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성의 금융CAST]인플레는 금리를 어떻게 자극했나

경기 회복 분위기에 넘치는 통화량, 자칫 인플레 자극
통화량 급증에 따른 인플레 우려, 장기채 금리에 반영
시장금리 상승, 돈의 움직임 시작점 될 수 있어
부자들과 금융사들은 이미 '대비하고 있다'
  • 등록 2021-04-24 오전 11:00:35

    수정 2021-04-27 오후 9:55:28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올해 들어 시장금리 상승이 눈에 띄었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시장 통화량 증가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 보도가 나오더니 장기채(만기가 긴 채권)를 중심으로 금리 상승 뉴스가 나왔습니다.

이미지투데이
장기채 금리를 중심으로 꾸준하게 올라가면서 ‘혹여 기준금리가 인상되는 게 아닌가’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나 한국의 한국은행 같은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기관은 펄쩍 뜁니다. ‘연내 기준금리 인상은 없다’고.

오를 만큼 오른 것인지, 중앙은행의 달래기가 통한 것인지 최근에는 많이 진정된 모습입니다. 단기채(만기가 짧은 채권. 주로 급전 수요) 금리도 약간은 떨어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만 안심하긴 이른 것 같습니다. 시장 참여자들의 불안 심리는 언제든 튀어 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기 시장 가격 결정은 ‘수요와 공급’이라는 전통적이면서 얌전한 메커니즘보다는 ‘불안심리’가 더 크게 영향을 미치는 듯 합니다.)

인플레이션 유발 주요 포인트, ‘통화량’

조심스럽지만 ‘인플레이션은 물가 상승을 의미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물가 상승이 장기채 금리를 자극한 것입니다. 어쩌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논쟁이 될 수 있지만, 그래도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자면...

인플레이션은 달리보면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지난해 빵 한 개를 100원 주고 샀는데, 올해 120원 주고 사야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구매자는 “빵값이 20%나 올랐네”라고 하겠지만, 또 다른 말로 “돈 가치가 20%나 떨어졌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은 빵(물론 해마다 생산량이 다르지만)을 사는데 더 많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돈의 가치는 왜 떨어지는 것일까요?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는 환율과 수입물가 등 여러가지 물가를 끌어올리는 요소가 많습니다만, 가장 주요한 변수로 ‘통화량’을 들 수 있습니다. 시장에서 유통되는 돈의 양입니다.

사과 100개를 생산하는 제한된 동네에 1만원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과수원 아저씨가 열심히 생산해 올해는 사과를 110개 생산했습니다. 그런데 동네 주민들이 올해는 돈을 잘 벌었고, 동네에 2만원이라는 돈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재화는 10% 늘었는데, 이 재화를 사기 위해 교환하는 통화는 100% 늘어난 것입니다.

단순히 계산하면 100원이었던 사과값이 181원(2만원/110개)원이 됩니다. 그전보다 81% 더 많은 돈을 부담해야하는 꼴이 됩니다. 돈의 가치가 81% 떨어진 것입니다.

이런 급격한 물가상승률은 소득이 일정한 봉급생활자에게 치명적입니다. 소득 증가는 일정한데, 살 수 있는 물건의 값은 치솟으니까요.

정부에서는 이를 잘 알기 때문에 물가 안정에 전력을 기울입니다. 돈을 찍어내는 권한이 있는 중앙은행도 함부로 통화량을 늘리지 않는 것도, 이런 돈의 가치 유지(바꿔 말하면 물가 안정)에 목적이 있습니다.

코로나19로 급격히 늘어난 통화량

그런데 최근 수년간 유지됐던 저성장 기조에 지난해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쳤습니다. 가뜩이나 ‘경기 없다’고 불평하던 차에 코로나19라는 거대한 파고를 만난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가지 않으니 돈을 안 쓰게 되고, 자영업자를 비롯해 기업들이 돈을 벌지 못하게 됩니다. 은행이나 채권자들은 주머니를 닫습니다. 빌려준 돈도 다시 받으려고 합니다. 돈을 떼일 수 있다는 걱정을 했던 것입니다.

돈 빌리기 힘들어지니까 금리가 치솟습니다. 급전 수요를 반영하는 단기채 금리가 이를 반영하죠. 멀쩡한 기업도 재료비에 인건비에 고정적으로 내야하는 돈이 있는데, 돈길이 막히면 망할 수 있습니다. 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월급을 못 받으니 돈을 더 안 씁니다. 최악의 경제 위기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때 정부와 중앙은행이 나선 것입니다. 돈의 공급자로 말이지요. 중앙은행은 이자율을 낮춰서 은행들이 적은 금리로도 대출을 해줄 수게 해줍니다. 그래서 재난지원금을 뿌리고 긴급대출을 해줍니다.

(정부 빚이 급격하게 늘었다고 혹자는 비난을 합니다. 재난지원금을 놓고 포퓰리즘이라고까지 하는데, 이 선택은 누구도 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덕분에 치솟던 시장금리는 떨어지고 안정을 찾게 됩니다. 대출이 예전보다 쉬워지면서 부동산과 주식시장에 돈이 몰립니다.

하루하루 살기 힘든 월급생활자는 대출받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지만, 부자들은 손쉽게 돈을 빌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싸게 대출을 받아 부동산과 주식을 늘릴 기회니 부지런히 이들 자산을 매수합니다. 부동산 가격이 뛰어 오르게 됩니다. ‘주식으로 돈벌었다’라는 입소문에 주식시장에 유입되는 돈의 양도 늘어납니다.

(정부의 부동산 가격 억제 정책, 신용대출 억제 정책이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크게는 돈을 푸는 정책을 쓰면서, 개별적으로는 돈을 조이려해서 그렇습니다.)

돈의 힘으로 찾은 안정, 인플레이션 우려의 부상

긴급해서 돈의 양을 불려 놓았습니다. 경제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해 각 나라에서 백신이 보급되고 있습니다. 사람들도 작년만큼 코로나19를 두려워하지 않게 됐습니다. 하루 확진자가 700명이라고는 하지만, 확실히 무뎌진 것이지요.

경제는 안정을 찾아가는데, 돈의 양은 늘어난 체 그대로입니다. 아까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재화와 서비스의 양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는데, 돈의 양이 늘었다면?

돈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인플레이션을 의미합니다. 인플레이션은 일반 국민들에게 물가 상승으로 다가옵니다. 물가가 오르면 국민들의 생활고는 커집니다.

물가 상승의 걱정은 정부와 중앙은행만 하는 게 아닙니다. 장기채를 사 놓는 연기금 같은 기관 투자자(장기보유자)들도 합니다. 돈의 가치 하락은 원금의 하락을 뜻합니다. 100억원짜리 채권의 가치가 매해 2% 이상씩 떨어진다면, 그에 상응하는 금리를 요구할 것입니다. 최소한 2% 이상은 돼야 손해를 안 봅니다.

따라서 장기채 금리의 상승은 이들 투자자들의 인플레이션 우려가 담긴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관에서 전문적으로 큰 돈을 다루는 경제 엘리트의 시각이 담겼다고도 해석할 수도 있겠네요.

두번째는 채권 발행자의 입장입니다. 장기채는 ‘투자 목돈 수요’와 맞물려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집을 산다고 생각해보세요. 목돈을 들여 집에 투자하는 것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를 장기간 쪼개서 갚아 나가는 것이지요.

즉,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아지면서 ‘이젠 투자해도 되겠다’라는 기업들의 수요가 늘어난 것입니다. 기업들이 투자를 하기 위해 내부 유보금에서 돈을 마련할 수도 있지만, 장기채를 발행하기도 합니다.

(달리보면 장기간 꾸준하게 돈을 갚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자기 확신이 있으니까, 목돈을 장기채로 빌리는 것일 수도 있네요)

장기채를 발행하겠다는 플레이어들이 늘고 장기채 양도 늘어납니다. 투자자는 한정돼 있는데 장기채 양이 늘게 되면, 투자자는 더 많은 금리를 받아야(발행자는 더 많은 금리를 줘야) 합니다. 금리가 올라가는 것이지요.

결정적인 변수일 수 있는데, 정부가 돈을 푸는 정책을 쓰는 데 있습니다. 평소보다 더 많은 돈을 써야하는데, 갑자기 국민들에게 세금을 높여 받기 힘듭니다. 그러면 국채를 발행합니다.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입니다.

올해 예상되는 국채 발행한도가 176조이고 이중 적자국채가 94조원 가량 됩니다. 국채는 정부채권이란 점에서 우량한 채권이라고 불리는데, 이들 장기채의 양이 늘어나게 되면, 금리는 떨어지기보다 오르기 마련입니다. (반대로 채권 가격은 떨어집니다. 채권 수량이 많아지니까)

경기회복의 신호로 보면 안심일까

따라서 최근의 장기채 금리 상승은 경기 회복의 징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경기가 나아지니까, 잠재돼 있던 ‘통화량 걱정’이 밀어 올라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긍정적 신호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경기회복→물가상승→통화량 증가에 따른 인플레이션 걱정↑→장기채를 중심으로 금리 상승’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할 부분은 인플레이션입니다. 2019년과 비교했을 때 2020년 시중 유동성으로 분류될 수 있는 통화량(M1 협의통화)는 20% 가까이 늘어 있습니다. 우리 경제 규모가 그만큼 커져 있지 않으면, 넘치는 통화는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부분에서 시장 플레이어들은 기준금리 인상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중앙은행은 ‘안하겠다’고 단언했지만 원칙론일뿐 실제 실행계획은 아닙니다. 혹여 인플레이션 걱정이 커지면 개입이 커질 수 있습니다.

물론 누군가는 인플레이션이 디플레이션보다 더 났다라는 의견을 내기도 합니다. 인플레이션은 기준금리 인상 등 특단의 조치로 잠재울 수 있지만, 디플레이션은 제아무리 케인즈의 할아버지가 와도 해결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돈의 흐름은 이미 인플레이션을 반영하고 있다

한가지 재미난 것은 시중은행 요구불 예금입니다. 이른바 현금성 투자수요입니다. 이를 보고 돈의 움직임을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우선은 2020년 2월 5대 요구불예금 추이가 코로나 전달보다 크게 늘었다는 점입니다. 보통 1월에 줄었다가 2월에 늘어나는데, 2020년 2월은 유독 이 경향이 더 컸습니다.

무슨 말이냐, 돈이 있는 사람들은 이미 2019년말부터 주식 시장 하강을 예상하고 미리 옮겨놓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2월달에 요구불예금과 MMDA가 거의 역대급으로 증가했습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2019년 2월 시중 5대 은행 요구불예금 증가치는 전달 대비 1.41%였습니다. 2020년 2월 이 돈의 양이 5.45% 증가했어요. 한 25조원 가량 늘어난 것입니다.

2019년 10월에 이미 장기채 금리와 단기채 금리가 역전되면서 불황의 신호가 왔었고, 이에 따라서 독일국채 등 안전 자산으로 꼽히는 자산에 대한 가격이 높아지면서, 독일국채 금리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갔죠. 시장에서는 하락장을 예상한 것입니다.

올해도 양상은 다르지만, 일부 돈의 움직임이 바뀐 게 눈에 보이긴 합니다. 올해 2월도 요구불 예금이 증가했고, 3월도 만만치 않게 늘었습니다. 요구불예금이 늘면서 주식 시장은 박스권에 머물렀죠.

그리고 주식시장의 투자자들은 이미 금리 상승, 통화량 증가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염두에 두고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바로 홀대받던 금융주가 재부각되고 있는 것입니다.

금리가 상승하던 2월 이후 4월 중순까지 KB금융의 주가 상승률이 31%입니다. 하나금융이 25% 상승했고, 신한도 20% 늘었습니다. DGB금융이나 BNK금융같은 지방금융지주사들도 일제히 20%를 상회했어요.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률이 7%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높은 상승률입니다. 보통 금리가 상승하면 은행들의 이자 수익이 늘고 이에 따라서 은행이 버는 돈이 늘어납니다. 은행이 버는 돈이 늘면 배당이 늘고, 이는 은행의 주가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1분기 은행들의 실적 잔치, ‘인플레이션’에서 기인

주식시장 호황이 계속 되는 가운데, 장기채 금리는 상승하고 있습니다. 반면 경기는 안정을 찾고 있어 단기채 금리는 안정적인 모습입니다. 오히려 일부는 떨어지기도 합니다.

은행들, 정확히는 은행을 품은 금융지주가 올해 1분기 실적 잔치를 벌인 배경에는 주식시장 호황, 장기채 금리 상승, 단기채 금리 하락 등에 있습니다. 올해 1분기만큼 금융지주들이 돈벌기 좋은 때도 없었을 것입니다.

무슨 이유냐, 인플레이션 예상에 따라 장기채 금리가 상승합니다. 이런 장기채 금리 상승은 은행들의 대출 금리와 어느정도 얽혀 있습닌다. 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등이 10년 혹은 20년 이상 장기물이 많아서입니다. 은행들의 장기대출 금리가 오를 개연성이 높은 것입니다.

단기채는 제자리거나 떨어졌는데, 이건 예금 금리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입니다. 단기채는 급전 수요가 강한데, 요새 은행들은 급전 수요가 덜합니다. 시장의 풍부한 돈의 양 덕분입니다.

따라서 장기 대출 금리는 올라가는데, 단기 예금 금리는 떨어집니다. 예금과 단기 은행채에서 조달한 돈을 장기 대출을 해주는 은행 입장에서는 마진 폭이 커집니다. 실제 은행들의 이 마진 폭은 최근 2~3년을 두고 봤을 때 가장 크게 늘었습니다. 모 은행의 경우 한 분기 사이 5bp 늘었습니다. 만약 기준금리가 인상된다면 이 폭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5bp는 0.05%p를 뜻합니다. 1.5% 금리에서 0.05%p 늘었다면 적지 않은 양입니다.)

앞으로 일어날 물가 상승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할까요? 경기회복의 신호일지, 본격적인 통화량 흡수 정책의 시작일지.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시장은 우리의 예상을 빗나가곤 한다는 점입니다. 결정적 요소는 바로 불안심리입니다. ‘기준금리 올해내 안올리겠다’ 원칙은 그 앞에서 깨지기 쉬운 유리잔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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