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위가 한발 물러나기는 했지만, IPTV 도입까지 가야할 길은 멉니다." (방송위원회 방송법 개정안 발표 이후)
KT(030200) 직원들은 요새 표정관리하느라 바쁘다. 정부가 규제를 풀고 새로운 사업에 힘을 불어넣고 있는데, 정작 "남는게 없다"며 아쉬운 소리다.
그러나 찬찬히 뜯어보면 KT의 하소연은 엄살에 가깝다. 결합판매와 IPTV 등 정책환경이 우호적으로 변하고 있는데다, 자회사인 KTF마저 새로운 이동통신서비스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있기 때문이다.
KT는 어느때보다 입단속에 신경을 쓰고 있다. 지나친 자신감이 불러올 외부의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밖에 대선 등 정치적 변수와 통신업계 지배적 사업자로서의 위치 등이 자칫 들뜰 수 있는 KT 분위기를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KT "정통부 발표 아쉽다"..진심일까?
KT의 표정관리는 정부가 결합판매를 허용한 시점과 맞물려 있다. 지배적 사업자라는 족쇄에 묶여 제대로 된 결합상품을 내놓을 수 없었던 KT는 이달 중순 발표된 정통부의 규제완화 로드맵에 따라 올해부터 묶음판매가 가능해졌다. ☞관련기사: KT·SKT, 통신서비스 묶어파는 길 열렸다
결합판매 대상에는 초고속인터넷과 유무선전화는 물론이고 KT가 차세대 먹거리 사업으로 꼽는 와이브로나 IPTV도 포함된다. 말 그대로 주력품목을 한번에 팔 수 있는 길이 열린 것.
하지만 KT는 결합판매 허용방침이 발표되자 "(정부 발표가) 유선시장 경쟁확대 중심으로 돼있어 융합서비스 활성화 측면에선 다소 아쉬움이 있다"고 밝혔다.
로드맵 내용 가운데 인터넷전화 번호이동제 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존에 쓰던 시내전화번호 그대로 인터넷전화를 쓸 수 있게 하면, 애써 모은 유선전화 가입자를 요금이 저렴한 인터넷전화에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KT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인터넷전화 번호이동제는 도입시기가 문제였을뿐 시행자체는 이미 기정사실로 굳어진 사안이다. 오히려 관련규정 마련 등으로 본격적인 시행은 내년부터나 가능해 KT로선 대책을 마련할 1년 정도의 시간을 벌어놓은 게 됐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KT가 밝힌 '아쉬움'은 대놓고 좋아할 수 없는 자신들의 심정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말로 받아들이고 있다. 크게 손해볼 일 없는 장사에서 본전도 못뽑았다고 툴툴거리는 것과 같다는 식이다.
정부는 현재 와이브로나 IPTV 등 KT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사업에 어느때보다 적극적이다. 그러나 정작 기뻐해야할 KT는 의외로 조용하다.
예를 들어 이달초 정부가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한정된 와이브로 서비스를 올해 안에 광역시를 포함한 전국 23개 시로 확대하겠다고 했을 때 KT는 좋다싫다 반응이 없었다. ☞관련기사: 와이브로 서비스, 연내 전국 23개 도시로 확대
심지어 UCC(사용자제작콘텐츠) 시대에선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과 접속할 수 있는 와이브로가 뜰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보이던 KT는 내달 3일 예정된 서울시 전역 와이브로 개통행사를 기자들에게 알리지 않을 정도로 쉬쉬했다. 마지못해 와이브로 사업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정도다.
IPTV 사업도 마찬가지. 공정거래위원회가 "방송분야에도 경쟁원리를 확산시켜야 한다"며 KT 손을 들어준데 이어 방송위마저 방송법 개정안에 자회사 분리안을 명문화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KT는 IPTV 진입을 위한 유리한 고지를 확보했다.
그러나 공식적인 반응은 자제하고 있다. IPTV 도입까지 적지않은 진통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일희일비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KT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사업일수록 내실을 다지는 게 먼저라는 입장이다.
KT의 조용한 행보에는 정부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다 춤판이 깨질때 머쓱해질 수 상황을 미연에 막고자 하는 의도도 엿보인다. 지금이 대대적인 홍보를 하며 판을 벌일 상황인지 아닌지 좀처럼 판단이 안선다는 것이다. KT 관계자는 "규제산업인 통신시장은 아무래도 대통령선거 등의 정치적 변수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는 말로 분위기를 전했다.
◇"SKT 자극말자"..내부기류 변화
특히 KTF와 경쟁관계에 있는 SK텔레콤(017670)과 껄끄러운 관계가 지속되고 있는 점이 부담이다. KT와 SK텔레콤은 최근 3세대(G) 휴대폰 재판매 문제를 둘러싸고 핏대를 세우는 논쟁을 벌였다. 최종적으로 KT 재판매허용으로 결론이 났지만, 감정의 앙금은 여전한 상태다. ☞관련기사: "3G폰 전화국서 팔면 안된다니깐"..논란 가열 KT "SKT 신세기통신 합병 취소해야"
KT가 자신들의 성과를 지나치게 내세울 경우 유선시장 1위 사업자와 무선시장 1위 사업자가 상생과 협력이 아닌 대결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유무선 통합이라는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도 SK텔레콤을 자극할 수 있는 행보는 바람직하지 않다. KT가 SK텔레콤의 반격 가능성에 긴장하면서도 추가대응 여부를 두고 고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따라 KT는 이른바 '잘나간다'는 인상을 희석시키기 위해 분주하다. 자회사인 KTF 내부에서도 SK텔레콤을 자극하는 일을 피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KTF 관계자는 "SK텔레콤이 HSDPA 전국망 서비스를 시작하면 3G 시장의 파이가 커지는 등의 장점이 있다"며 "우리로선 나쁠 게 없다"고 말했다.
◇거꾸로 가는 주가.."속타네"
KT가 최근의 성과를 내세우지 않는 이면에는 주식시장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결합판매 허용, 와이브로에 대한 정부지원, IPTV 서비스 시행에 대한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KT 주가는 약세를 면치 못했다. 지난해 말 4만9000원을 넘던 KT 주가는 굵직한 호재에도 아랑곳않고 내리막길을 걸어 불과 3개월만에 6000원 이상 떨어졌다.
보다못한 남중수 KT 사장은 현재의 주가가 지나치게 낮다며 KT 주식을 장내에서 사들이기까지 했다. KT는 남 사장의 장내매입 배경을 "지금의 주가가 전화, 초고속인터넷 등 안정적 수익원과 와이브로, IPTV 등 신사업 추진으로 기대되는 성장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관련기사: "주가 너무 낮다"..KT 임원진, 자사주매입 추진
그러나 주가하락의 원인 중 하나가 와이브로, IPTV 등 신사업에 대한 투자부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좋은 성과가 오히려 주가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KT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결국 주주들의 평가가 냉랭한 마당에 KT가 사업환경의 우호적 측면만 부각시키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