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는 신약개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는 일들이고 오히려 그만큼 신약개발에 공을 들였다는 반증으로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 시각도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탐낼만한 다양한 기술을 보유할 정도로 국내 제약업계의 연구개발 역량이 크게 높아졌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1999년 첫 기술수출 이후 누적 건수 62건
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제약업계의 기술수출은 1999년 동아제약이 비마약성 진통제 기술을 미국 스티펠社에 175억원에 이전하면서 시작됐다. 2016년 말 현재 누적기준으로 외국 제약사에 수출한 신약이나 후보물질 건수는 모두 62건이다.
기술수출이 본격화된 것은 2010년 이후이다. 실제 전체 기술수출의 75%(48건)가 2011년 이후에 체결됐다. 국내 제약사들이 복제약 출혈경쟁, 리베이트 등으로는 더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연구·개발(R&D)에 본격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한 시점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한 제약사 간부는 “약가인하, 리베이트 쌍벌제, 투아웃제 등 각종 규제책이 나오면서 기존 방식으로는 더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됐다”며 “처음에는 ‘우리가 과연 할 수 있겠어?’라는 의구심이 있었지만 7~8년 동안 R&D에 꾸준히 투자해 하나 둘 결실을 맺기 시작하면서 결정이 옳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수출은 말 그대로 연구단계에 있는 신약 후보물질의 개발 권리를 파는 것이다.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우리나라 제약사의 원료의약품, 완제의약품, 의약외품 등 제약관련 수출액은 32억3163만 달러(약 3조8650억원)로 같은 기간 기술수출 계약액(8조3000억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공장설비가 필요 없으니 그만큼 부가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후보물질을 시작으로 여러 단계의 임상시험을 거쳐 신약을 만들어 수출하면 훨씬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다. 길리어드는 C형간염치료제 하보니·소발디만으로 2015년 전세계에서 191억4000만 달러(약22조원)의 매출을 올리며 단숨에 글로벌 제약사 톱 10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수조원의 연구개발비와 10여년의 기간이 필요하다.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다 임상시험에서 뜻하지 않은 심각한 부작용이 보고되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만다. 이런 높은 사업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아직 자본력이 약한 국내 제약업계로서는 기술수출에 주력할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신약개발의 전 과정을 국내 제약사가 맡기에는 성공에 대한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에 후보물질 단계에서 수출을 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길리어드의 경우도 초기에는 신약 후모불질을 기술이전하면서 올린 이익을 다시 연구개발에 투자하면서 역량을 키웠다. 독감치료제 타미플루의 경우 다국적 제약사인 로슈가 길리어드로부터 개발단계에서 판권을 사들여 세계적인 약으로 개발했다.
◇숨어 있는 1인치 ‘마일스톤’
기술수출 계약은 보통 초기 계약금과 임상시험이 진행됨에 따라 발생하는 단계별 기술료(마일스톤), 최종 상용화 이후 발생하는 판매 로열티로 구성된다. 계약 체결 때 공개되는 것은 대부분 계약금과 마일스톤으로 판매 로열티는 비밀로 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연말 동아에스티(170900)가 애브비에 기술수출한 면역항암제 MerTK저해제의 경우 계약금이 4000만 달러(약 480억원)에 마일스톤이 5억2500만 달러(약 6340억원) 규모다.
계약금은 당장 매출로 잡히지만 마일스톤은 임상시험 종료 시점까지 10여년에 걸쳐 매출이 발생할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임상시험에 실패한다면 한 푼도 못 받을 수 있는, 엄밀히 말하면 ‘성공에 대한 희망 보수’인 셈이다. 지난해 임상시험 중단, 기술수출 계약해지 등을 경험했던 한미약품은 임성기 회장 스스로가 신뢰 훼손의 원인 중 하나로 마일스톤에 대한 명확한 의미전달 실패를 꼽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국제약협회 관계자는 “기술수출 금액은 최종 상용화까지 성공적으로 끝났을 때 제약사가 손에 쥘 수 있는 금액”이라며 “맹목적인 기대감보다는 신약개발과 계약을 둘러싼 특징들을 냉정하고 명확하게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