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손의연 기자] 세계 최장기 굴뚝 고공농성 기록을 세운 파인텍 두 노조 조합원이 농성을 벌인지 426일 만인 지난 11일 땅을 밟았다. 수년간 이어져온 파인텍 노사 갈등이 마침표를 찍은 모양새다. 파인텍 노사는 11일 5명 노조원을 자회사에 고용하고 스타플렉스 대표가 파인텍을 맡아 경영하는 데 합의를 이뤘다. 10일 오전 11시부터 약 20시간 20분 동안 진행된 마라톤 회의 끝에 내린 결론이다.
홍기탁 전 파인텍 노조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은 노조 조합원들과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굴뚝에서 내려왔다.
426일…마침내 땅 밟은 두 노동자 “노조 지키기 힘들어”
참으로 긴 투쟁이었다. 2년여 만에 땅을 밟은 홍 전 지회장과 박 사무장은 응급용 침대에 누워 그간의 소회를 밝혔다. 홍 전 지회장은 중간중간 흐느끼며 “위에서 박 동지와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많은 걸 느꼈다. 긴 역사 속에서 지켜왔던 민주노조인데, 노동조합 지키는 게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다”며 “청춘을 다 바쳤다. 민주노조 사수하자”고 말했다.
박 사무장도 “고맙다는 말씀부터 드린다. 위에 올라가 있다는 거 말고 밑에 있는 동지들에게 힘이 못 돼준 거 같아 미안하다”라며 “단식까지 해주시며 응원해주신 많은 분들께 이 자릴 빌려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도 함께 해주신 동지들 마음을 받아 안고 올곧게 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
차 지회장이 정리해고를 단행한 회사에 항의하며 2014년부터 2015년까지 408일간 경북 구미 공장 굴뚝에서 농성을 벌였다. 당시 회사와 노조는 새 법인을 세워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기로 합의했다. 파인텍은 스타플렉스 자회사 스타케미칼로부터 노동자들이 권고사직을 받은 뒤 노동자들이 반발하자 스타플렉스가 새로 세운 법인이다.
하지만 이후 진행된 단체협약 협상 과정에서 상여금 등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자 홍 전 지회장과 박 사무장은 지난 2017년 11월 12일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 올랐다. 노조는 파인텍 공장 재가동과 남은 5명의 노조원을 스타플렉스에서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노사 간 협상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한 건 지난달부터다. 교섭은 쉽지 않았다. 노사는 10일까지 총 5번에 걸쳐 교섭을 벌였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회사와 노조 간 불신이 극에 달했다. 고용 형태, 공장에 대한 책임 주체에 대해 노사가 서로 물러서지 않았다.
|
공동행동 관계자는 ”조합원 5명이 업무에 복귀하며 최소 3년간 고용을 보장받기로 했다”며 “자회사로 고용하며 모기업인 스타플렉스 대표가 파인텍을 맡아 운영하기로 했다”고 알렸다. 노조원 5명은 올해 1월 1일부터 공장가동 전까지 6개월간 유급휴가로 100% 임금을 받는다.
노사는 금속노조 파인텍 지회를 교섭단체로 인정하며 오는 4월 30일 전까지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데 합의했다. 차광호 파인텍 노조지회장은 “합의안에 부족한 점이 있었지만 동지들을 생각해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며 “합의가 앞으로 좀 더 나은 길로 나아갈 시작점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세권 스타플렉스 대표는 “그동안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 대단히 죄송하다”며 “합의는 원만하게 한 것으로 생각한다. 염려해주셔 감사하다”고 밝혔다.
노사가 합의문에 서명함에 따라 5명의 파인텍 노조원은 회사로 돌아간다. 파인텍 공장은 준비기간을 거쳐 오는 7월 1일부터 재가동된다.
박래군 인권재단사람 소장도 “헌법에 보장된 작은 권리를 위해 많은 사람이 애쓰고 노동해야 하는 게 서글프다”며 “이날 합의가 지켜질 수 있도록 함께 단식한 우리도 합의사항이 제대로 이행될 수 있도록 감시하며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