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현지에서 월가의 핫한 시선을 전해 드립니다. 월가브리핑이 시장의 흐름을 이해하고 투자의 맥을 짚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을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 모두가 인플레이션을 걱정하고 있는데, 이게 무슨 소리냐고요. 월가에서 가장 핫하다는 캐시 우드 아크 인베스트 설립자의 말입니다. 한국 서학개미들 사이에서는 ‘돈나무 언니’로 잘 알려져 있지요. 인플레이션 공포가 커지는 와중이어서 우드의 ‘발상의 전환’은 더 이목이 집중되고 있지요.
우드는 코로나19가 만든 월가의 스타 매니저입니다. 그가 운용하는 간판 상품인 ‘아크 이노베이션 ETF(ARKK)’는 지난해에만 170% 넘는 수익률을 올리며 월가를 달궜고요. 서학개미들은 돈나무 언니라고 부르며 열광했습니다.
주요 편입 종목을 보면, 왜 펀드 이름이 ‘이노베이션(innovation)’인지 알 수 있습니다. 27일(현지시간) 기준으로 테슬라(10.24% 편입)를 가장 많이 담고 있고요. 그 외에 텔라독 헬스와 로쿠를 각각 6.05%, 5.80% 비중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텔라독 헬스는 원격의료 대장주이고, 로쿠는 주요 스트리밍 플랫폼입니다. 또 스퀘어(4.69%), 쇼피파이(4.17%), 줌(4.07%), 트윌리오(3.64%), 코인베이스(4.63%), 스포티파이(3.50%), 유니티 소프트웨어(3.46%) 등에 대거 투자하고 있지요. 고평가 기술주에 공격 투자하는 게 우드의 철학입니다.
ARKK는 올해 들어 부진합니다. 지난 2월 12일 당시 156.58달러까지 오른 이후 곤두박질 치고 있는데요. 최근 그나마 상승했다지만, 여전히 110달러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날 112.28달러에 마감했습니다. 지난 13일 99.48달러로 100달러 아래로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명합니다. 월가에 인플레이션 공포가 닥쳤기 때문입니다. 금리가 뛰기 시작하면 초안전자산으로 불리는 국채의 수익률이 높아지지요.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오를대로 오른 고평가 기술주에 투자할 이유가 없어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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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평가 기술주 더 오를 수밖에 없다”
도대체 무슨 얘기일까요. 디플레이션이 물가가 지속 하락하는 현상이라는 걸 모르는 투자자는 없을 겁니다. 그런데 이 디플레이션을 자세히 살펴보면, 각자 성격이 다릅니다. △수요가 살아나서 물가가 오르는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 △원자재 같은 비용이 높아져 물가가 오르는 비용 상승 인플레이션이 전혀 다른 것과 똑같습니다.
투자매체 CIO 등을 통해 본 우드의 표현을 빌리자면, 디플레이션은 좋은 디플레이션(Good Deflation)과 나쁜 디플레이션(Bad Deflation)이 있습니다. 우드가 주목하는 건 좋은 디플레이션입니다. 쉽게 말해 기술 혁신으로 공급이 늘어나 가격이 저렴해지는 현상인데요. 생산 기술이 향상돼 생산 능력이 폭발적으로 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가격이 내린다고 해도 생산성이 더 빠른 속도로 좋아지면 기업 수익성이 나빠지지 않을 겁니다. 소비자가 싼 가격에 상품을 즐기면서 얻는 효용은 두말할 것도 없고요.
이는 총수요가 줄어 가격이 떨어진다는 전통적인 의미의 디플레이션이 아닙니다. 우드는 “향후 5년간 닥칠 위험은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이라며 올해 폭락한 고평가 기술주들은 향후 5년간 큰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그가 운용하는 ARKK를 비롯한 많은 펀드들에 담겨 있는 종목을 보면, 우드가 어떤 산업을 눈 여겨보고 있는지 알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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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폭발, 경제 전체 디플레 압력”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볼까요. 우드는 “배터리 팩 용량의 발전은 좋은 디플레이션의 예”라며 “전기차 배터리 팩 용량이 두 배로 늘어나면 (전기차 생산과 관련한) 비용은 28% 줄어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미국에서도 전기차는 아직 광범위하게 보급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기차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감이 잡히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드는 전기차는 앞으로 폭발적으로 늘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경제 전체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전기차 보급이 유가를 누를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우드는 “이르면 올해 말 혹은 내년 들어 상품가격이 일제히 내릴 것”이라며 “이게 다시 디플레이션을 부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배럴당 70달러 이상의 유가는 보기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지요.
또 있습니다. 인공지능(AI)입니다. 우드는 “AI로 인한 (인력 등) 기업의 훈련 비용은 연간 37~50% 낮아질 것으로 본다”며 “AI는 모든 섹터, 모든 산업, 모든 기업에 침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AI가 일으킬 디플레이션은 불가피하다는 건데요. 동시에 이를 선점한 회사는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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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에너지주와 금융주 조심해야”
그렇다면 창조적 파괴 트렌드 탓에 부진한 종목 역시 존재할 겁니다. 우드가 꼽는 건 에너지주와 금융주입니다. 그는 “디지털 지갑 혁명은 빠르게 입소문을 타고 있다”며 “금융주 투자자들은 조심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예컨대 우드가 선호하는 스퀘어 같은 종목을 들 수 있겠지요. 아울러 유가가 구조적인 하방 압력에 직면하면 에너지주는 도전을 받을 수 있습니다.
ARKK는 지난해와 달리 올해 분명 고전하고 있습니다. 고점 대비 이날 가격은 28.29% 떨어진 수준입니다. 연중 저점과 비교하면 하락률이 36.47%에 달합니다. ARKK 외에 우드가 운용하는 나머지 액티브 ETF의 올해 가격 흐름은 놀랍도록 유사합니다. ‘아크 핀테크 이노베이션 ETF(ARKF)’의 경우 연중 최고점 대비 최저점 하락률은 29.45%입니다. 지난해 고공행진이 무색한 부진이지요. ARKF는 스퀘어, 쇼피파이, 질로우, 페이팔, 핀터레스트 등의 종목을 담은 펀드입니다.
월가 전체가 인플레이션 공포에 떨고 있는데, 디플레이션 국면을 점치는 우드의 발상은 신선합니다. 연방준비제도(Fed) 긴축 개시→시장금리 상승→주요 고평가 기술주 급락→위험자산 회피 만연→금융시장 전반 공포감 등으로 이어지는 대체적인 뷰 자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기술주 풍향계’ 우드의 디플레이션 베팅은 월가를 바라보는 또다른 포인트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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