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정책의 '선의'가 시장을 왜곡한다

  • 등록 2020-06-30 오전 6:45:00

    수정 2020-06-30 오전 6:45:00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1980년대 후반 서울의 집값은 자고 나면 올랐다. 집값이 오르자 집주인들은 전셋값도 마음대로 인상하기 시작했다. 당시 건설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1986년 말부터 1990년 2월까지 3년2개월 동안 전국 도시지역의 주택 매매가격은 평균 47.3% 상승했고 전셋값은 이보다 34.9%포인트 높은 82.2%나 올랐다.

전셋값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노태우 정부는 집주인의 전횡을 막기 위해 주택임대차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리는 법 개정을 추진했다. 국회를 통과한 주택임대차보호법은 1989년 12월 30일을 기점으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비극이었다. 2년 동안 전셋값을 올리지 못하게 하자 집주인들이 한꺼번에 전셋값을 올렸기 때문이다. 당시 전셋값 파동으로 1990년 봄 세입자 열 댓명이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6월 17일 출범 후 21번째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박선호 국토부 1차관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대책이 스무 번 남짓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정권 출범 후 서울과 수도권의 아파트 가격이 은행이자의 몇 배 이상 오른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 주공아파트 단지 인근 공인중개업소에 붙어 있는 전월세 현황(사진=김용운 기자)
특히 이번 6·17 대책에서 염려되는 점은 현재 전세시장 상황과 대책에 따른 부작용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5일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주간아파트 가격동향(6월22일 기준)을 보면 지난해 7월 첫째 주 이후 서울의 아파트 전셋값은 52주 연속 상승세를 나타냈다. 전세수급 상황을 보여주는 KB국민은행의 전세수급지수에서 서울은 이달 넷째 주(6월22일 기준) 174를 기록했다. 지난해 7월 130선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수급지수 상승세도 가파르다. 전세수급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100을 넘어설수록 전세시장이 불안하다는 것을 뜻한다.

전세수급에 기여하는 신규 아파트 입주물량도 서울은 부족하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은 지난해와 올해 매년 4만 가구를 넘어섰다. 하지만 내년과 후년에는 입주물량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이런 현실에서 6·17대책은 전셋값을 다시 한번 들쑤실 가능성이 커졌다. 6·17 대책으로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 분양권을 받기 위해서는 2년 이상 실거주해야 한다. 집주인들이 실거주를 위해 재건축 아파트에 들어오면 이에 따른 연쇄반응으로 전세시장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저금리와 보유세 강화로 집주인들은 전세를 반전세나 월세로 돌리고 있다.

돌이켜 보면 1990년 정부의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시행의 배경에는 무주택 세입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선의’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정부의 선의와 무관하게 부동산 시장이 움직였고 커다란 부작용을 야기했다.

결국 6·17대책도 서울에서 전세살이하는 서민들의 주거부담과 불안을 가중시킬 확률이 높다. 집값을 잡겠다는 선의로 내놓은 대책이 오히려 전세시장의 반작용과 불안전성을 키울 수 있어서다. ‘선의’로 약을 조제했다 한들 병에 대한 치료 효과보다 부작용이 크면 환자는 의료진을 신뢰하기 어렵다. 이번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미덥지 못한 근본적인 원인이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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