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차기 총선 출마를 선언한 인물들이 속속 “적격 판정을 받았다”는 포스터를 만들어 배포하고 있습니다. 유권자 여러분, 한 번 더 살펴보셔야겠습니다. 그 ‘적격’ 도장은 공천장에 찍어준 게 아니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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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국민의힘과 다르게 공천에 내보낼 후보자를 두 번 심사합니다. 당규에 따라 ‘공직선거 후보자 검증위원회’(검증위)를 설치해 적격 판정을 받았을 때만 민주당의 ‘예비후보’로 등록할 수 있습니다. 이후 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에서 각 후보자들의 공천 여부를 다시 심사하고요.
민주당이 두 번 수고로움을 감수하는 이유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후보를 내보내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선거 국면이 되면 선거관리위원회에 예비후보 신청을 합니다. 이전에는 등록만 하면 얼마든지 ‘민주당 예비후보’라고 자신을 홍보할 수 있었죠. 그러다 보니 음주운전이나 성매매, 가정폭력 등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버젓이 ‘민주당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다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에 민주당은 예비후보자 검증제도를 도입해 공천 여부와 무관하게 검증을 하기로 결정합니다. 다만 이 사람이 총선에 나갔을 때 이길 수 있는지 등 ‘정무적’ 판단은 배제하고 오로지 ‘정량적’ 판단만 내리기로요.
검증위는 △강력범죄(살인, 치사 등) △파렴치범죄(음주운전, 뺑소니운전) △성폭력 범죄(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등) △성매매 범죄 △가정폭력 △아동학대 △투기성 다주택자 등은 공직 후보자 심사 과정에서 예외 없는 부적격 사유로 제시했습니다.
실형 받고 재판 중인 ‘친명’은 적격, 친명 지역구 나온 ‘비명’은 부적격?
가장 먼저 논란이 된 인물은 정의찬 당대표 특보입니다. 그는 전남대 총학생회장 시절 민간인을 경찰 프락치로 오인해 살해한 사건에 연루돼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후 김대중 정부에서 사면을 받았습니다.
검증위 심사 통과자 명단에 정 특보가 포함되자, 그가 ‘친명(親이재명)계’여서 통과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를 두고 “규정을 잘못 본 업무상 실수가 아닌가 싶다”며 “재논의해서 처리해야 할 사안”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검증위 재심사 결과 부적격으로 판정이 번복됐고요.
‘사법 리스크’가 있는 의원들도 적격 판정을 받았습니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과 관련해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은 황운하 의원과 뇌물 수수 혐의로 재판 중인 노웅래 의원도 각각 대전 중구와 서울 마포갑에서 후보자 검증을 통과했습니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명 대표도 인천 계양을의 예비후보자 적격 판정을 받았습니다.
반면 ‘비명(非이재명)계’ 신청자들은 부적격 판정을 받으며 검증위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친명계 현역 의원의 지역구로 출마하겠다고 해서 탈락한 것 아니냐는 주장입니다. 조정식 사무총장의 경기 시흥시을 지역구에 출마를 선언한 김윤식 전 시흥시장, 한준호 의원이 있는 경기 고양시을 지역구에 출마하려 했던 최성 전 고양시장, 김병기 의원이 있는 서울 동작갑에서 3선을 지낸 전병헌 전 의원 등이 검증위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부적격 사유 공개해야 논란 잠재울 수 있을 것”
민주당은 오로지 ‘정량적’으로만 평가한다는 검증위를 두어 ‘공천학살’ 논란을 최소화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검증위 역시 계파 관련 논란을 피하지 못하며 도입 취지와 다르게 논란만 낳고 있습니다.
지난 검증위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전에는 기준만 넘으면 정무적으로 문제가 있어도 일단 예비후보자 자격을 줬었다”며 “그러나 검증위에도 정무적 판단이 필요한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설명했습니다. 이어 “그럴 경우엔 적격 판정을 내리면서 공관위가 정밀 심사해달라고 조건을 붙여서 넘기기도 했다. 이번엔 적격 판정을 하지 않은 채로 공천관리위원회에 심사를 요구하는 절차를 둔 것 같다”고 부연했습니다.
민주당이 검증위를 유지하면서도 논란을 키우지 않으려면 부적격 이유를 공개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말한 이 인사는 “세세한 것은 공개하기 어려워도, 추상적이고 일반적으로라도 부적격 사유를 얘기해야 당에서 논란을 잠재울 수 있지 않겠나”라고 제안했습니다.
아직 민주당의 예비후보자 검증 절차는 끝나지 않아 한동안 논란의 불씨는 살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