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끈한 온돌이 가진 뜻밖의 이력 [물에 관한 알쓸신잡]

한국의 전통 온돌이 현대화되기까지
  • 등록 2022-05-21 오전 11:30:00

    수정 2022-05-21 오전 11:30:00

[최종수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우리나라 전통가옥은 왜 2층 이상의 건물이 없고 단층만 있을까요? 부잣집 99칸 저택도 전부 단층 가옥이고 2층 건물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혹시 2층 이상의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기술력이 부족했던 건 아닐까요? 그런 이유는 아닌 듯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거주하는 가옥을 제외하면 2층 이상의 건축물이 많기 때문이죠.

누각이나 정자는 물론이고 현존하는 법주사 팔상전도 5층이고 현존하지는 않지만 기록으로 남아있는 9층 이상의 목탑도 많습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2층 이상의 건축물을 지을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왜 우리 조상들은 단층 가옥만 지었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난방시설인 온돌 때문입니다.

혹독하게 추운 겨울을 지내려면 난방이 필수적입니다. 전통적인 온돌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방바닥에 많은 돌을 깔아 고래와 구들장을 만들어야 하고 불을 때는 아궁이도 만들어야 하는데 목조 건물에 설치하기에는 무게와 화재 위험 때문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2층 한옥 건물이 간혹 있었지만 난방시설이 없는 2층은 여름철에만 주거 공간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기간은 창고 등의 용도로 쓰였습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온돌문화를 가지고 있던 중국도 가옥은 2층 건물이 거의 없습니다. 그에 비해 난방방식이 달랐던 일본은 2층짜리 전통가옥이 많습니다.

일본 전통가옥은 바닥 난방을 하지 않고 이로리라고 하는 일종의 화덕을 다다미방 가운데 놓아 난방을 하는데 층에 관계없이 설치가 가능했기 때문에 2층을 주거공간으로 쓸 수 있었습니다.

유럽의 고풍스러운 거리 풍경을 보면 3층 내외의 중층 가옥이 많은데 유럽도 벽난로로 난방을 하는 가옥이라 층수에 제약을 받지 않았습니다.

온돌은 아궁이의 열을 구들장에 축적한 다음 데워진 바닥이 복사열에 의해 방안 전체를 고르게 따뜻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이에 비해 일본의 화덕과 서양의 벽난로는 공기를 따뜻하게 하는 대류 방식이라 바닥을 데우고 열을 축적하는 기능은 약합니다.

바닥을 따뜻하게 하는 난방 방식이 북유럽 등지에서도 사용된 흔적이 있으나 현재까지 난방방식으로 적용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우리나라는 바닥이 따뜻하기 때문에 앉아서 생활하는 좌식문화가 발달했고 나아가 바닥에 누워서 ‘지지는’ 걸 최고의 휴식과 수면법으로 여겼습니다.

피곤할 때 뜨끈한 바닥에 몸을 ‘지지고’ 나면 한결 개운해지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문화는 우리만의 독특한 찜질방 문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따뜻한 방바닥의 매력은 온돌을 처음 접하는 외국인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당시 외국선수들이 선수촌의 온돌바닥에 누워 몸을 ‘지지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온돌은 우리나라 고유의 난방방식으로 자리매김했고 영어로도 우리 발음 그대로 ‘Ondol’로 표기합니다. 김치의 영어표기가 ‘Kimchi’인 것처럼 우리나라가 온돌 문화의 종주국이라는 사실을 세계가 인정하고 있는 셈입니다.

무게와 화재 위험 때문에 2층 건물에도 설치하기 힘들었던 온돌이 어떻게 수십 층의 고층 건물에 설치될 수 있었을까요? 온돌이 고층 건물에 설치되기 위해서는 무거운 고래와 구들장, 그리고 화재 위험이 있는 아궁이가 없어야 합니다.

이 고민을 해결한 것이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온수 보일러 방식의 온돌입니다. 바닥을 데우는 고래와 구들장은 온수 파이프가 대신하고 불을 때는 아궁이 대신 보일러가 물을 데웁니다.

열원과 열을 전달하는 방식만 다를 뿐 바닥을 데우는 온돌의 난방방식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전통적인 온돌이 지금처럼 개선되는 데는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건축가의 공이 컸습니다.

미국 건축가가 우리나라 전통 구들장 온돌을 지금의 온수 온돌로 개선한 과정에는 안타깝게도 일제 강점기의 아픔이 있습니다.

1917년 일본은 도쿄에 제국호텔을 짓기로 하고 당시 세계 최고의 건축가였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에게 설계를 의뢰합니다. 라이트는 설계를 위해 일본의 한 부호의 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추운 날씨와 변변치 않은 일본의 난방에 적응하지 못해 고생합니다.

이를 눈치 챈 집주인이 그를 ‘한국식 방’이라는 온돌방으로 안내하는데 그는 방의 따뜻함과 안락함에 깊은 인상을 받습니다.

온돌의 구조. (이미지=최종수 박사)


라이트는 그 방의 난방방식이 한국의 온돌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후 온수 보일러 방식의 온돌을 개발해 그가 설계하는 여러 건축물에 온돌을 적용합니다.

라이트에게 한국식 온돌방을 안내했던 일본 부호는 당시 일본의 거상이었던 오쿠라 키하치로(大倉喜八郞, 1837~1928)입니다. 그는 일제 강점기 시절 무기 거래, 고리 대금업 등으로 거부가 된 뒤 엄청난 양의 우리나라 문화재를 일본으로 가져갑니다.

일본으로 가져간 문화재 중에는 경복궁 전각을 헐어낼 때 철거된 자선당이라는 건물도 있었습니다. 자선당은 조선시대 세자와 세자빈이 머무는 처소였습니다.

건물의 철거작업을 맡았던 오쿠라는 이 건물 자재를 일본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가져가 ‘조선관(朝鮮館)’이라는 별채를 만듭니다. 이 조선관이 바로 건축가 라이트에게 온돌에 대한 깊은 인상을 줬던 ‘한국식 방’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의 문화재 수탈과정을 거쳐 파란 눈의 외국인에 의해 온수 보일러로 재탄생한 온돌은 1962년 국내 최초의 단지식 아파트인 서울 마포아파트의 난방시설로 화려하게 복귀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가정용 보일러가 도입된 마포아파트는 연탄을 이용하여 물을 데우는 온수 보일러를 설치했습니다. 연탄보일러에서 데워진 물이 방바닥에 깔린 파이프를 따라 돌면서 방바닥을 따뜻하게 했지요.

이후 온돌은 열원을 연탄에서 석유, 가스로 바꾸고 온수 대신 전기열선을 바닥에 까는 방식으로 개선되었지만 바닥을 데워서 ‘지지는’ 온돌문화의 원형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최종수 연구위원(박사·기술사)은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University of Utah Visiting Professor △국회물포럼 물순환위원회 위원 △환경부 자문위원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자문위원 △대전광역시 물순환위원회 위원 △한국물환경학회 이사 △한국방재학회 이사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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