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석] 현재 많은 상가건물은 상가자체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상가번영회회칙, 상가규약 등으로 명칭되어지는 “회칙”이 만들어져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회칙의 효력과 관련해서 상가와 관련된 모든 관계자에게 회칙의 효력이 미칠 수 있는 것처럼 이해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이미 만들어진 회칙은 폐지되거나 변경되지 않는 한 상가의 모든 관계자를 당연히 구속하는 것처럼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다음에서 보는 바와 같이 상가회칙이라고 하더라도 제정경위나 절차가 어떠했는지에 따라 그 효력에 크게 차이가 나게 된다.
기본적으로 개인은 행동이나 의사결정의 자유를 가지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 이러한 자유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는데 이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보면, 첫째는 자기 스스로 어떠한 약속을 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러한 약속을 스스로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국가의 법규에서 그러한 의무를 그 사람에게 강제하는 규정을 두고 있는 경우이다.
전자의 경우로는, 갑이 을로부터 돈을 차용하고 을에게 언제까지 어떠한 조건으로 돈을 갚기로 약속하는 경우가 가장 단순한 예가 될 수 있다. 후자의 경우로는, 국민의 납세의무와 같은 경우로, 국민이 국가에 대하여 세금 납부할 것을 약속하지는 않았지만, 법규에서 국민의 납세의무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준수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상가회칙과 관련해서도 상가회칙을 준수할 의무가 있는지, 의무가 있다면 누구에게 그 의무가 존재하는지를 살피기 위해서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은 두 가지 측면에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즉, 전자의 측면에서 본다면 상가회칙을 지키기로 약속한 사람은 마땅히 이를 준수할 의무가 있지만, 반면 이를 약속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회칙을 준수할 의무가 없는 결과가 된다. 즉, 상가회칙을 준수하기로 약속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회칙을 강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상가회칙을 만드는 과정에서 일정한 사람들이 모여서 일정한 의결절차(예를 들어, 과반수출석, 출석자 과반수 찬성)를 거쳐 만들어진 회칙에 대해서는 의결과정에 참여한 사람에 대해서는 회칙이 제정된 것으로 의결된 것이라면 비록 회칙에 반대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준수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비록 개인적으로는 회칙에 반대하였다고 하더라도, 과반수찬성으로 의결될 경우 그 회칙을 참여한 사람들간에는 상가 내의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규칙으로 인정하기로 서로 간에 사전에 약속하였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그러한 의결과정에 전혀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회칙을 준수하기로 약속한 사실이 없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이들에게는 준수의무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결의 당시에 아무런 통보를 받지 못해 회의에 관여하지 못한 사람이나, 회칙 결의 이후에 상가소유권을 취득하거나 영업을 개시한 사람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가회칙은 회칙 의결 당시 참여한 사람은 물론,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 모두에 대해서 적용되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다. 이는, 비록 한정적인 범위 내에서만 효력이 있는 회칙이라고 하더라도 오랜기간 동안에 상가관계자 모두에게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는 점, 회칙 내용에서 ‘회칙제정 이후에 상가관계자 모두에게 회칙이 적용된다’는 취지로 많이 규정되어 있었다는 점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기본적으로 어떠한 약속(계약)은 약속을 한 사람들간에만 효력이 있고, 약속을 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효력이 없기 때문에(이를 법률적으로는, “채권적 효력”이라고 한다) 이를 약속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효력이 미친다고 회칙에서 임의로 규정한다고 하더라도 이 규정은 무효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상가의 효율적인 관리, 운영을 위해서는 회칙을 제정하는데 관여한 사람이건 그 이후에 상가와 관련을 맺게 된 사람이건간에 회칙이 공히 적용되어질 필요가 있는데, 상가회칙을 제정함에 있어 동의나 약속을 하는 과정을 거치지 못하였다고 하여 일부 사람들에 대해서만 상가회칙이 적용될 수 밖에 없다면, 회칙으로서의 기능은 현저히 부족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상가전체의 운영을 위해서 점포당 부담할 관리비를 회칙에서 정했는데, 회칙제정에 관여하지 못하였다고 하여, 관리비를 지급할 의무가 부인해 버린다면 전체적인 상가운영에 큰 지장을 받게 된다.
이러한 차원에서, 상가와 같은 집합건물의 효율적인 관리운영을 위해 만들어진 법규가 바로, 집합건물의소유및관리에관한법률(이하, 집합건물법이라고 함)인 것이다. 즉, 집합건물법의 내용은 그 내용과 같은 약속이 구체적으로 없었다고 하더라도 집합건물의 관계인은 집합건물법의 규정을 준수할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서 집합건물법 42조는 ‘규약 및 관리단집회의 결의는 구분소유자의 특별승계인이나 점유자에 대하여 공히 효력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상가와 같은 집합건물 내의 규약 등은 규약 제정 전후를 불문하고 상가소유자, 특별승계인, 점유자 모두에 대해서 적용된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집합건물법에서 정하는 규약으로서의 효력을 가진 회칙에 대해서는 비록 이러한 내용의 제정에 동의한 바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를 준수할 의무가 있게 된다. 이는, 상가와 같은 집합건물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서는 일부의 반대가 있더라도 다수가 토론하여 결의를 한 사항에 대해서는, 이를 준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법에서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의할 점은, 집합건물법상 유효한 관리규약이 되기 위해서는 집합건물법에서 정한 절차적, 실체적인 정당성을 모두 갖추어야만 한다. 즉, “규약의 설정, 변경--은 관리단집회 구분소유자 및 의결권의 각 4분의 3이상의 찬성을 얻어 행한다”, “ --관리단집회일의 1주일 전에 회의의 목적사항을 명시하여 각 구분소유자에게 통지하고, 관리단집회는 위와 같은 통지사항에 관하여서만 결의할 수 있다” 는 집합건물법의 규정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비록 자신이 제정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회의의 과정을 거쳐 소유자의 3/4이라는 다수가 찬성을 결의하였다면, 이 의결에 관여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도 회칙준수의 의무를 부담하더라도 부당하지 않다는 판단에서 근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 시행 중인 대부분의 상가회칙들이 집합건물법에서 정한 절차나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집합건물법은 상가회칙의 주된 이해관계가 상가소유자에게 있는 것으로 보고, 상가소유자의 3/4이상이 의결하여야 집합건물법상 유효한 관리규약이 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음에 반해, 대부분의 상가회칙들은 상가소유자들이 아니라 상가점포운영자(소유자도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이 임차인인 경우가 많다)들이 의결하고, 그 의결요건도 3/4에 거의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현행 상가회칙의 대부분은 집합건물법상의 관리규약으로서는 무효인 경우가 태반이다. 결국, 이러한 회칙들은 결의과정에 참여한 사람들간의 사적인 약속에 불과한 정도의 효력만이 있는 셈이다. 그로 인해, 그 결의과정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법률적으로 구속할 권리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가회칙은 별다른 비판없이 상가이해관계인들 모두에게 강제되도록 요구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과정에서 상가회칙의 내용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잦은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최근에 필자와 법률상담한 어떤 사람은, 경매를 통해 상가점포 여러 채를 낙찰받아 임대사업을 하고자 하는데, 좋은 임대수익이 예상되는 업종은 이미 해당 상가 내에 다른 사람이 운영 중에 있었으며, 그 상가회칙에는 동업업종금지 내용이 규정되어 있어 상가회칙제정경위를 확인해 본 바, 상가회칙은 상가개설 초기에 상가 소유자가 아니라 점포운영자들의 극히 일부가 모여 만든 것이고, 의결과정에 참여한 상가소유자의 비율은 불과 10% 미만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 낙찰자 입장에서는 상가소유자들도 아니라 얼마간 영업을 하다가 상가를 떠나가버릴 점포운영주들이 주동이 되어서 만든 회칙이라는 것을 통해, 정작 회칙제정에 관여하지도 않은 상가소유자인 자신들의 재산권(수익성이 가장 좋은 업종으로 임대할 권리)을 침해받고 있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이러한 문제가 거의 대부분의 상가에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므로, 향후 상당한 혼란이 예상된다. 법에 대한 정확한 이해없이 적법하지 못하게 만들어진 회칙이 장기간 통용되다보니 그동안 사실상의 구속력으로 작용해 왔고, 그 부당함을 느끼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당연히 마찰이 빚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법과 현실의 괴리로 인한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판례는, 관리규약의 제정과정에서 구분소유자가 아닌 임차인이 일부 포함되어있었다고 하더라도, 임차인이 해당 점포 구분소유자의 대리인의 자격으로 의결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관리규약 제정 등을 위하여 구분소유자에 대해 통보되고 대부분 구분소유자가 참석하였으나, 일부 점포의 경우에는 임차인이 참석한 경우 그 임차인에게 대리인자격을 인정한 판례에 불과한 것이고, 구분소유자에 대한 통보가 아니라 거의 대부분이 현 점포운영자만에 대하여 통보가 이루어져서 결의가 되었다면, 집합건물법상 관리규약으로서 효력이 있다고 하기 어렵다는 점에 향후 분쟁은 불가피하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