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안과를 찾았더니 '라섹수술을 받으면 안 되는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 환자'라는 진단이 나왔다.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이 있는 사람들은 대개 60~70대에 증상이 나타나며 그 중 일부는 시력을 잃는다. 그런데 이 질환이 있는 사람이 라식·라섹수술을 받으면 증상이나 시력 상실의 위험이 훨씬 빨리 나타날 수 있다.
라섹수술을 받은 안과에 가서 따졌지만 의사는 당시 차트를 보여주며 "수술 당시에는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 소견이 보이지 않았다"고만 말했다.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은 아직 마땅한 치료법이 없어 이씨는 막막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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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리노 각막 이상증은 눈의 검은 동자 쪽 각막에 '하이알린'이라는 흰색 물질이 끼는 질환으로 1320명 당 1명꼴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국내에는 4만 여 명이 이 병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라식이나 라섹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연구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이들이 라식이나 라섹과 같은 시력 교정술을 하면 실명(失明)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세브란스병원 안과 김응권 교수는 최근 안과학저널인 '시력교정술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아벨리노 각막이상증 환자는 라식·라섹수술 후 증상이 악화되므로 수술 전 검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라식이나 라섹 등을 할 때 각막을 절제하면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이 급속히 악화된다. 시력 교정술을 할 때 각막 사이를 절제하면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을 일으킨 특정 유전자가 자극을 받아 옆으로 분화하거나 더 부풀어 오른다고 한다. 하지만 백내장 수술처럼 각막 외부를 건드리는 수술에서는 아벨리노 유전자가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현재 안과 학계는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이 있는 사람 중에서 시력교정술인 엑시머 레이저, 라식수술, 라섹수술 등을 받은 사람이 300명을 넘는 것으로 추정한다. 세브란스병원 안과를 찾은 사례만 해도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이 있으면서 라식수술을 받은 사람 150여 명, 라섹수술을 받은 사람 15명에 이르고 있다.
김응권 교수는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이 있으면서 라식·라섹수술을 받은 사람이 학계의 추산보다 많이 발견되고 있다"고 말했다.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으로 인한 각막 혼탁은 아직은 완치가 어렵다.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이 병으로 진단되면 질환의 진행을 최대한 늦추면서 자외선 등의 외부 자극을 피하는 것이 최선이다.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 때문에 시력이 많이 떨어진 환자는 각막 이식을 하거나 레이저로 혼탁을 제거하기도 한다.
삼성서울병원 안과 정의상 교수는 "이 병은 100% 유전 질환이므로 부모 중 한 명이라도 각막이상증 진단을 받으면 그 자녀도 가능성이 크므로 시력교정 수술을 받기 전 정밀검사를 통해 이 병이 있는 지를 꼭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은 안과에서 1차로 미세 현미경으로 검사한다. 하지만 먼지와 헷갈릴 정도로 미세한 점이어서 검사 정확도가 떨어지므로 최근에는 모발의 모근(毛根)이나 입 속 상피세포를 긁어 DNA를 검사하는 방법이 주로 쓰인다.
개원안과에서는 "라식이나 라섹 전에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 검사를 하고 싶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비용"이라는 입장. 서울 강남의 한 안과 원장은 "라식이나 라섹의 비용이 150만~300만원 안팎인데, 별도 비용을 들여 DNA검사를 하자고 하면 사람들은 병원이 바가지 씌우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더욱이 현미경만으로는 이 병을 확실하게 발견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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