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은 비가 올 때 펴서 손에 들고 머리 위를 가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 우산은 언제부터 사용됐을까요.
인류사에서 최초의 우산 발명자는 중국인(4000년 전)이나 고대 이집트인(3400년 전) 중 하나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양쪽 문화 모두 군주의 세력이 강했기 때문에 지위가 높은 사람들을 햇볕으로부터 가려주기 위해 우산이 사용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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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머리 위로 우산을 드는 일은 보통 가장 지위가 높은 하인의 몫이었다고 합니다. 중국인들은 이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종이로 만든 파라솔에 왁스를 발라 비로부터 보호하기도 했는데요. 그들은 접이식 우산도 만들었다고 합니다. ‘접을 수 있는 그늘’을 발명한 것이죠.
로마와 그리스로 진출한 우산은 야외극장에 앉아 있는 여성들, 일부 여성적인 남성들이 햇볕을 피하기 위해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와 로마인들은 우산을 나약한 물건으로 여겨 남성들은 비가 오면 모자를 쓰거나 마차를 타며 비를 그냥 맞는 것을 남자답게 여겼다고 합니다.
우산은 18세기 초반 앤 여왕(재위 1702~1714년)의 통치 기간 중 영국에 들어왔으며 여성들만 비를 피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다만 이 우산은 왁스나 기름을 칠한 비단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한번 젖으면 다시 펴거나 접기가 어려운 단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우산이 점차 퍼져나가면서 사람들이 악천후에도 우산을 쓰고 편하게 걸어갈 수 있게 되자 당시 마부들은 장사가 안 된다는 이유로 우산 사용을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본래 대오리나 갈대로 촘촘하게 엮어 머리에 쓰는 널찍하고 움푹한 ‘삿갓’을 비가 올 때 외출용으로 이용했습니다. 농사일을 할 때는 짚이나 띠 같은 풀로 두껍게 엮어 만든 ‘도롱이’가 우비를 대신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우산은 왕을 비롯한 상류층만이 사용했고 양산을 겸한 의례용이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린 비를 우산으로 받는 것을 불경으로 여겨 서민들의 사용은 금지됐었다고 하는데요.
개화기 이후 양산은 신여성들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1950년대부터는 양산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장마’란 고온 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반도 부근에 머물던 차가운 대륙 고기압이나 오호츠크해 기단과 세력 다툼을 벌이면서 장마전선을 만들어 내리는 비를 말합니다. 북태평양 고기압은 따듯한 반면 오호츠크해 고기압은 차가운 성질이기 때문에 이 두 고기압이 한반도 상공에서 줄다리기를 할 때마다 한반도에는 줄기찬 장대비, 즉 장맛비가 내립니다.
굵은 빗방울이 쉴 세 없이 떨어지는 날 우산 하나만 있어도 왠지 모를 든든함이 생기곤 하는데요. 때문에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나와 있는 날엔 우산을 챙겼는지 한 번 더 살펴보게 됩니다.
영국의 한스웨이가 아니었다면 아직도 남성들은 모자 하나만 쓴 채 비를 맞고 다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본격적인 장마철을 앞두고 롯데하이마트는 오는 6일(일)까지 비가 올 때 매장을 방문해 제습기나 에어컨을 사는 고객에게 ‘우산’을 증정한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우산이 부와 지위의 상징이었으나 요즘엔 행사 등에서 사은품으로도 받을 수 있고, 들고 다니다가 금방 잊어버리기 일쑤인 물건이 됐습니다. 하지만 걸어 다니는 사람들에게 우산만큼 비를 잘 막아주는 방재용품은 없는 것 같습니다.
본 기사는 날씨 전문 뉴스매체 온케이웨더(www.onkweather.com)에서 제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