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오페라를 가끔 보다 보면 노래도 잘하고 음악도 훌륭한데 연극적 측면이 늘 아쉬웠다. 슬프면 슬프게 비통한 건 비통하게 표현하는 식이더라. 좀 다른 해석을 덧붙이면 탄탄한 드라마가 생겨날 텐데 생각에 머물던 시도를 해보고 싶은 거다. 굉장히 재밌을 것 같았고 내가 공헌할 수 있는 바가 있겠다 싶었다.”
연출가 고선웅(48·극공작소 마방진 예술감독)이 오페라 무대에 정식 데뷔한다. 세종문화회관 서울시오페라단이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기념해 올리는 ‘맥베드’를 진두지휘한다. 뮤지컬과 창극 등의 음악극을 각색·연출한 적은 있지만 오페라는 이번이 처음이다.
|
고 연출은 “‘칼로막베스’ 초연 당시 ‘맥베스’를 일곱 권 정도 보고 연구분석을 했다. 원어 강의도 들었다. 잘 녹여내는 게 숙제다. 캐릭터 분석·동선·텍스트의 상황을 통해 인물의 심리를 설득력 있게 만들어가는 게 내가 할 일”이라며 “좀 다르게 가지만 베르디가 말하고자 하는 본질은 같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고선웅 식 위로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런 거 없다. 오페라를 많이 해봤다면 조금 더 배짱 있는 장면도 만들어보고 할텐데 파격을 주기에는 아직 초년병이니까. 선방하자는 마음이 크다. 하하.”
△고선웅 표 맥베드 연습실 엿보다
|
이날 고 연출은 맥베드 부인 역의 소프라노 오미선이 열창하며 연기를 펼칠 때마다 즉각 동선을 수정해나갔다. 손가락으로 가리켰을 뿐인데 바로 알아듣는 게 신기할 정도다. 고선웅은 “정말 열심히 하고 굉장히 잘한다. 아무래도 전문적인 연기자와는 차이가 있지만 연극적 상황을 주문하면 쉽게 흡수하더라. 사이좋게 하고 있다. 내 생각이다. 하하.”
3년 6개월 만에 클래식에 복귀하는 지휘자 구자범과의 호흡은 ‘신의 한 수’라고 할 만하다. 일각에선 두 사람 모두 예술가로서 개성이 뚜렷한 만큼 호흡을 우려하기도 한다. 고 연출은 “구자범 지휘자가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음악감독 시절 함께 시네마콘서트를 기획한 적이 있다. 당시 뜻이 잘 맞아 무척 즐겁게 작업했던 기억이 있다”며 “이탈리아어도 모르고 악보도 겨우 읽는 수준인 만큼 음악적 조언을 많이 얻고 있다. 특히 작업하면서 서로 긴장감을 가지고 얘기를 나눌 수 있어 좋다. (작품이) 잘 나올 거 같다. 많이 배우고 있다”고 귀띔했다.
△“조력자 역할에 집중할 것”
|
고선웅의 1차 목표는 덜 지루한 오페라를 만드는 것. 그래서 음악과 상황에 잘 어울리는 극적 장면을 만드는 데 중점을 뒀다고 했다. 고 연출은 “고선웅만이 할 수 있는 그런 거는 잘 모르겠다. 오페라에서 연출은 조력자다. 노래가 완성되고 성악가가 노래를 잘하면 그 힘으로 가는 건데 거기에 좀 더 드라마틱한 연출을 더하고, 노래에 정당성을 부여해 배우가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성악가가 감정이입을 쉽게 할 수 있는 모티브를 찾아내고 밀도 높은 미장센을 만들면 관객의 감동도 커질 것”이라고 봤다.
막상 연습해보니까 연극이든 오페라든 하면 할수록 ‘똑같구나’란 생각이 들더란다. 고 연출은 “오페라를 몇편이나 봤겠느냐마는 실험을 했든 정통을 했든 형식이 다를 뿐이지 다 비슷비슷하더라. 내게 가장 중요한 건 극적 밀도를 잘 풀어내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탐욕은 자멸을 초래한다는 맥베드가 주는 본래 이야기는 베르디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고선웅 식으로 해결하는 터치는 있겠지만 이번 맥베드는 다르다라고 말할 건 전혀 없다.”
오페라 작업에 계속 도전할 생각이냐는 물음에는 단박에 “네. 해야죠”라고 답한다. “그런데 뺨 맞고 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생각하고 싶지 않다. (웃음) 어쨌든 이제 공포는 없다. 연출에게 가장 어려운 산이 그 공포를 털어내는 일인데 고개는 넘은 셈이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