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미한 명암만 구별하는 수준의 ‘저시력자’는 시각장애인의 80% 이상, 전 세계적으로 2억5000만명이 있다. 이들은 지금까지는 최소 400만원대, 많게는 수 천만원대의 장비를 이용해야만 겨우 글씨를 읽을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삼성전자(005930) 개발자들이 만든 ‘릴루미노(Relumino)’ 앱을 설치한 가상현실(VR) 헤드셋 ‘기어VR’로 보자 글자는 물론 그림도 또렷이 볼 수 있었다. 개발제품 시험에 참여한 김찬홍 한빛맹학교 교사는 “VR 장비가 그저 오락거리라고만 생각했는데, 시각장애인에게 개인마다 맞게 최적화(Customization)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놀랐다”고 말했다.
20일 삼성전자는 기어VR에서 저시력자가 사물이나 사람을 또렷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릴루미노 앱을 오큘러스 스토어에서 제공하기 시작한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8일에는 서울 태평로 삼성전자 브리핑룸에서 언론을 대상으로 시연행사를 개최했다. 릴루미노는 ‘시력을 되돌려주다’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10만원대 기어VR로 최대 0.9 수준 교정시력 제공
이 상태에서 저시력자의 시야 상태처럼 보이게 하는 특수 안경을 끼고 다시 체험해봤다. 특수안경만 낀 상태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던 시계 바늘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글자의 경우 원래 색상대로 보면 글자가 번져 잘 보이지 않지만, 색상을 반전시키자 검은 바탕에 흰색 글자가 나타나며 내용을 읽는데 무리가 없었다.
|
이 사업은 삼성전자가 6년째 운영 중인 C랩 과제 중 하나로 추진됐다. 2012년부터 시작된 이 제도는 삼성전자 내부 개발 인력이 기존 사업체계와는 다른 새롭고 색다른 연구 프로젝트를 시도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이재일 삼성전자 창의개발센터 상무는 “잘 조직화된 것이 삼성전자의 장점이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앞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새로운 환경에 대응할 수 없어 C랩 제도를 운영하기 시작했다”며 “1년 간 과제 진행이 끝난 뒤에는 DMC연구소장이 위원장을 맡는 ‘출구전략심의위원회’를 통해 관련 사업부 이관이나 스핀오프(분사 창업) 여부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또 사회공헌 과제도 8개를 진행 중인데, 릴루미노 앱도 이중 하나다. 앞서 C랩 과제로 2014년 지체 부자유자가 눈의 움직임으로 사용할 수 있는 특수 마우스를 개발해 무료 보급하기도 했다.
중장기 선행기술을 연구하는 DMC연구소가 주도하지만, 각 사업부나 해외 소재 연구조직에서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완성도와 시장 성공 가능성을 동시에 높이는 ‘린&애자일(Lean & Agile)’ 개념을 도입, 회사 내에서도 과제와 관련된 경험자나 전문가가 의견을 나누고 협업할 수도 있도록 하고 있다. 현재까지 180여개 과제가 진행됐고, 이중 25개 과제는 분사를 통해 벤처 창업으로 이어졌다. 이놈들연구소, 망고슬래브, 쿨잼컴퍼니, 스케치온 등 곳곳에서 성과를 내는 곳들이 나타나고 있다. 분사 시에는 삼성벤처투자를 통해 최대 10억원을 투자한다. 이 상무는 “C랩을 통해 삼성전자 중심의 R&D(연구개발) 생태계 확대는 물론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바도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