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 돈보따리 아베노믹스…가계부터 살리자는 '초이노믹스'

아베노믹스 닮은 초이노믹스‥20년 불황 반면교사
초동대처부터 물량공세…"심리부터 살리고 가겠다"
가계 살리기에 방점…경제 체질개선이 관건될 듯
  • 등록 2014-08-10 오후 12:58:23

    수정 2014-08-10 오후 12:58:23

[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초이노믹스(Choinomics)는 시장과 인기 없는 정부도 살린 즉효약이다.”(AP통신)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사무실로 들어온 순간부터 시장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프레드릭 노이만 HSBC 아시아 경제담당 대표)

글로벌 시장이 ‘초이노믹스’ 효과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초이노믹스는 강력한 부양의지를 바탕으로 재정과 금융지원, 부동산 규제를 풀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최경환 경제팀의 경제정책을 일컫는다. 대통령이나 총리급이 아닌 재무장관 이름을 따 ‘노믹스’로 지칭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그만큼 시장 기대가 높다는 뜻이다. 최 부총리가 취임하자마자 주가는 3년만에 최고치인 2070선을 넘었다.

‘아베노믹스’와 닮은 ‘초이노믹스’

사실 최 부총리의 정책 방향은 아베노믹스(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와 여러 측면에서 닮았다. 아베 총리는 잃어버린 20년 탈출을 위해 재정 팽창, 양적완화, 경제 개혁을 총동원했다.

최 부총리는 인사청문회 때부터 우리나라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할 수 있다는 우려를 연일 강조했다. 그는 “저성장, 저물가, 경상수지 과다라는 거시경제 왜곡현상과 내수 수출 가계와 기업 모두가 위축되는 축소균형의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고 했다. 축소균형은 가계와 기업이 지출을 줄여 경제가 점점 더 쪼그러드는 현상으로 일본의 20년 장기침체를 말한다. 20년 장기 침체에 빠졌던 일본과 지금 우리 상황이 비슷하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실제 우리경제는 2000년 이후 내수부진이 구조적인 현상이 됐고 수출이 성장을 주도하는 경제가 고착화해 대외 환경변화에 더욱 취약해졌다. 경기침체로 국민소득이 줄어들자 가계부채가 경제의 뇌관으로 떠오른 지 오래다. 가계빚은 이미 1000조원을 넘어섰다. 저출산·고령화로 노동공급은 절대 부족하고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주택가격이 급락해 일본처럼 장기 부동산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日정부 정책실패‥잃어버린 20년서 허우적

일본 장기침체 출발은 1985년 플라자합의다. 무역적자에 허덕이던 미국을 살리려 엔화와 마르크화 가치 상승을 유도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플라자 합의 이후 직격탄을 맞은 엔화는 3년간 46.3% 이상 절상됐다.

엔고 위기를 넘으려는 일본 정부는 내수를 띄우기 위해 금리를 낮춰 돈을 풀었고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시장에 거품이 끼기 시작했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자 일본 정부는 긴축으로 급선회했고 이 과정에서 거품이 일시에 꺼지며 충격파가 일본 경제를 강타했다. 이 과정에서 지속된 엔화 강세는 일본 경제 수출경쟁력을 약화하고 기업들이 일본 밖으로 빠져나가게 만들었다. 그 결과 기업 이익률은 하락하고 내수산업은 생산성이 저하돼 신규투자가 감소하고 가계 소득이 줄어드는 악순환을 거듭했다.

여기에 고령화라는 구조적 요인과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생산성 약화, 투자수익 둔화는 공급기반을 무너뜨렸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의 잘못된 진단과 처방이 장기침체라는 불에 기름을 부었다. 일본 정부는 침체 초기 경기국면을 오판해 긴축으로 급선회해 초동대처에 실패했다. 경기활력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날려버린 것이다.

중장기 대책도 부실했다. 구조조정이나 경제체질 개선 같은 정공법 대신 재정 확대와 금리 인하 등의 손쉬운 부양책에만 의존했다. 결국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부양대책은 효과 없이 재정적자만 유발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일본의 국가채무는 GDP 대비 250%를 넘을 정도로 악화했다.

또 과감하게 칼을 빼야 할 때도 주저했다. 일본은 1990년 자산 버블 기간 동안 형성된 대규모 부실을 털어내지 않고 묵혔다가 경제성장의 걸림돌이 된 건 대표적 사례다.

과감한 초동대응‥41조 투입해 경제심리 회복

아베 총리가 취임 직후인 2013년 13조1000억엔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는 등 2년간 132조엔(약 1320조원)의 막대한 돈을 퍼붓겠다고 공언한 것도 과거 일본 정부 실패에서 얻은 교훈이다. 정부가 20년 이상 미적거리다 일본 경제가 식물 상태가 되도록 방치됐다는 판단에서다.

과거 정권처럼 했다가는 일본 경제를 살릴 수 없다고 판단한 아베는 과감히 재정을 푸는 위험을 떠안으면서 시장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고강도 부양 처방을 내놨다.

최경환 경제팀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최 부총리는 올해 추경을 편성하지 않되 이에 버금가는 41조원의 재정을 투입하기로 했고 내년 예산은 추경 소요만큼 담아 확장적으로 편성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시작부터 고강도 처방전을 내놓은 것은 초동 대처부터 실패한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가용자원을 대거 투입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뜻을 명확히하자 일단 시장도 호응을 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최경환 경제팀이 ‘경제는 심리’란 점을 분명히 보여줬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기업 당근 준 아베노믹스‥가계에 방점 둔 초이노믹스

초이노믹스나 아베노믹스 모두 투자와 고용, 소비가 연계되는 선순환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아베 정부는 엔저를 통한 수출 확대와 법인세 인하 같은 당근을 제시했다.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은 것을 잃어버린 20년의 원인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기업 살리기에 우선순위를 뒀다면 최경환 경제팀은 가계살리기에 무게를 실었다. 최 부총리도 법인세 인상 가능성을 차단하고 규제와 공공기관 개혁 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최 부총리는 취임 일성으로 임금과 투자를 늘리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고 사내유보금을 과다하게 쌓는 기업에 환류세를 물리겠다는 가계소득 증대세제 3대 패키지를 내놨다. 그나마 사정이 괜찮은 기업의 돈을 가계로 흘려보내 내수를 살려보겠다는 것이다. 가계 자산이 몰려있는 부동산 시장을 띄우려 규제를 과감하게 푼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아베 정부가 재계를 직접 찾아다니며 2% 임금인상을 이끌어내긴 했지만 엔저와 법인세 인하라는 당근을 제시한 뒤 이뤄진 일이다. 아베노믹스와 초이노믹스는 지향점은 같지만 방법론에서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단기부양만으로는 한계‥구조개혁이 관건

물론 단기 부양만으로 난파 위험에 처한 한국호(號)를 구해낼 수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중장기적으로 한국경제 체질을 개선하는 작업, 즉 구조조정을 이끌어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아베노믹스 역시 무차별적으로 돈을 풀었지만 ‘절반의 성공’이란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다. 경제구조 개혁을 향한 세 번째 화살의 향방을 여전히 가늠할 수 없어서다.

최경환 경제팀도 군불때기에 성공했지만 구조개혁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다. 강력한 구조개혁의 비전을 제시하고 이해관계자들의 동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아울러 한국경제가 일본의 몰락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견실하고 빠른 성장세를 바탕으로 일자리 창출과 소득 수준 향상은 물론 성장을 통한 재정 건전성을 높여야 한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문부터 살리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면서도 “우리는 일본과 비교해 사회경제적으로 쌓아놓은 자산이 부족해 이번 기회를 놓지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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