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와의 전쟁` 갈 길 먼데…연준은 왜 긴축 늦추려 할까

숨죽였던 연준 비둘기파의 반격…그들의 논리 살펴보니
중간선거 임박했는데 경기침체 우려 고조…부담 커진 탓
해외 역풍 우려하는 데일리, 물가 정점 찍었다는 캐시캐리
경기 침체 걱정하는 에반스, 신중론 강조하는 브레이너드
  • 등록 2022-10-22 오후 12:03:33

    수정 2022-10-22 오후 1:05:42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다음달부터 정책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는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는 관측들이 쏟아지고 있다.

경기 침체(recession)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확산하면서 연준 내에서 숨 죽이고 있던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들도 반격에 나서고 있다. 다만 비둘기파들 스스로도 인정하듯, 여전히 높은 인플레이션과 통화긴축 완화에 뒤따를 시장 혼란 등이 숙제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


미국을 대표하는 경제 일간지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현지시간) “연준이 다음달 1~2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75bp 정책금리를 인상하는 또 한 번의 자이언트 스텝 쪽으로 쏠려 있지만, 12월에는 그보다 작은 폭의 인상에 대한 신호를 보낼 지를 논의할 것 같다”고 했다. 이 기사를 쓴 닉 티미라오스 기자는 매번 FOMC 회의를 앞두고 연준 동향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인물로 유명하다.

WSJ는 “연준은 우선 12월에 정책금리 인상폭을 50bp로 낮출지를 결정해야 하고, 그 다음으로 이런 조치가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뒤로 물러서는 게 아니라는 점을 어떻게 설명하고 납득시킬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이후 로이터통신 역시 연준이 다음달 초 또 한 차례 자이언트 스텝을 실행한 뒤 정책금리를 얼마나 더 인상할 수 있을지, 향후 인상 속도를 어떻게 조절할지, 언제쯤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지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연준이 회의 직후에 통화긴축으로 인해 경제 성장의 하방 리스크가 커지고 있는데 대해 시그널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도 했다.

실제 이 같은 움직임은 최근 연준 내 비둘기파의 발언에서도 감지됐었다. 미국 중간선거가 임박한 가운데 시장에선 이미 경기 침체가 올 가능성을 100%로 점치고 있으니 비둘기파 인사들도 오랜 만에 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셈이다.

FOMC 인사들의 성향 상 비둘기파 쪽으로 다소 치우쳐 있는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도 최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연준은 우리가 정확하게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더 뜨거운 논쟁을 벌이게 될 것”이라며 “그 때문에 앞으로의 정책 행보는 보다 더 경제지표 의존적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연준 내 가장 강성의 비둘기파로 분류되는 닐 캐시캐리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지난 20일 연설에서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으면서도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앞으로 몇 개월 내에 인플레이션이 진정될 것으로 본다”며 “인플레이션은 이미 정점을 찍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연준 인사들도 근원 인플레이션이 완화되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를 확인하게 된다면 내년 어느 시점이 되면 금리 인상을 멈추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날 WSJ 보도가 나온 뒤 또 다른 비둘기파인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은 총재도 한 연설에서 “정책금리를 너무 빠르게 인상함으로써 미국 경제를 침체로 몰아 넣는 것을 피해야 한다”며 “이제는 정책금리 인상을 늦추는 것에 대해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론 지금 당장 우리가 통화긴축에서 후퇴하는 것은 정말 어렵고 그 단계까지 가지도 않았다”고 인정하면서도 “이제는 (정책을) 후퇴할 것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고 계획을 세우기 시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통화긴축이 경제를 너무 과도하게 조이기 않도록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며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유럽 경기 둔화,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통화긴축 등의 역풍이 미국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우리 정책금리를 얼마나 높게 올려야 할 것인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라엘 브레이너드 연준 부의장은 이달 초 연설에서 통화긴축 속도 조절 또는 중단을 구체적으로 요구하진 않았지만, 앞으로 추가 금리 인상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들을 나열했다. 그는 “어느 지점까지 정책금리가 올라가게 되면 (긴축에 따른) 장단점을 함께 봐야 한다”며 “특히 한 나라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이 다른 나라의 정책에 파급효과를 미쳐 금융 안정성을 취약하게 할 수 있다”고 경고했었다.

FOMC 인사들의 정책 성향 분포도


찰스 에반스 시카고 연은 총재도 이번주 연설에서 “정책금리를 지난 회의 점도표에서 약속했던 최종금리인 4.60% 이상으로 올릴 경우 미국 경제에 미치는 리스크는 시차를 두고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정책금리 인상이 경제에 정말로 부담을 주기 시작했다”면서 “최종금리를 4.60%까지 올린다고 해도 미국 경제가 침체를 피해갈 수 있을 지는 50% 확률 정도밖에 안된다”고 말했다.

다만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정점을 찍었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다는 점이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동월대비 8.2%나 상승했다. 특히 연준은 내년 말이 되더라도 정책 잣대로 삼고 있는 인플레이션 지표인 근원 개인소비지출(PEC) 물가 상승률이 3%를 웃돌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다 보니 지난 FOMC 회의에서도 19명 정책위원들 가운데 17명이 “인플레이션 리스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었다.

다만 연준 스스로도 물가지표가 전형적인 후행지표라, 그동안 누적됐던 정책금리 인상이 실물경제에 완전하게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이미 팬데믹 초기 물가 상승을 이끌었던 자동차 가격이 하락하고 있고, 임금이나 집값 상승세도 서서히 둔화하고 있다는 속보지표가 나오고 있는 만큼 수 개월 내에 물가지표에 반영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주택 경기 역시 30년 만기 모기지 금리가 7% 직전까지 와 있는 만큼 추가 악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다른 고민은, 연준이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손을 떼는 것 아니냐는 인상을 심어줘 시장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WSJ도 “연준이 금리 인상을 늦출 수 있다는 기대에 7~8월 시장이 랠리를 보이자 제롬 파월 의장이 잭슨홀 미팅에서 시장의 잘못된 인식을 바꿔 놓았다”면서 “12월 FOMC에서 50bp 금리를 인상하는 동시에 새로운 경제 전망을 통해 내년에는 금리를 (기존 예상보다) 다소 더 올릴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게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는 연준 비둘기파들도 인정하는 지점이다.

실제 에반스 총재는 “외부 관찰자들이나 금융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주지 않으면서도 공격적인 통화긴축에서부터 한 발 물러날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면서 “이는 매우,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어디에 와 있고, 인플레이션 상황은 어떨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지, 인플레이션 억제를 계속하면서도 경제가 악화하지 않도록 적절한 긴축 기조를 유지할 수 있을지 대해 솔직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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