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발포 명령자 찾았다"

  • 등록 2005-07-03 오후 4:34:11

    수정 2005-07-03 오후 4:34:11

[조선일보 제공] 5·18 때 발포 명령 요청자와 발포 명령 계통은 이미 규명돼 있다.” “○○○씨가 발포 명령 요청을 상신했고, 발포 명령자는 ○○○씨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 이해동(李海東) 위원장이 지난 6월 14일 “5·18민주화운동은 군과거사 진상 조사대상에서 비켜갈 수 없을 것”이라며 5·18 발포책임자 규명에 나설 뜻을 밝히기 보름 전쯤 이런 증언을 들었다. 전직 국정원 간부 출신이 “아직 한번도 세상에 알려진 적이 없다”며 어렵게 입을 뗀 얘기였다고 한다. 얘기의 핵심은, 1980년 5·18 광주 민중항쟁 당시 발포명령체계를 규명한 진상보고서 형태의 대외비 백서를 노태우(盧泰愚) 정권 출범 초기인 1988년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가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백서에는 1995년 서울지검의 ‘5·18 및 12·12 사건’ 수사에서도 밝혀내지 못했던 광주 민중항쟁 당시 진압부대의 발포 명령 지시 계통과 발포 명령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조사 내용이 상세하게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백서는 1·2권으로 500여쪽에 달하며 모두 50부가 만들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진상조사에서 팀장을 맡았던 전직 국정원 간부 A씨는 최근 기자를 만나 17년 동안 비밀에 부쳐져온 소위 ‘5·18 백서’에 관한 진실을 털어놓았다. 기사에 실명을 싣지 말아달라는 A씨는 “1988년 노태우 정권 출범 직후 안기부 주도로 광주사태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기무사 경찰 등 정보·수사기관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반이 극비리에 사태 전개과정을 조사해 대외비 문서의 형태로 ‘광주사태 백서’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합동조사와 백서 제작에 간여했던 이 관계자는 “백서에는 육본 작전명령서 및 진압군 작전부대의 이동과정, 작전부대장 증언 등을 토대로 한 발포 명령 체계가 조사돼 있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에서 5·18 광주 민중항쟁 때의 발포 명령 체계를 조사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드러난 것이다. 당시만 해도 5·18이 민주화운동 또는 민중항쟁으로 규정되기 이전이어서, ‘광주사태’라는 5·18 당시 정부가 불렀던 명칭으로 통용되던 시기였다. 그래서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시절이 아닌, 6공의 노태우 정권에서 5·18 진상조사를 했다는 점은 아이러니한 대목이다. YS정권 때인 1995년 ‘5·18 특별법’에 따라 검찰은 ‘5·18 및 12·12 사건’ 수사에 나서 12·12 쿠데타 세력을 단죄했지만 광주 민중항쟁 당시의 발포책임자는 가려내지 못했다. 무려 30여만 쪽에 이르는 검찰 수사기록에도 ‘발포 명령’ 관련 부분은 어디에도 없다. 5·18 발포 명령 계통 및 발포 책임자, 정확한 사망자 수는 검찰수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었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검찰의 고위 관계자는 “(발포 명령자를) 밝혀보려 애썼지만 4·19 때와는 달리 발포 명령 체계가 전혀 안 밝혀졌다”면서 “현재까지 결론은 ‘자위권 발동’을 발포 명령으로 보는 것이고, 그 이전의 발포는 우발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백서의 내용은 이같은 검찰 조사 결과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전직 국정원 관계자 A씨는 “당시 조사 내용이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고됐지만 국회 광주청문특위가 열리기 직전, 발간 이틀 만에 폐기 지시가 내려와 한곳도 배포되지 않은 채 파기됐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정보기관의 조직특성상 한두 권은 남아있는 것이 분명한 만큼, 국정원과 국정원 과거사위 등이 진상을 조사해 백서를 공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당시 조사팀은 서울시내 주요 호텔에서 특전사령관 등 진압군 작전부대장 등을 극비리에 전부 불러 경위파악을 하고, 현장조사와 피해자 및 현장 증인 등의 구체적 증언까지 들었다”고 밝혔다. 이런 조사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백서는 발포 명령 요청 상신자와 발포 명령 하달자, 조준사격 지시자 등이 명확히 나와있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이 백서의 존재 여부조차도 알려진 적이 없고, 그 내용 또한 공개된 적이 없었다. 정동년 5·18 수사기록검증위원회 위원장은 “처음 듣는 얘기다”면서 “만약 사실이라면 광주 민중항쟁의 진행상황을 잘 알고 있고, 모든 정보를 수집하는 기관이 함께 참여해 만들었기 때문에 신뢰도가 상당히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내용 담겼나? 광주 민중항쟁 진상 보고서 형태의 ‘광주사태 백서’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고,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전직 국정원 간부 A씨는 “백서에는 육본 작전명령서와 분대 및 소대 단위의 진압군 작전일지와 이동과정, 발포가 이뤄진 경위 및 발포 명령 지시계통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고 말했다. 자위권 발동 차원의 발포가 아닌 조준사격이 이뤄지게 된 과정과 시위 초기에 진압군이 착검상태로 진압에 나서게 된 경위 등도 조사됐다고 한다. A씨는 “조사결과, 자위권 발동 차원의 발포는 추후 승인된 것에 불과하며 작전계통에 따른 발포 명령이 있었다”면서 “발포시에 시위대의 ‘하퇴부’를 사격하라는 지시 등은 조준사격 지시의 근거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내용은 검찰의 ‘5·18 및 12·12 사건’ 수사에서는 전혀 나오지 않은 대목이다. 특히 백서에는 시위대를 향한 헬기 기총소사 여부 및 소문으로만 떠돌았던 ‘여대생 대검 난자’와 ‘시위 진압과정에서 공수부대의 약물 복용’ 등에 대한 사실 여부를 가릴 수 있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또 전두환 전 대통령이 보안사령관이던 당시, 권력장악을 위해 보안사가 의도적으로 광주 민중항쟁을 일으켰는지에 대한 부분도 조사됐다. A씨는 “백서의 결론은 보안사의 의도적인 유발은 아니었으나 시위 진압과정에서 보안사와 군이 사태를 격화시킨 책임이 있다는 것으로 내려졌다”고 전했다. 그는 또 “사망자 수는 지금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면서 “당시 합동조사반이 밝힌 사망자 수는 민관군 모두 292명이었다”고 증언했다. 이는 정부가 공식발표한 사망자 154명보다 무려 138명이 더 많은 수다. 이에 대해 정동년 5·18 수사기록검증위원회 위원장은 “그 같은 백서가 공개만 된다면 발포 명령자 등 미궁에 빠진 부분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누가 왜 만들고, 왜 파기했나 전직 국정원 간부 A씨는 ‘광주사태 백서’의 탄생 배경에 대해 “노태우 정권 출범 직전 민화위가 가동되면서 광주시민의 명예회복 및 보상요구가 있었다”면서 “보상이 이뤄지려면 광주항쟁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할 필요가 있어 민화위의 보고서가 제출된 직후 조사가 진행됐다”고 말했다. 우발적 사태냐, 일정한 목적을 가진 시민저항이냐의 여부를 가리고, 진압군이 취한 행동의 정당성 여부 등에 대한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한 차원이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 노태우 정권 출범 직후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민화위를 실무적으로 뒷받침했던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는 “직선제로 대통령에 당선된 노태우 대통령이 득표율이 낮아 국민적 지지 및 정당성 확보를 위해 민화위를 만들었고, 민화위의 한 분과가 광주항쟁의 진상을 규명하는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노태우 정권이 5공 정권과의 차별성을 부각하고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권 출범 직전 민화위가 발족됐고, 정권 출범 이후 민화위 및 광주시민의 요구에 부응하려는 차원에서 ‘광주사태’의 진상이 조사됐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안기부장이었던 배명인 변호사와 1차장이던 이상연 전 내무부 장관은 “기억이 없다”거나 “백서건, 보고서건 만든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이런 정황으로 보아 문제의 백서는 노태우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비공식 라인에서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전직 국정원 간부 A씨는 “광주 청문특위 직전 ‘조사내용을 파기하라’는 지시가 내려와 이 백서는 빛을 보지 못했으며, 워낙 극비리에 진행돼 조사과정과 백서 작성 사실 자체를 알고 있는 사람도 손에 꼽을 정도다”라고 말했다. 광주청문특위에서 야당의 손에 이 백서가 들어갈 경우 역효과를 우려해 파기 지시가 내려진 것으로 추측된다. 노태우 대통령 등 12·12 쿠데타 세력에겐 워낙 민감한 내용들이어서 백서 제작의 의도와 달리 자칫 정치적 치명타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백서 찾아낼 수 있을까? 기자에게 백서의 존재 사실을 증언한 국정원의 전 간부 A씨 외에 복수의 국정원 전·현직 관계자도 “합동조사가 이뤄진 적이 있다”며 백서 제작 사실을 시인했다. 국정원의 한 현직 간부는 “1988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광주사태’를 국가적 차원에서 치유하겠다는 방침에 따라 안기부 내의 정식 조직 계선상은 아니지만 정보·수사기관 합동으로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광주사태의 진상을 조사한 뒤 보고서를 낸 적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광주사태 백서’가 남아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렸다. 증언을 한 전직 국정원 간부 A씨는 “어떤 형태로든 백서가 남아있을 확률은 100%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국정원이 공식입장을 밝힌 것은 아니지만 국정원 과거사위가 광주 민중항쟁 때의 발포명령체계를 규명하려는 노력을 한다면 백서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란 게 이 관계자의 얘기다. 설령 당시 안기부에서는 공식적으로 파기했다지만 조직 내부에서 개인이 몰래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국정원 현직 간부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안기부의 정식 조직 계선에서 만들어진 게 아닌 데다 정권이 몇 차례 교체되고 조직도 바뀌어 보고서가 남아있을 가능성은 낮다”고 전했다. 5·18 발포 책임자 규명 될까? 6공 출범 직후인 1988년 정부 차원에서 광주 민중항쟁의 사태 전개과정을 극비리에 조사한 사실이 처음 밝혀짐에 따라 향후 광주 민중항쟁 당시 발포 명령자 규명에 대한 목소리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해찬 국무총리는 지난 6월 7일 국회에서 “5·18 광주 민중항쟁은 발포 명령자가 밝혀지지 않아 귀책사유가 명확하지 않다”며 “피해를 온전히 밝히기 위해선 과거사진상규명 차원에서 분명한 사실관계가 확인될 필요가 있다”고 답변했다. 이후 일주일 뒤인 6월 14일 국방부 과거사위 이해동 위원장은 군 과거사 진상규명위 첫 전체회의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과거에 재판을 한 사건이지만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규명되지 않은 부분이 있고, 국민적 관심이 큰 만큼 심각히 고민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정부의 과거사 진상규명 차원에서 5·18 발포 책임자 등의 규명 작업이 진행될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 위원장은 “개인적으론 관련 당사자들이 양심고백을 하고, 국민이 이를 용서하는 수순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실체적 사실관계 확인을 통한 접근보다는 개인의 양심고백을 통한 진상규명을 고려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5·18 발포 책임자 진상 규명은 결코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당시 작전명령서와 진압부대 이동과정 등을 담은 작전일지가 남아있는지 여부조차도 불투명하다. 지금까지 발포 책임자가 미궁에 빠져있었던 점으로 미뤄 이미 폐기됐을 가능성이 크다. 또 5·18 검찰수사 때 수많은 12·12 및 5·18 관련자들이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으면서도 규명되지 않았다면, 세월이 흘렀다고는 하나 관련자들이 순순히 고백을 한다고 볼 수도 없는 상황이다. 5·18 관련 시민단체들이 국방부 과거사위 진상규명을 회의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도 이런 점을 의식해서다. 그동안 ‘5·18 청문회’와 5·18 검찰수사도 발포 명령자를 속시원히 밝히지 못한 상황에서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진상규명에 섣불리 손을 댔다가는 오히려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 가능성을 염려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6공 때 안기부 주도로 합동조사를 했었다”는 증언 내용을 전해들은 5·18 관련 단체들은 안기부의 ‘광주사태 백서’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5·18 수사기록검증위 정동년 위원장은 “국정원에 정식 요청을 해보겠다”고 했다. 5·18 기념재단 조진태 사무처장은 “그런 백서가 있다면 찾아낼 경우 5·18 발포 책임자 규명에 큰 진전이 있을 수 있다”면서 “반드시 공개돼야 하고, 공개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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