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을 믿는 까닭은? 신뢰호르몬 ‘옥시토신’ 때문

스위스·英서 연구 발표 코에 뿌렸더니 상대에 대한 믿음 두배로
자기 얼굴과 닮은 사람에게 신뢰감 크고
자신과 안닮은 이성에게 더 매력 느껴
  • 등록 2005-06-08 오전 9:16:15

    수정 2005-06-08 오전 9:16:15

[조선일보 제공] 10만원이 당신에게 있다. 이 돈을 다른 사람에게 투자하면 3배를 벌게 된다. 그러나 투자받은 사람이 번 돈을 당신과 나눌지, 아니면 독식할지는 알 수 없다. 당신은 그냥 10만원에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상대를 믿고 투자를 할 것인가. 과학자들은 최근 이런 형태의 투자게임을 통해 상대에게 신뢰감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신뢰감을 북돋을 수 있는지를 알아냈다. ◆코에 뿌리는 신뢰 호르몬 스위스 취리히대 에른스트 페르 교수(경제학)팀은 특정한 호르몬을 코에 뿌리면 상대에 대한 신뢰감이 증대한다는 연구결과를 2일자 ‘네이처’지에 발표했다. 이들이 뿌린 호르몬은 옥시토신(Oxytocin). 동물의 경우 상대에 대한 경계감을 누그러뜨려 짝짓기를 유도하고 사람에게서는 분만과 수유를 촉진시키는 호르몬이다. 연구팀은 128명의 남성에게 40스위스센트(미화 32센트)를 주고 투자게임을 실시했다. 그 결과 옥시토신 냄새를 맡은 참가자들은 45%가 수익을 나누어 줄 것을 믿고 돈을 맡겼다. 반면 냄새를 맡지 않은 사람들에게서는 투자하는 비율이 21%에 그쳐 옥시토신이 상대에 대한 신뢰감을 두 배나 높게 증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김대수 교수는 “옥시토신은 동물에게서 사회성을 유발하는 호르몬”이라며 “생쥐 새끼가 옥시토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면 어미를 따라다니지 않게 되는데, 이는 마치 인간이 자폐증에 걸린 것과 같다”고 말했다. 페르 교수도 “이번 연구는 자폐증과 같이 사회성 장애를 겪고 있는 환자들에게 옥시토신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연구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연구목적은 여기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페르 교수는 최근 발달한 신경생물학을 이용해 소비자 구매행동 등을 분석하는 신경경제학자. 정치가·백화점 점원이 옥시토신 냄새를 풍기고 있으면 표와 돈으로 연결될 것이란 생각을 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 아이오와의대 신경학과의 안토니오 드마지오 교수는 “현재의 마케팅 기술들은 소비자의 뇌에서 옥시토신 분비를 촉진하도록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기 때문에 옥시토신을 일부러 뿌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와 닮은 사람을 믿는다 옥시토신 향수 대신 백화점 점원을 어디선가 본 듯한 평균적인 얼굴로 뽑으면 더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 영국 에버딘대 리사 드브린느 박사팀은 영국 ‘왕립학회보’ 최근호에서 144명의 학생들에게 컴퓨터로 사람 얼굴사진을 보여주면서 가장 믿음이 가는 얼굴을 고르게 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팀이 보여준 사진 중에는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의 사진을 성별만 바꿔 놓은 것도 포함돼 있었다. 실험 결과 사람들은 자신과 닮은 얼굴의 이성에 대해 신뢰감을 표현했다. 반면 매력도 측정에서는 자신과 전혀 다르게 생긴 얼굴에 더 호감을 나타냈다. 즉 돈 거래는 나와 닮은 사람과 하고 연애상대는 전혀 다른 생김새의 사람이기를 원한다는 것. 드브린느 박사는 이런 결과를 “진화과정에서 형성된 친족 선택과 함께 근연(近緣)교배 회피 본능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과학자들은 인간을 비롯한 동물이 살아가는 목적은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퍼뜨리는 데 있다고 본다. 사회생활을 하는 꿀벌이나 늑대가 자신이 낳지도 않은 자손을 돌보는 것도 결국 자신과 동일한 유전자를 더 잘 퍼뜨리기 위한 ‘친족선택’ 행동이다. 반면 짝짓기에서는 대부분 친족을 회피하는데, 따로 있을 때는 나타나지 않던 나쁜 형질이 같은 유전자가 결합하면서 드러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뇌의 보상중추가 핵심 그렇다면 신뢰감은 뇌의 어디서 일어나는 것일까. 미국 베일러의대 리드 몬태규 교수팀은 ‘사이언스’ 3월 31일자에서 뇌에서 신뢰감을 일으키는 곳은 대뇌 아래쪽의 ‘미상핵’(caudate nucleus)이라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48명을 2명씩 짝을 지워 투자게임을 실시하게 했다. 앞서 게임과 마찬가지로 믿고 투자하면 원금의 3배를 버는 형식. 연구팀은 뇌에 흐르는 혈액의 양을 기능자기공명영상(fMRI)으로 관찰했다. 그 결과 투자자가 수익금을 돌려 받고 나서 다음 게임에서 전보다 더 많은 돈을 투자할 때, 즉 신뢰를 신뢰로 보답할 때 미상핵의 혈류량이 최대로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임 말미에는 교환이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혈류량이 미리 늘고 있음이 관찰됐다. 이는 신뢰가 점차 쌓이는 증거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이전 연구에 따르면 미상핵은 두뇌의 보상 경로에 참여한다. 그러므로 어떤 행동을 하면 내게 좋은 일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될 때 이 부위가 활성화되는 것이다. 투자게임에서 상대를 믿을 때 이 부위에 피가 몰리는 것도, 신뢰를 하면 더 큰 보상이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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