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당극 ‘허생전’(사진=서울남산국악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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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조선 팔도를 평등하게 만들어보자구요. 위아래가 없는 세상!” 도둑 무리를 이끌고 무인도로 가서 그들만의 나라 ‘율도국’을 세운 허생. 희망을 꿈꾸며 국악연주에 맞춰 신명나는 춤판이 벌어졌다. 도둑 무리 중 한 명은 관객석을 향해 “아이 세이 변화가, 유 세이 필요해”라며 현대식 랩도 선보인다. 가무락희가 어우러진 마당극 ‘허생전’의 한 장면이다.
연암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이 현대판 마당극으로 탄생했다. ‘허생전’은 1981년 서울시가무단(현 서울시뮤지컬단)에 의해 마당놀이 ‘허생전’으로 선보인 바 있는 작품. 마당극의 창시자로 불리는 채희완 예술감독과 남기성 연출가에 의해 32년 만에 새 옷을 입었다. “소설 ‘허생전’의 주제의식은 가지고 가면서 편하게 놀 수 있는 무대를 만들었다”는 게 남 연출의 설명이다.
마당극 ‘허생전’은 18세기 불후의 문장가 연암 박지원의 ‘실사구시’ ‘이용후생’에 기반한 실학사상을 오늘의 시대정신과 맞물려 새롭게 조명했다. 소설은 북벌론이나 예송논쟁을 일삼으며 현실과 동떨어진 이념에 사로잡혀 민생을 등한시했던 당대의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았다. 이러한 원작의 정신은 마당극 특유의 신나는 춤사위와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연주, 재담 등으로 펼쳐진다. “살림하듯이 나랏일 해봐. 그럼 다 해결될 거야.” 오늘날 명분 없는 정쟁을 일삼으며 우리네 살림살이를 어렵게 만드는 정치지도자와 기업가들에 대한 뼈아픈 일침도 전한다.
배우와 관객이 함께 어우러지는 열린 무대로 꾸몄다. 극 중 허생을 잡기 위해 무대 뒤에서 등장하는 포졸들은 객석을 놀음판으로 설정, 그 안에 숨어 있을지 모를 허생을 찾아 나선다. “혹시 (허생을) 숨겨주면 임의동행 해야 합니다.” 관객 중 한 사람은 김 대감이 되기도 한다. “아이고, 대감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포졸들이 자연스럽게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동안 한쪽에서는 허생을 찾으러 온 도둑 무리가 무대 뒤에서 등장한다.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더니” “야 이걸 그냥. 확그냥 막그냥 여기저기 막그냥” “빠름~빠름~” 등 유머스러운 현대의 대사들을 곳곳에 배치했다. 남 연출은 “기존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자 했던 허생의 모습을 유쾌하게 담아냈다”며 “허생의 삶을 통해 현재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29일까지 서울 필동 서울남산국악당. 02-2261-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