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신수정 기자]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에 사는 A씨는 최근 전세계약을 2년 연장했다. 높은 금리에 월세로 옮길 것을 고려했지만 집주인이 현재 전셋값 그대로 계약을 연장하자고 제안해 재계약 도장을 찍었다. A씨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쓰지 않았는데도 집주인이 먼저 계약을 연장하자고 해서 놀랐다”며 “우려했던 전세대란을 겪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대출금리가 오르면서 부담이 커지는 것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전세시장에서 ‘세입자 모시기’가 어려워지고 만기 후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난’도 확산하자 기존 계약을 그대로 갱신하는 ‘전세 갱신계약비율’이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집주인의 요구에 맞서 세입자가 2년 더 살겠다고 요구하는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은 오히려 줄었다. 전·월세가격과 대출금리가 2년 전보다 크게 뛰어 부담이 커진 세입자는 기존 거주지에 더 눌러앉고 싶다는 기대감이 확산한 상황에서 반전세·월세로의 전환이 가속화해 세입자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진 집주인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조건 없이 전세계약을 연장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위례신도시의 모습. (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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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건설산업연구원이 갱신계약(재계약) 중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비율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6월말 기준 70%에 근접했던 갱신청구권 사용 비율은 1년이 지난 올해 6월말 기준 62.9%를 기록했다. 청구권 사용 비율 감소와 갱신 계약 비율 증가 배경에는 최근 주택시장 상황 때문으로 보인다. 전셋값이 고점 대비 하락하면서 기존 계약 유지를 원하는 집주인이 늘었고 시중금리가 빠르게 올라 추가 대출의 부담이 커진 세입자도 이주 부담 탓에 눌러앉길 바라는 수요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계약갱신청구권은 세입자에게 1회의 계약갱신청구권을 보장해 ‘4년(2+2)’으로 계약 연장을 보장받도록 한 권리다. 갱신요구권을 사용하지 않고 계약을 갱신한 임차인은 다음 계약 때 갱신요구권을 쓸 수 있다. 전·월세 갱신계약 비율도 큰 폭으로 뛰어올랐다. 지난해 6월 첫 조사에서 29.7%를 기록한 이후 1년 만에 50.3%로 최고 비율을 경신했다. 전·월세 계약건수도 18만5481건 중 기존의 계약을 갱신한 계약이 7만3352건에 이르렀다.
김성환 건산연 경제금융연구실 부연구위원은 “지난 2년간 전·월세 가격이 많이 뛴 상황이어서 세입자의 이사수요가 크게 늘지 않는데다 금리가 크게 뛰면서 재계약을 원하는 세입자와 집주인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전·월세 가격 조정이 이뤄지고 있는 과정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다 보니 몸값을 낮춰 전세 세입자 모시기에 나선 집주인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송파구 잠실 리센츠·엘스 등 대표 단지들은 전용면적 84㎡의 전세값이 13억∼14억원인데 최근 2억원 가량 낮춰 11억∼12억원대에서 전세를 계약하고 있다. 다만 지역별로는 전·월세 갱신 비율에 차이를 나타냈다. 강남과 더불어 대표 학군지인 목동을 포함한 양천구는 전세(52.4%)와 월세(32.3%)를 통틀어 갱신 비율이 가장 높았다. 반면 금천구는 전세(37.8%)와 월세(13.1%) 거래 모두 25개 구 중 가장 낮은 갱신 비율을 나타냈다. 이는 금천구가 다른 서울지역 아파트 전·월세가격 상승률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러 지역 내 가격이 더 싸거나 생활여건이 더 나은 곳으로 이동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 KB리브온에 따르면 금천구 아파트 전셋값 변동률은 4.69%로 서울 전체 6.12%보다 낮았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대출을 끼고 내 집을 마련했지만 금리인상 등으로 부담이 커지면서 매물로 쌓이고 있고 가격 하락을 만들어내고 있다”며 “금리인상 상황이나 대내외 여건에 따라 전·월세 시장 가격의 조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