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숨통마다 시멘트 괴물… “저게 댐이지 어째 보예요”

골재 노조원·농민 ‘낙동강 700리 뗏목 대장정’ 동행 르포
  • 등록 2010-09-16 오전 8:39:59

    수정 2010-09-16 오전 8:39:59

[경향닷컴 제공] “하루하루 살길이 막막하네요. 낙동강도, 우리들의 삶도 모두 망가졌습니다.”

15일 오전 10시 낙동강변인 대구 달성군 화원읍 화원유원지 앞.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일자리를 잃은 강한원씨(46)는 굳은 표정으로 정박된 뗏목의 로프 등을 점검하며 출항을 서둘렀다. 강씨는 이날 대구·경북 지역 골재원노조와 전국농민회 경북도연맹 회원과 함께 4대강 사업 반대를 위한 ‘낙동강 700리 뗏목 대장정’에 나섰다.

▲ 달성보를 지나…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며 ‘낙동강 700리 뗏목 대장정’에 나선 대구·경북골재노조원들이 낙동강 달성보 부근을 지나고 있다. 대장정에는 경향신문 취재팀도 동행했다. 지난 13일 삼강 주막 앞을 출발한 뗏목은 16일 오후 낙동강 하구에 도착한다.

◇ “이젠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요” = 18년간 낙동강에서 골재노동자로 일해온 강씨는 4대강 사업으로 8개월째 실직자로 지내고 있다. 사실상 해직 상태다. 일자리를 빼앗아 가족의 생계를 위협하고, 하천을 죽이는 4대강 사업을 가만히 앉아서 볼 수만은 없어 행동으로 나섰다고 한다.

“어머니(72)와 아내,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이날 대장정에는 생존권을 박탈당한 노동자와 농민 등 30여명이 참여했다. 절반은 뗏목을 통해 강에서 반대시위를 벌이고 나머지 절반은 육로로 이동하며 동참했다.

오전 10시10분쯤, ‘4대강 사업은 환경대재앙’이라고 쓰여진 조끼를 입은 노동자 10여명이 뗏목에 올랐다. 지난 13일 낙동강 삼강주막 앞을 출발한 뗏목은 이날 대구 화원 유원지에서 경남 함안보까지 91㎞를 떠갈 작정이다.

가로 4m, 세로 5m의 뗏목은 대형 드럼통 20개를 깔고 그 위에 합판을 얹어 만들었다. 뗏목 사방에는 ‘4대강 삽질 중단하라. 낙동강은 살아있다. 노동자 농어민 생존권 보장하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으로 둘렀다.

“강물이 나날이 혼탁해지고 있어요. 이젠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요.”

골재노조원 김인국씨(45)는 “수질을 오염시키고 노동자·농민들의 생존권을 빼앗는 이 사업을 무엇 때문에 하는지 모르겠다”며 흥분했다.

뗏목 위는 금세 4대강 사업의 성토장으로 변했다.

“오염된 준설토를 농지에 무더기로 쌓아놓아 땅이 썩어들어가고 있어요. 오염된 땅에서 자란 농작물이 싱싱할 수가 있겠습니까.”(여노연씨·성주군 농민회 사무국장)

“요즘 채소값이 왜 폭등하는지 아십니까. 4대강 사업으로 하천둔치 주변 농지가 잠식되면서 채소밭이 대거 사라졌기 때문이죠. 도시민들이 그런 걸 제대로 알아야 하는데….”(성희억씨·골재노조원)

◇ “운하를 지나는 기분입니다” = 30분쯤 지났을까. 찌꺼기를 걸러내야 할 오탁방지막이 제 기능을 잃은 채 한쪽에 방치돼 강 풍경을 어지럽혔다. 그러나 아직 준설이 안된 오른편 고령 다산면 쪽은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버드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왜가리가 노니는 등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뗏목이 달성군 논공 방면 둔치에 다다르자 덤프트럭, 굴착기 등이 굉음을 내면서 분주히 움직였다. 모래를 파내느라 군데군데 버드나무가 뿌리째 뽑혀 신음하고 있었다.

“이제 곧 저 버들숲도 사라지고 콘크리트 벽이 쳐지겠죠.”

골재노조원 김재영씨는 “어릴 적 맑은 버들숲에서 메기 잡던 추억은 이제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강 줄기 군데군데에는 민간업체의 골재채취 장비가 흉물스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녹슨 준설선·선별기·쇠파이프·부력기 등이 덩그렇게 강 가운데 떠 있었다. 포클레인의 삽날이 닿지 않은 우측은 버드나무·참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기암괴석에서 힘겹게 자란 푸른 소나무 사이로 왜가리 한 마리가 한 폭의 그림을 그려냈다.

◇ “살길 막막, 오죽하면 이렇게 하겠나” = 고령대교에 이르자 강변 주민 6~7명이 손을 흔들며 힘을 보탰다. 순간 선수로부터 “와아~” 하는 소리가 들렸다. 4대강 사업 달성보 건설현장이다. 출발한 지 2시간 만이다.

“저것 보십시오. 저게 댐이지, 어디 ‘보’란 말입니까.”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갑문을 만들기 위해 20여m의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 4개가 강줄기에 버티고 있었다. 참가자들은 갑문과 갑문 사이 폭 30m를 빠져나오면서 “운하를 지나는 기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많은 사람이 그토록 반대하는데 왜 4대강 사업을 하는 겁니까. 기존 제방을 보강해도 충분히 홍수를 막을 수 있어요. 노동자·농민 생계터전 뺏고 결국 대기업 배불리는 거 아닙니까.”

골재노조원 김태욱씨(53)와 박천섭씨(57)는 뿌연 흙탕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숨만 내쉬었다.

◇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들 = 낮 12시50분쯤. 고령군 개진면 박석진교 밑에서 잠시 내려 김밥으로 끼니를 때웠다. 갈수록 뗏목은 속도를 냈다. 오른쪽에 고운 백사장을 간직한 고령 우곡과 회천교 합류지점을 지나 합천군 덕곡면 율지교에 이르렀다. 이 자리에서 덕곡면 침수대책위가 환영 나와 끝까지 투쟁해 달라며 응원을 보냈다.

이어 뗏목은 합천보 공사장을 지나 하류로 내려갔다. 공사장에 설치한 오탁방지막에 뗏목이 걸릴 것을 우려했지만 기우였다. 태풍이 지나간 뒤로 오탁방지막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다시 10분쯤 하류로 내려가니 수초와 식물로 무성했던 황강 합류지점의 넓은 홍수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온통 공사현장뿐이었다. 신반천 합류지점을 지나 낙동강물이 크게 굽이치자 박진교가 눈에 보였다.

대장정에 참가한 대원들은 이날 박진교 밑에 보트와 뗏목을 정박하고 여장을 풀었다.

이들은 16일 오전 이곳을 출발해 함안보~창원 본포~밀양 하남읍~삼랑진을 거쳐 부산의 낙동강 하구에 도착한다. ‘낙동강 700리 뗏목 대장정’이 마무리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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