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th SRE][Issue]채권 개미는 대세가 될 수 있을까

개인 33.8조 순매수…전년比 63%↑
고금리 장기화되면서 채권 저점 매수 매력 높아져
“개인투자자 자금 유입 항상 휘발성인 게 문제”
  • 등록 2023-11-17 오전 8:24:54

    수정 2023-11-17 오전 8:24:54

[이데일리 마켓in 박미경 기자] 국내외 증시 부진이 이어지자 개인투자자들이 증시를 떠나 채권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안전자산 선호 심리와 더불어 금리 고점론이 떠오르면서다. 올해 들어 개인투자자들은 장외 채권시장에서 30조원이 넘는 자금을 쓸어 담았는데, 이는 ‘채권 개미’라는 유행어가 나온 지난해 순매수 금액을 뛰어넘는 수치다. 다만 전문가들은 시장이 안정화할 경우 개인투자자들이 다시 증시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채권 개미 33조 순매수…현재 금리 정점

본드웹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11월 3일까지 개인투자자들은 채권을 총 33조8247억원 순매수했다. 지난해 연간 순매수 금액인 20조6286억원과 비교했을 때 63.9%가량 급증한 수치다.

3조~4조원대에 머물던 개인투자자들의 채권 순매수 금액은 지난해부터 큰 폭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연초만 하더라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란 기대감이 컸지만, 예상보다 고금리가 장기화하면서 채권의 저점 매수 매력이 높아졌다. 현재 금리가 정점에 달했다고 보고, 내년부터 금리인하에 나설 때가 됐다는 기대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통상 채권은 금리와 가격이 반대로 움직인다. 금리가 낮아질 경우 채권 가격이 상승해 차익 실현이 가능해진다. 금리 하락 기대감 속 고금리 채권 투자 수요와 금리가 하락할 경우 매매차익을 노리려는 수요가 동시에 늘었다는 분석이다. 특히 금리 인하 시기가 늦춰지면서 지난해 말에 이어 올해까지 개인투자자들의 채권 매수세가 이어지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의 채권 종류별 순매수 현황을 살펴보면 △국채 12조3383억원 △금융채 10조6919억원 △회사채 9조707억원 △특수채 1조1595억원 △지방채 3837억원 등의 순이다.

국채의 경우 개인투자자들은 초장기물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순매수 1위 종목은 국채 20-2, 2위 종목은 국채 19-6으로 각각 2조7237억원, 2조1917억원의 순매수세를 보였다. 국채 20-2는 발행 만기 30년, 잔존 만기 27년, 국채 19-6은 발행 만기 20년, 잔존 만기 16년짜리 초장기 채권이다.

금융채에서는 은행으로, 회사채에서는 보험사들의 신종자본증권으로 자금이 몰렸다. 올해 들어 개인투자자들의 금융채 중 순매수 1위 종목은 국민은행 이표채, 회사채 중에서는 교보생명보험신종자본증권이다. 각각 700억원, 939억원이 몰렸다.

김지만 삼성증권 연구원은 “채권의 높아진 금리 매력이 개인들의 매수세를 이끌어 냈다”며 “1년 전과 유사한 은행권의 수신 경쟁이 있었지만, 지난해보다 경쟁 강도가 약했고 만기가 도래한 예금 중 일부는 채권 시장으로도 유입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SRE자문위원은 “지난해 여름부터 프라이빗뱅커(PB)들이 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자산 배분 차원에서 장기국채 세일즈를 많이 했다”며 “특히 퇴직연금을 활용한 장기채 상장지수펀드(ETF) 투자도 적극 추천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채권 개미 회사채 미매각 물량 ‘줍줍’

특히 올해 상반기 회사채 시장 호황에 따라 최대 연 7~8%대의 고금리를 주는 비우량 회사채에 채권 개미들이 대거 몰리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다. 이들은 대량 미매각이 발생한 비우량 회사채를 사들였다.

지난 9월 A+급의 삼척블루파워는 3년물 2050억원의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주문량은 240억원에 그치며 1810억원이 대량 미매각됐다. 미매각 물량 부담이 6개 주관사(NH·미래에셋·신한·KB·키움·한국투자증권)로 고스란히 전가됐으나 매력적인 금리 수준에 리테일 시장에서 미매각 물량이 50억원대로 크게 줄었다.

지난 10월에도 회사채 시장을 찾은 A급 기업들 상당수가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완판 행진을 이어갔다. 고금리를 노린 개인투자자들의 수요가 몰리면서다. HD현대일렉트릭(A-), LS전선(A+), 다우기술(A), HD현대중공업(A), SK온(A), 이지스자산운용(A-), 평택에너지서비스(A), 하나에프앤아이(A) 등 8개사가 수요예측을 진행했는데 초도 발행에 나선 SK온을 제외한 7개사가 수요예측에서 목표 금액을 채웠다.

정혜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개인투자자들은) 금융지주를 제외하면 대한항공(6742억원), 삼성증권(2831억원), 삼척블루파워(2891억원) 등 높은 수익성을 추구한다”면서 “개인 투자 성향마다 차별적이며, 한국·미국 국채 등 안정적 투자나 높은 예금 금리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으나, 고금리를 추구하는 리테일 투자자로부터 증권채나 A급 이하 회사채 등 소화가 기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후순위채·신종자본증권 등 자본성증권도 리테일 시장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지난 7월 한화생명은 총 30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을 진행했다. 총 3330억원의 주문을 받으며, 공모액을 모두 채웠으나 리테일 수요를 앞세워 추가 청약 계획을 세웠다. 발행일 전까지 1670억원의 추가 청약을 받아 총 5000억원까지 증액 발행에 성공했다. 올해 공모채 추가 청약 금액 중 가장 큰 규모다.

지난 9월 KDB생명 후순위채에서도 채권 개미들의 매수세가 돋보였다. 매각 이슈와 재무건전성 악화 등 걸림돌이 많아 흥행 우려가 컸지만, 연 7%의 높은 금리에 개인투자자들의 매수 주문이 몰리며 1200억원어치 발행에 성공했다.

금융권 자본성증권이 인기를 끄는 배경은 주된 발행사가 안정성이 높은 금융사인 데다 금리 인상으로 발행금리가 높아진 점이 꼽힌다.

SRE자문위원은 “개인투자자들이 회사채 쪽 관심이 높아지게 되면 그동안 조달에서 소외됐던 기업들이 리테일 수요 덕에 살아나게 된다”면서 “삼척블루파워의 경우 미매각이 났는데 개인투자자들에게 고금리로 입소문이 나자 리테일 창구에서 서로 선점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고 설명했다.

채권 개미 일시적 현상?…‘개인투자용 국채’ 실효성 지적

하지만 채권 개미의 매수세는 일시적 현상에 그칠 것이란 진단이 많았다. 고금리 영향에 일시적으로 개인투자자들의 투자 수요가 증가한 것이며, 시장이 안정화하면 다시금 증시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SRE자문위원은 “개인투자자들의 채권 투자 규모가 늘어난다고 해도 전체 시장에서 2~3%밖에 차지하지 않는다”며 “투자 규모가 2배가 늘었다고 하지만 내년 기준금리가 인하하고, 장기물 금리가 빠졌을 때 채권시장에서 두 자리 수익률을 내는 게 쉽지 않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SRE자문위원은 “개인투자자들의 자금 유입은 항상 휘발성인 게 문제”라면서 “사고파는 과정에서 기관은 잔고가 유지되는 데 개인이 금리가 2~3% 빠졌을 때 잔고를 계속 유지할 것이냐에는 의문부호가 찍힌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 금리 인하 사이클에 들어갔을 때도 (잔고가) 유지가 될 수 있는지 한번 지켜봐야 한다”며 “지금 (채권을) 사는 개인들은 중간에 차익을 내 팔겠다는 의미다. 지금 이 높은 금리에 채권을 사서 더 낮은 금리에 팔겠다는 것은 절대금리 레벨에 대한 이자 수익을 생각하는 스마트한 개미들이기 때문에 좀 더 시장에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또 내년 상반기부터 발행 예정인 개인투자용 국채에 대해서도 실효성을 지적했다. 개인투자용 국채는 시장에서 매매가 불가능한 대신 이자소득에만 초점을 맞춘 저축성 상품이다. 일반 국채와 달리 원금이 보장되고 만기 보유 시 복리 이자에 가산금리, 분리과세 혜택까지 누릴 수 있다. 최소 1년을 보유한다면 중도에 환매하더라도 원금이 100% 보장된다.

관건은 가산 금리 수준이다. 일반 국채는 금리 인하 시기에 매매 차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개인투자용 국채는 이자 수익만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SRE자문위원은 “자본차익과 저축성은 성격이 엄연히 다르다”며 “목표 물가상승률 2%를 감안했을 때 이게 복리로 20년이 지나면 100%가 넘어간다. 이를 감안하면 큰 수익률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34회 SRE(Survey of credit Rating by Edaily) 책자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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