.

다이아몬드에 묻은 아프리카 피의 역사를 고발하는 ‘블러드 다이아몬드’와 전쟁의 참혹과 인간 본성을 되묻는 ‘묵공’이 그것.

상업적 성공과 도덕적 성취를 동시에 노리는 이들의 시도는 과연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낚아챌 수 있을까.

블러드 다이아몬드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가 품을 수 있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치적 선의(善意)의 최대치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주연의 액션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영화의 무게중심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혹은 알지 못하던 진실에 있다. 과거의 상아와 고무, 금이 차례대로 그랬듯이 현재는 다이아몬드의 순서. 순결이나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투명한 다이아몬드가 사실은 아프리카 분쟁지역 20만여명의 피를 먹고 채취·수출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노골적으로 고발한다.

시사고발 다큐멘터리 같은 소재를 영화는 개인의 비극 서사로 풀어낸다. 눈앞에서 강간당한 어머니와 그 충격으로 목 매단 아버지를 어린 시절 눈앞에서 본 다이아몬드 밀매상 대니 아처(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고기를 잡다 반군에게 납치돼 원석채취 강제노동에 내몰린 솔로몬(자이몬 하운스). 여기에 이 모든 비극을 서방에 알리겠다는 야심으로 뛰어든 여성 저널리스트 메디 보웬(제니퍼 코넬리). ‘라스트 사무라이’를 만들었던 에드워드 즈윅 감독은 이들의 기연(奇緣)과 아프리카의 구조적 비극을 절묘하게 섞어 짜며 슬픈 열대의 드라마를 완성한다.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 속 아프리카의 현실은 충격적이다. 십대 초반 소년에게까지 마약을 먹여 인간 흉기를 만들고, 투표를 원천봉쇄하겠다는 이유로 민간인의 손목을 잘라 버리는 나라. 불법 다이아몬드를 팔아 무기를 사는 정부군과 반군. 이런 사실을 짐짓 괄호 속에 넣어두고 비싼 값으로 원석을 몰래 사들여 판매하는 굴지의 서방 보석회사들.

물론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할리우드 상업영화의 본분을 잊지 않는다. 반군과 정부군의 시가전이나 다이아몬드 광산 습격 장면을 그리는 즈윅의 연출은 액션 영화의 관습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으며, 대니 아처와 메디 보웬의 로맨스는 은근슬쩍 끼워 넣은 멜로드라마임이 분명해 보인다.

1억 달러 제작비의 이 영화가 미국에서 지난달 먼저 개봉했을 때 평가는 극과 극으로 엇갈렸다. 뉴욕타임스는 “위선을 가장한 할리우드 상업주의”라고까지 비아냥거렸지만 그건 지나친 냉소가 아니었을까.



묵공

‘묵공’의 연출은 이에 비하면 훨씬 우직하다. 간헐적으로 사용한 컴퓨터그래픽도 군데군데 허술한 부분이 드러나고, 이음새도 매끄럽다기보단 충돌이 잦은 편. 하지만 이 현실적 전쟁서사극이 그리는 반전(反戰)의 드라마는 ‘와호장룡’이나 ‘영웅’이 보여주는 중국무협의 거대한 허풍과는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묵공’의 주인공들은 땅에서 단 1m도 뛰어오르지 않는다. 잃은 것은 유효기간 짧은 객석의 감탄사겠지만, 대신 얻은 것은 충분히 오랫동안 지속될 관객과의 공명일 것이다.

기원전 370년 전국시대 중국 대륙. 강대국 조(趙)는 연(燕)을 무너뜨리기 위해 명장 항엄중(안성기)을 앞세워 대군을 파병한다. 문제는 그 사이에 끼여 있던 인구 4000명의 양성.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양성이 묵가(墨家)에게 구원의 손길을 청할 때만 해도 ‘묵공’은 그의 목소리 큰 선배들과 같은 길을 가는 것으로 보였다. 오매불망 구원군을 기다리던 양성에 찾아온 것은 혈혈단신의 혁리(류더화). 겸애(兼愛)와 비공(非攻)을 표방하는 묵가의 제자는 쾌도난마의 영웅을 기대하던 양성의 주민과 관객을 모두 배반한다. 새롭게 전개되는 도륙의 현장에는 일방적인 승리도 없고, 일방적인 패배도 없다. 나라를 지킨 왕은 은혜를 원수로 갚고, 승리한 장수와 병사의 얼굴에도 웃음은 발견하기 힘들며, 패배한 장수와 병사는 더 처참한 지경으로 내몰린다. 이 영화의 공성(攻城)과 수성(守城)은 분명 대단한 스펙터클이지만, 이 처참한 전쟁의 현장을 보여주는 수단일 뿐이다. 한국 중국 일본 홍콩이 160억원을 나눠 투자한 상업적 프로젝트라는 걸 고려하면, 장지량 감독의 작가적 뚝심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 두 편의 영화에 대해 상업주의를 내세운 위선이라고 주장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안도현의 시어를 빌려 되묻고 싶다. 게으른 방관자인 우리가 언제 스스로 남에게 따뜻한 연탄 한 장이 되었던 적이 있었느냐고. 독립영화나 다큐멘터리가 지는 소수관객의 한계를 넘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대중관객의 영혼에 각성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들의 가치는 충분한 의미를 인정 받을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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